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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35권, 세조 11년 1월 27일 을해 1번째기사 1465년 명 성화(成化) 1년

새로운 생원·진사를 인견하고 이조에 어찰을 내리다

고시관(考試官) 송처관(宋處寬)·김예몽(金禮蒙) 등이 진사(進士) 정지(鄭摯) 등 1백 인과 생원(生員) 이창신(李昌臣) 등 1백 인을 취하여 아뢰니, 전교하기를,

"오늘 새로운 생원(生員)·진사(進士)를 인견(引見)하려고 하니, 그 모든 일을 속히 차비(差備)하라."

하였다. 당시에 조사(朝士)로 시험에 합격한 자가 많았으므로 어찰(御扎)로 이조(吏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젊어서 배우는 것은 장성하여 이를 행하려는 것이다. 이미 진신(縉紳)050) 이 되어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다가 관직을 버리고 부시(赴試)한다는 것은 심히 이를 수 없는 까닭으로, 말미를 주어 부시하는 것을 허락하였더니, 이제는 또 방(榜)에 응하고 유가(遊街)051) 할 적에도 모두 유복(儒服)을 입으니, 이것은 유복을 영화롭게 여기고, 진신을 부끄럽게 여김이다. 소인유(小人儒)는 겉치레에서 구하고, 군자유(君子儒)는 마음에 있는 것을 잊음이라, 혼인(婚姻)하면 금서(金犀)를 금하지 않고, 부시(赴試)하면 관작(官爵)을 모두 버리니, 진실로 망령스러운 습속을 하면서 어찌 물정(物情)에 순응함을 따르지 않느냐? 속히 등제(登第)한 자의 고신(告身)을 거두고, 9품에서부터 품계를 시작하게 하라."

하였으나, 조금 있다가 도로 거두었으니, 대개 유생(儒生)이 동요할까 두려워함이었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니,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하동 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봉원 부원군(篷原府院君) 정창손(鄭昌孫)·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叔舟)·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좌의정(左議政) 구치관(具致寬)·우의정(右議政) 황수신(黃守身)·병조 판서(兵曹判書) 윤자운(尹子雲)·호조 판서(戶曹判書) 김국광(金國光)·인순부 윤(仁順府尹) 한계희(韓繼禧)와 입직(入直)한 여러 장수와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생원 장원(生員壯元) 이창신(李昌臣), 진사 장원(進士壯元) 정지(鄭摯)가 각각 방하(榜下)를 거느리고, 동쪽 뜰과 서쪽 뜰에서 나누어 들어오니, 임금이 신숙주에게 명하여 유생(儒生) 등에게 전교(傳敎)하기를,

"너희들을 궐정(闕庭)에 불러서 작(爵)을 내려 주며, 은총을 특이하게 하는 것은 어찌 도연(徒然)히 하는 것이겠느냐? 너희들로 하여금 분발(奮發)하여서 군자유(君子儒)는 되고, 소인유(小人儒)는 되지 말게 격려하고자 함이니, 너희들은 각각 스스로 칙려(飭厲)하라."

하고, 인하여 어찰(御扎)로 유시하기를,

"어진이를 구하되 목 마른 것 같이 하고, 한 번 보거든 친구와 같이 하라."

하고, 또 생원(生員) 한의(韓嶬)를 불러서 술을 올리게 하니, 한의는 곧 한계미(韓繼美)의 아들이다. 옷 1령(領)을 내려 주고, 술이 반쯤 거나하여서 정인지(鄭麟趾) 등에게 명하여, 한의의 집에 가서 경하(慶賀)하게 하고, 한계희노사신(盧思愼)으로 선위사(宣慰使)를 삼았다. 임금이 또 전교하기를,

"생원·진사 중에 직품이 있는 자는 유관(儒冠)을 쓰지 말고, 각각 품대(品帶)와 사모(紗帽) 차림으로 방(榜)에 응하여 유가(遊街)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35권 7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6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상-유학(儒學) / 의생활(衣生活)

  • [註 050]
    진신(縉紳) : 벼슬아치.
  • [註 051]
    유가(遊街) :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좌주(座主)·선진자(先進者)·친척들을 찾아보는 일.

○乙亥/考試官宋處寬金禮蒙等, 取進士鄭摰等百人, 生員李昌臣等百人以啓, 傳曰: "今日欲引見新生員進士, 其速備諸事。" 時朝士中試者多, 御札傳旨吏曹曰: "少而學之, 壯而欲行之。 旣爲縉紳, 事主理民, 而棄官赴試, 無謂之甚, 故給暇許赴, 今又應榜, 遊街皆着儒服, 是榮其儒服, 而恥其縉紳。 求小人儒於貌, 而忘君子儒於心。 婚姻則金犀不禁, 赴試則官爵都棄, 實爲妄習, 何不隨順物情? 速收登第者告身, 使自九品始階。" 有頃還收, 蓋恐動儒生也。 御思政殿, 王世子與孝寧大君 (補)〔𥙷〕 , 永膺大君 , 河東府院君 鄭麟趾, 蓬原府院君 鄭昌孫, 領議政申叔舟, 上黨府院君 韓明澮, 左議政具致寬, 右議政黃守身, 兵曹判書尹子雲, 戶曹判書金國光, 仁順府尹韓繼禧入直諸將承旨等入侍。 生員壯元李昌臣進士壯元鄭摰各率榜下, 分入東西庭, 上命申叔舟傳于儒生等曰: "名汝等于庭, 錫爵寵異, 豈徒然哉? 欲使汝等激厲奮發, 爲君子儒, 而毋爲小人儒也, 汝等各自飭厲。" 仍以御札示之曰: "求賢如渴, 一見如舊。" 又召生員韓㠖進酒, 㠖卽繼美之子也。 賜衣一領, 酒半命麟趾等, 往第慶賀, 以繼禧盧思愼爲宣慰使。 上又傳曰: "生員進士中有職者, 毋着儒冠, 各以品帶紗帽, 應榜遊街。"


  • 【태백산사고본】 13책 35권 7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6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상-유학(儒學) / 의생활(衣生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