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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34권, 세조 10년 12월 25일 갑진 2번째기사 1464년 명 천순(天順) 8년

창평군 곽연성의 졸기

청평군(淸平君) 곽연성(郭連城)이 졸(卒)하였다. 곽연성(郭連城)의 자(字)는 보지(保之)이고 청주(淸州)사람이었다. 처음에 내금위(內禁衛)에 속(屬)하였다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임신년545) 에 임금을 따라 명(明)나라에 갔었다. 정축년546) 에 무과(武科)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임명되었다가 한참만에 가선 대부(嘉善大夫) 함길도 병마 도절제사(咸吉道兵馬都節制使)에 승진하고 청평군(淸平君)에 봉(封)해졌다. 들어와 인순부 윤(仁順府蜳)·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고, 나가서 경상도 도절제사(慶尙道都節制使)가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병으로 졸(卒)하니, 임금이 명하여 26일의 나례(儺禮)를 구경하는 일과 27일의 풍정(豐呈)을 정지하게 하였다. 곽연성이 무재(武才)가 조금 있었는데, 임금이 명(明)나라에 갈 적에 군관(軍官)으로 따라갔다가 정난(靖難)할 때에 상복(喪服)을 입고 집에 있으니, 임금이 사람을 시켜 불러서 공(功)이 있었으므로, 드디어 공신(功臣)이 되고 갑자기 대관(大官)이 되었으며, 임금이 매우 믿고 중하게 여기었다.

그 성질이 거칠고 난폭하고 탐오(貪汚)하고 혹독하여, 그가 경상도(慶尙道)의 절제사(節制使)가 되었을 때 이인(吏人) 승로(承老)란 자가 집이 매우 부자인데 늙어서 아들이 없고 오직 첩(妾)의 딸이 나이 겨우 6, 7세인 것을 보고, 강제로 군영(軍營) 중에 두고 갑자기 광한(獷狠)547) 한 무리들을 징발하여 승로(承老)의 묵은 빚으로 갚지 못한 것을 징수하게 하고, 문권(文券)을 엉터리로 만들어 온갖 방도로 마구 침학(侵虐)하여 얼마 아니되어 승로(承老)와 그 딸이 모두 죽으니 빚을 징수하기를 옛날과 같이 하였으나, 관리들이 능히 제어하지 못하였다. 군사들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혹독한 형벌을 더하니, 심지어 피패(皮牌)548) 로 뺨을 때리고 나무 몽둥이로 머리통을 때리니, 군사들이 그를 시호(豺虎)549) 처럼 무서워하였다. 집에 있을 때 노복(奴僕)으로서 뜻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몽둥이로써 크고 작은 자를 가리지 않고 때려서 심지어 죽은 자까지 있었고, 재산을 모으기에 매우 부지런하여 빚을 낸 자는 감히 갚지 아니할 수가 없었고, 집이 가난하여 갚지 못하는 자는 비록 현순 백결(懸鶉百結)550) 의 옷이라도 반드시 빼앗아다가 팔아서 이를 채워서, 집이 매우 부자였다. 두 첩(妾)이 있었는데, 죽으려 할 때 앞에 불러다가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그 작은 첩(妾)은 곧 관기(官妓)였는데,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내 죽은 뒤에 너는 반드시 남에게 시집갈 것이다."

하고, 벼개 곁에 칼을 두었다가 이를 잡고, 그 눈을 찌르고자 하니, 작은 첩이 얼른 피(避)하여 칼이 그 이마를 닿아 상(傷)하였다. 그의 강려(剛戾)한 마음은 죽을 때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시호(諡號)를 ‘안양공(安襄公)’이라고 하였으니, 관대하고 너그럽고 화평(和平)한 것을 안(安)이라 하고, 일로 인하여 공로가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한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4권 51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66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註 545]
    임신년 : 1452 문종 2년.
  • [註 546]
    정축년 : 1457 세조 3년.
  • [註 547]
    광한(獷狠) : 모질고 독살 스러운 것.
  • [註 548]
    피패(皮牌) : 가죽 방패.
  • [註 549]
    시호(豺虎) : 승냥이와 범.
  • [註 550]
    현순 백결(懸鶉百結) : 옷이 너덜 너덜 헐어져 누덕 누덕 기운 것.

淸平君 郭連城卒。 連城, 字保之, 淸州人。 初屬內禁衛, 中武擧, 歲壬申, 從上朝大明。 丁丑中武擧重試, 超拜僉知院事, 俄陞嘉善咸吉道兵馬都節制使, 封淸平君。 入爲仁順府尹、吏曹參判, 出爲慶尙道都節制使。 至是以病卒。 命停二十六日觀儺、二十七日豐呈。 連城少有武才, 上之如大明也, 以軍官從之, 及靖難也, 持服在家, 上使人召之有功, 遂爲功臣, 驟至大官, 上甚信重之。 性麤暴貪酷, 其節制慶尙也, 見吏人承老者家甚富饒, 老而無子, 只有妾女子年纔六七, 强置營中, 驟發獷捍之徒, 徵承老宿債未償者, 虛立文契, 橫侵萬端, 未幾承老及女皆死, 徵債如舊, 官吏不能制。 軍士少有違錯, 加以酷刑, 至有擊腮皮牌, 打頭木槌, 軍士畏之如豺虎焉。 居家婢僕有失意者, 棒之不擇大小, 至有死者, 治産甚勤, 受債者莫敢不償, 貧不能償者, 雖懸鶉百結之衣, 必奪之, 賣以充之, 家甚富。 有二妾將死也, 召前分財與之。 其小妾, 乃官妓也, 執其手曰, "我死之後, 汝必嫁人矣。" 枕邊有刀, 取之欲剌其眼, 小妾遽避之, 刀觸傷其眉。 剛戾之心, 至死猶在。 諡曰安襄公, 寬裕和平‘安’, 因事有勞‘襄’。


  • 【태백산사고본】 12책 34권 51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66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