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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34권, 세조 10년 10월 9일 기축 2번째기사 1464년 명 천순(天順) 8년

인수부 윤 강희안의 졸기

인수부 윤(仁壽府尹) 강희안(姜希顔)이 졸(卒)하였다. 자(字)는 경우(景愚)로서 천성적인 자질이 참되고 순수하고 화평(和平)하고 쾌활 온화하고 말이 적고 청렴 소박(素朴)하여 문아(文雅)가 한때에 드높았다. 또 시(詩)에 능하였고 글씨와 그림도 잘하여 전서(篆書)·예서(隷書)와 팔푼(八分)에도 모두 정통한 경지를 이루니, 사람들이 「삼절(三絶)」이라 추앙하였다. 또 물리(物理)에 통달(通達)하여 일의 단서를 접하면 문득 알더라도 일찍이 그 일을 남에게 먼저 말한 적이 없었다. 일찍이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저술하여 경륜(經綸)의 뜻을 여기에 실었다. 성격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고 고요한 것을 사랑하여, 젊어서부터 영달(榮達)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일찍이 검상(檢詳)에 의주(擬注)하려 하였는데, 강희안이 이를 듣고 굳이 사양하였으므로, 의정부(議政府)에서 이 때문에 혐의스러워하였으나, 마침내 그 진심(眞心)을 알고서 그제서야 그만두었다. 강희안(姜希顔)이 일찍이 중국 북경[京師]에 갈 때 산해관(山海關)의 주사(主事) 양거(楊琚)강희안의 단찰(短札)을 얻어서 상자에 간직하고 보배[寶貝]로 삼았다. 그 뒤에 그가 저술한 「산해십영(山海十詠)」을 써 달라고 청하였는데, 동생 강희맹(姜希孟)이 중국에 입조(入朝)하게 되자, 강희안이 시(詩) 한 연(聯)을 주면서 이르기를,

"산해만(山海灣)에서 만약 양주사(楊主事)를 만나거든 형(兄)은 종왕(鍾王)을 배우지 아니한다고 말을 전하라."

하였다. 강희맹이 이로써 양거에게 보이니, 양거가 이르기를,

"글씨와 시(詩) 두가지가 모두 절묘(絶妙)하니, 이런 사람은 얻기가 어렵다."

하고, 강희맹을 관대(館待)하기를, 더욱 후하게 하였다.

중국의 사신(使臣) 김식(金湜)이 일찍이 안주(安州)만경루(萬景樓)에 머무르면서 시를 지었는데, 강희안이 교서(敎書)를 받들고 현판(懸版)을 썼더니, 김식이 보고 경도(驚倒)하고, 그 성명을 기록하여 돌아갔다. 세상에는 한 가지 재예(才藝)만 있는 사람도 또한 스스로 자기를 나타내어 값을 구(求)하는데, 강희안은 재주가 많았으나 어리석은 것처럼 몸을 지키니, 또한 어질다 아니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2책 3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56면
  • 【분류】
    인물(人物)

○仁壽府尹姜希顔卒, 字景愚, 天資眞粹和平, 樂易沈默, 淸素文雅, 擅於一時。 又工於詩, 善書畫, 篆隷八分皆造姸緊, 人推爲三絶。 又洞曉物理, 觸緖輒解而未嘗以事先人, 嘗著《養花小錄》, 寓以經綸之志。 性厭煩愛寂, 少不喜榮進。 議政府嘗擬檢詳, 希顔聞之苦辭, 政府以爲嫌也, 竟知其眞乃已。 希顔嘗赴京師, 山海關主事楊琚希顔短札, 藏盍以爲寶。 後請書其所著山海十詠, 及弟希孟之入朝也, 希顔贈詩一聯云"山海若逢主事爲言兄不學鍾王," 希孟以示, 曰: "書詩兩絶, 斯人難得。" 館待希孟益厚。 天使金湜嘗留詩於安州 萬景樓, 希顔奉敎書版, 見之驚倒, 識其姓名以歸。 世有占一藝者, 亦自衒求售, 希顔多材而守之以愚, 不亦賢乎?


  • 【태백산사고본】 12책 34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56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