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학 훈도 최연원이 최양선을 반박하는 상언을 올리다
풍수학 훈도(風水學訓導) 최연원(崔演元)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백악산(白岳山)의 명당(明堂)은 배임 향병(背壬向丙)457) 이며 궁궐(宮闕)은 자좌 오향(子坐午向)458) 입니다. 이제 최양선(崔楊善)이 억측(臆測)하여 이르기를, ‘축좌 미향(丑坐未向)에는 60세를 수(壽)하는 아버지는 있으나 60세를 수(壽)하는 어머니는 없으므로, 오래 거주(居住)하는 것은 마땅치 않으며,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459) 는 곧 진실로 명당(明堂)이니, 그 곳의 신서(臣庶)의 집을 옮기고, 청컨대 궁실(宮室)을 지으소서.’ 하였으나, 전현(前賢)들의 논(論)한 바가 일찍이 이와 같은 것은 어찌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그 처음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궁실을 지을 시초에 모두 섭리(爕理)하는 대신들이 일관(日官)들을 맡아서 거느리고 옛 서적을 정밀히 상고하여 땅의 형세(形勢)를 살피어 그 터를 점쳐 정하였고, 정부(政府)와 육조(六曹)에서도 또한 첨의(僉議)를 같이 하였고, 당시 임금께서도 친히 행행(行幸)하시어 결정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면면히 교체(交替)된 적이 없었는데, 어찌 당시의 일을 맡았던 대신(大臣)과 임무를 맡았던 일관(日官)들이 최양선의 마음만큼 같지 못하여 국가의 중대한 일을 경홀하게 다루었겠습니까?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가 진짜 명당(明堂)이라면 청오자(靑烏子)460) 와 곽박(郭璞)461) 양균송(楊筠松)462) 과 증의산(曾義山)463) 같은 현인(賢人)이 도리어 어리석은 술사(術師)로 되어 최양선에 미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양균송과 곽박이 천하를 횡행(橫行)하면서 그 말이 지극히 신기하여 마치 그림자와 소리의 울림같이 응하였는데, 어찌 최양선의 지리학(地理學)에 미치지 못하였을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최양선의 지리학(地理學)도 또한 날 때부터 안 것이 아니요, 반드시 청오자와 곽박을 조술(祖述)하였을 것이요, 양균송과 증의산을 종사(宗師)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최양선이 억측을 고집하고 남에게 이기기를 힘써 궤탄(詭誕)하고 괴이(怪異)한 말에 얽매어 여러 차례 상언(上言)하여 성상(聖上)의 들으심을 혼란시키므로, 신(臣) 등이 여러 지리서(地理書)를 모아 그 전현(前賢)들의 논(論)한 뜻을 읽어 보고 지형(地形)을 참고하여 조목(條目)별로 아룁니다. 《지현론(至玄論)》에 이르기를, ‘진룡(眞龍)은 우유(優游)하며, 진혈(眞穴)은 은오(隱奧)한다.’고 하였고,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천리의 내산(來山)에는 다만 한 혈(穴)이 있을 뿐인데, 정혈(正穴)인 것은 우유(優游)하고 방혈(旁穴)인 것은 미약하매, 지산(支山)에는 혈(穴)이 있어서 비록 형세를 이룰지라도 간룡(幹龍)의 주정(主精)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보건대, 백악산(白岳山)이 우유(優游)하여 간룡(幹龍)이 되고 승문원(承文院)은 미약하여 지룡(支龍)이 되니, 백악산(白岳山)은 정혈(正穴)이 되고 승문원(承文院)이 방혈(傍穴)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대개 작은 지룡(支龍)은 기맥(氣脈)이 짧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간룡(幹龍)은 길고 지룡(支龍)은 짧으니, 힘으로도 다투기가 어렵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또 큰 나무에 작은 가지가 생기는 것과 같아서 작은 가지는 피곤하기가 쉽고 큰 가지는 비대(肥大)하기가 쉬우니, 큰 가지가 전체의 기운을 나누어 빼앗아 가면 작은 가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쇠약하여진다.’고 하였으니, 백악산(白岳山)이 간룡(幹龍)으로서 특별히 크고, 승문원(承文院)은 가지[枝]로서도 또한 작으니, 백악산(白岳山)이 그 기운을 전부 빼앗으므로, 승문원(承文院)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쇠할 것을 대개 알 수가 있습니다.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화혈(花穴)이 가장 사람으로 하여금 미혹(迷惑)하게 하니, 후룡(後龍)이 단정하며 기묘(奇妙)하고, 조산(朝山)도 또 기이하다. 어리석은 술사(術師)들은 이 화혈(花穴)이 잘못 이해하여 진혈(眞穴)이 담 가운데[中垣]에 감추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또 화혈(花穴)이 있으나 아는 사람이 없다. 청룡(靑龍)과 백호(白虎)가 바깥으로 둘러싸고 좌우의 산이 이를 따르니, 대개 정혈(正穴)이 많이 은비(隱秘)함으로 인하여 혹은 비녀[釵]와 집계[鉗] 같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젖[乳]과 같이 늘어지기도 한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허화(虛花)의 좌우에 저절로 정(情)이 있으니, 자세히 보면 정형(正形)이 아니며, 허화(虛花)가 혈(穴)을 만드는 것이 다시 정교하지만, 자세히 보면 내맥(來脈)이 매우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좌우에 정(情)이 있고 혈(穴)을 만든 것이 정교하여 주산(主山)이 단정하고 기묘하며, 조산(朝山)이 또 기묘하므로, 간룡(幹龍)과 지룡(支龍)을 논(論)하지 아니하고 사신(四神)의 높낮이를 살피지 아니할 때 경험이 없는 용속(庸俗)한 사람이 도국(圖局)을 살펴보고 말을 한다면 정말 참된 것 같습니다. 전현(前賢)의 뜻을 가지고 지형(地形)을 참고하여 보면, 백악산(白岳山)의 명당(明堂)은 관평(寬平)하며 은비(隱秘)하니, 하엽(荷葉) 모양에서 연꽃술[蓮蘂]만이 홀로 높은 것인데, 앉아서 진무(鎭撫)하고 관(關)의 주(主)가 되면 백악산(白岳山)이 진혈(眞穴)이 되고 승문원(承文院)이 화혈(花穴)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단제수언편(斷制粹言篇)》에 이르기를, ‘산형(山形)에는 귀봉(貴峰)이 나오는 것이 귀상(貴相)이니, 평평하고 작은 형상은 한 대(代)에 왕성할 뿐이다.’고 하였으며,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겹겹이 연화(蓮花)의 씨를 둘러 싸면, 정혈(正穴)은 도리어 연화(蓮花) 가운데 있는 것이요, 조산(朝山)이 맞이하여 호종(護從)하면 또한 혈이 있는 것이나, 혈의 형체가 이루기 어려워서 우열이 있는 법이다.’고 하였으니, 백악산의 뽀족한 봉우리가 귀봉으로 나와 연꽃의 말부(末部)와 같아, 명당을 겹겹이 둘러 싸서 은은(隱隱)하며 융융(隆隆)하나, 이미 귀봉이 되었으니,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호종하는 산(山)으로서 평평하고 작으나 천근(淺近)하여 비록 정이 있는 듯하나 어찌 화혈(花穴)이 되어 한 대(代)에만 왕성(旺盛)할 곳이 아니겠습니까? 《명산보감(明山寶鑑)》에 이르기를, ‘대저 부귀(富貴)하는 땅은 많이 기형 이혈(奇形異穴)로 되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바이다. 만약 좌회 우포(左回右抱)하여 혈(穴)의 형체가 분명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은 특히 소소한 친근한 땅이요, 족히 부귀(富貴)의 큰 땅은 되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단제수언편(斷制粹言篇)》에 이르기를 ‘작은 명당(明堂)은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또한 조금 발복(發福)을 하면 두 세대를 미치지 못하여 또한 그치고 멸망하니, 이에 이르러 바야흐로 작은 혈(穴)은 부귀(富貴)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음을 알 만하다.’고 하였으며, 《착맥부(捉脈賦)》에 이르기를, ‘큰 벼슬과 큰 부자가 나는 혈(穴)은 관완(寬緩)하여 발복(發福)이 늦고 폐기(廢棄)하는 데에 이르면서도 또한 늦으며, 작은 벼슬과 작은 부자가 나는 혈(穴)은 긴밀히 공읍(拱揖)하여 발복(發福)이 쉽고 속(速)하며, 퇴패(退敗)하는 데에 이르러서도 또한 쉽다.’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또 사람의 큰 집과 같아서 침처(寢處)하는 곳이 반드시 당오(堂奧) 가운데 있으니, 혈(穴)로써 당오(堂奧)에 비유하면 당오의 밖으로부터는 모두 다 여기(餘氣)이다. ’하였으며,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대저 양택(陽宅)은 혈(穴)이 크기를 요구할 것이니, 관활(寬闊)하고 연면(連綿)하며 또 평쾌(平快)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이라야 바야흐로 양택(陽宅)의 살 수 있는 것이 되니, 착소(窄小)하여 용납하기 어려운 것을 그대들은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양택(陽宅)의 땅은 관활(寬闊)하고 평쾌(平快)한 것을 귀하게 여기니, 경복궁(景福宮)의 명당(明堂)이 귀(貴)한 곳이 아니겠습니까? 착협(窄狹)하고 작은 것을 흉(凶)하다 하였으니,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흉(凶)한 곳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큰 땅은 발복(發福)이 늦고 실폐(失廢)하기도 또한 늦으며, 작은 땅은 발복(發福)이 빠르고 실폐(失廢)하기도 또한 빠른 것이니, 백악산(白岳山)의 명당(明堂)은 관대(寬大)하며 평정(平正)하므로, 이는 실폐(失廢)하는 것이 늦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착소(窄小)하고 국촉(局促)하니, 이는 실폐(失廢)하는데 속(速)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악산(白岳山)의 명당(明堂)은 기형 이상(奇形異象)으로 되어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수레와 말을 감추고 은은(隱隱)하며 융융(隆隆)하여 당오(堂奧) 가운데 있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이것을 가지고 참된 것으로 삼으며 귀(貴)한 것으로 삼을 것이요,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가지[枝] 가운데에서도 또 가지이니, 형혈(形穴)이 분명하나 착소(窄小)하고 천근(淺近)하여 사람들이 모두 다 좋다 하나, 당오(堂奧) 밖에 있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이로써 꽃이며 여기(餘氣)라 할 것입니다. 《착맥부(捉脈賦)》에 이르기를, ‘청룡(靑龍)이 강(强)하면 청룡(靑龍)을 따르고, 백호(白虎)가 강하면 백호(白虎)를 따른다.’고 하였으니, 우리 도읍(都邑)의 형세가 백호(白虎)는 강하나, 청룡(靑龍)이 작으니, 경복궁(景福宮)이 참이 되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무릇 뇌정(雷霆)이 진렬(震裂)하여 용신(龍神)이 놀라서 흩어지는 것을 선현(先賢)들이 크게 꺼리는 바이니, 승문원(承文院)의 장서각(藏書閣)은 일찍이 뇌진(雷震)을 겪고, 용(龍)을 상(傷)하여 기운이 없어진 땅이니, 어찌 궁궐(宮闕)로 쓸 수 있겠습니까? 《지리문정(地理門庭)》에 이르기를, ‘아들이 어미를 떠나지 않으면 그로써 정맥(正脈)인 것을 인정(認定)한다. 건(乾)은 건(乾)으로 응(應)하고 곤(坤)은 곤(坤)으로 응(應)한다.’고 하였으며, 《이순풍소권(李淳風小卷)》에 이르기를, ‘건(乾)은 건(乾)으로 응하고 곤(坤)은 곤(坤)으로 응하며 돌[石]은 돌로 응(應)하면 이것은 정당(正當)한 응(應)이려니와, 정응(正應)이 아니면 반드시 상(相)을 볼 것도 없다. 비록 혹시 명당(明堂)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또한 작은 의식(衣食)이나 입고 먹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지남시(指南詩)》에 이르기를, ‘귀산(貴山)이 높이 귀인봉(貴人峯)을 솟아 존중(尊重)하고 당당(堂堂)하여 여러 봉 가운데 섰다.’고 하였으며, 《명산보감(明山寶鑑)》에 이르기를, ‘급히 뾰족한 봉(峰)을 일으켜 현무(玄武)를 정하니, 문득 이것이 참 용[眞龍]이면 주산(主山)이다.’라고 하였으며, 《감룡경(撼龍經)》에 이르기를, ‘또한 높은 봉(峰)이 있으면 이는 현무(玄武)이니, 현무(玄武)가 떨어지는 곳에 사신(四神)이 모이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노[棹]를 흔들고 머리를 향하여 문득 봉(峰)이 일어나면 틀림없이 참 용[眞龍]이 그 곳에 있다.’고 하였으며, 《신장경(神藏經)》에 이르기를, ‘만승(萬乘)의 높음과 같다.’ 【현무의 존엄함을 말한다.】 고 하였으며,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청룡(靑龍)이 높이 빼어나고 시위(侍衛)가 낮다.’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대저 큰 형세를 어떻게 단정할 것인가 하면 지존(至尊)이 명당 안에 앉은 것과 같다.’고 하였으며 《곤감가(坤監歌)》에 이르기를, ‘명당(明堂)은 옛부터 관평(寬平)을 요(要)할 것이니, 완전하고 완전한 가운데 만병(萬病)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며, 《혈법비요(穴法秘要)》에 이르기를, ‘삼양(三陽)이 촉박하지 않아야 한다. 【명당이 내양(內陽)이 되고 안산(案山)이 중양(中陽)이 되고, 뒷산이 외양(外陽)이 되니, 이것을 삼양(三陽)이라고 한다.】 ’고 하였으니, 이제 이 명당은 삼각산(三角山)이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하여 내려와서 조종(祖宗)이 되고, 아래에 한 봉요(峰腰)를 지어 다시 보현(普賢)의 두 봉(峰)을 일으키니,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 음양이 서로 나타나서 부모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우익(羽翼)이 좌우(左右)로 흔들며 남쪽으로 향하여 장막(帳幕)이 거듭거듭 수렴(收斂)하고, 뒷기운이 동서(東西)로 옹포(擁抱)하고 가운데에 큰 간룡(幹龍)이 있어 흔들고 내려와서 유입수(酉入首)로 백악산이 되었으며, 조종(祖宗)이 감산(坎山)인데 입수(入首)도 또한 감산(坎山)이며, 조종(祖宗)이 석산(石山)인데 입수(入首)도 또한 석산(石山)으로 되어 아들이 어미를 떠나지 않고 모두 정응(正應)을 지었으며, 금반하엽(金盤荷葉) 모양을 만들어 연꽃의 꽃술의 뾰족하고 빼어남과 같으며, 만승(萬乘)의 지존(至尊)과도 같아 명당(明堂)을 좌진(坐鎭)하니, 이는 관란(關闌)의 주인이요, 산수(山水)가 조화한 바가 아니겠습니까? 이의 대간(大幹)과 정룡(正龍)을 놓고 가지 가운데서도 또 가지의 편소(偏小)하고 국촉(局促)한 땅으로써 진룡(眞龍)이며 정주(正主)라고 하면, 전현(前賢)들의 말을 한 바 정응(正應)과 현무(玄武)의 의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백호(白虎)가 높고 청룡(靑龍)이 약(弱)하여 내룡(內龍)이 조금 배반되었다.’고 하여 흠을 잡으나, 《곤감가(坤鑑歌)》에 이르기를, ‘백호(白虎)에 일어나는 봉(峰)은 장고(藏庫)를 일컫는다.’고 하였으며, 《지남시(指南詩)》에 이르기를, ‘청룡(靑龍)이 약(弱)하고 백호(白虎)가 승(勝)한 것은 모두 해(害)가 없으니, 다만 산봉(山峰)이 길(吉)한 형상에 합하는 것을 요할 뿐이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청룡(靑龍)만 있고 백호(白虎)가 없으면 아주 최상(最上)이 되고, 백호(白虎)만 있고 청룡(靑龍)이 없어도 또한 흉(凶)하지 않으니, 만약 외산(外山)이 있어 연접(連接)하여 응(應)하면, 분명히 혈(穴)에 조회하여 복(福)이 서로 연면(連綿)한다.’고 하였으며,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청룡(靑龍)과 백호(白虎)의 배후에 옷자락[衣裾]이 있으면, 이는 관란(關闌)에 절하여 춤추는 소매이라.’고 하였으며, 《지현론(至玄論)》에 이르기를, ‘큰 기운이 이미 모였으니 지절(支節)은 해가 없다.’고 하였으니, 백악산(白岳山)의 왼쪽 팔뚝 안에 또 작은 가지를 나누어 내청룡(內靑龍)을 지었고 그의 등에 또 지족(支足)이 있으니, 이른바 청룡(靑龍)과 백호(白虎)의 등 뒤에 옷자락이 있어서 이것이 ‘관란(關闌)에 절하고 춤을 추는 소매이라.’고 한 것입니다. 오른쪽 팔뚝이 비록 강(强)하나, 봉(峰)이 궤(櫃)와 창고(倉庫)와 같아 무곡(武曲)의 길(吉)한 형상이 되면, 이른바 ‘청룡(靑龍)이 약(弱)하고 백호(白虎)가 승(勝)하여도 모두 해(害)가 없으니 다만 산봉(山峰)이 길(吉)한 형상에 합(合)함을 요한다.’고 하는 것이니, 하물며 밖의 청룡(靑龍)이 중복(重複)되어 회전(回轉)하여 목멱산(木覓山)과 더불어 수구(水口)를 섞어 가두었고, 아차산(峨嵯山)이 관문(關門)을 진색(鎭塞)하니, 비록 청룡(靑龍)이 낮고 내청룡(內靑龍)이 조금 배반한 듯하나 어찌 흉(凶)한 허물이 있겠으며, 이른바 ‘큰 기운이 이미 모였으니 지절(支節)은 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남대문(南大門)의 내맥(來脈)이 약하고 편편한 것이 흠이 된다.’하였으나,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객산(客山)이 천리에서 와서 조회한다.’고 하였으며, 《동림조담(洞林照膽)》에 이르기를, ‘안산(案山)이 보이는 방소(方所)에 와서 조회하여 빼어난 것이 응룡(應龍)이 된다.’고 하였으며, 《지남시(指南詩)》에 이르기를, ‘안산(案山) 밖의 정조(正朝)하는 봉(峰)이 빼어나면 문장(文章)과 공업(功業)이 조정에서 떨친다.’고 하였으니, 백악산(白岳山)의 오른쪽 팔뚝이 회전(回轉)하여 준거(蹲踞)하고, 다음에 평강(平岡)을 짓고 다시 목멱산(木覓山)이 일어나, 주작(朱雀)이 되어 내려와서 수구(水口)를 회진(回鎭)하여 바로 선궁(仙宮)에 합하니, 백호(白虎)가 안산(案山)이 된 것입니다. 그 평강(平岡)의 땅을 지음에 관악산(冠岳山)이 속리산(俗離山)으로부터 멀리 뻗어 내려와서 조회하니, 이것이 이른바 ‘천리에서 와서 조회한 안산(案山) 밖의 봉(峰)이 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봉우리가 없고 목멱산(木覓山)이 가리어 밖의 조회하는 봉이 보이지 않으면 《보감(寶鑑)》에서 말한바 ‘삼양(三陽)의 오로지한 것’과 《입식가(入式歌)》에서 말한 바 ‘가까운 안(案)은 낮고 먼 안(案)이 높으면 한 거듭 안(案)이 한 거듭 손(孫)에 비(比)한다.’는 것에 어떠하다 하겠습니까? 《의룡경(疑龍經)》에 이르기를, ‘명당(明堂)이 관대(寬大)하면 기운도 관대하고 안산(案山)이 핍박(逼迫)하면 사람도 흉완(兇頑)하며, 안산(案山)이 와서 나에게 항복하면 사람이 인자하며 착하고, 내가 가서 안산(案山)에 복종하면 귀인(貴人)이 천(賤)하다.’고 하였으니,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주산(主山)이 저하(低下)하여 안산(案山)에 복종하였으며, 안산(案山)이 고준(高峻)하고 핍박하여 밖의 조산(朝山)이 보이지 않으므로, 이는 사람이 흉완(兇頑)하며 귀인(貴人)이 천(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현(前賢)의 논(論)한 뜻을 고열(考閱)하여 보면, 승문원(承文院)의 좌지(坐地)는 가화(假花)가 되고 경복궁(景福宮)의 명당(明堂)은 간(幹)과 진(眞)이 되는 것을 분명히 보겠습니다.
공경스럽게 생각하니, 우리 태조(太祖) 강헌 대왕(康獻大王)께서 큰 복조(福祚)를 여시니, 하느님이 한양(漢陽)의 도읍(都邑)을 주시었으니, 산수(山水)의 조회한 바는 오직 백악산(白岳山)일 따름입니다. 중정(中正)한 큰 줄기의 용(龍)으로 그 높음을 상대할 것이 없으니, 이제 이 명당(明堂)은 지리(地利)의 적의(適宜)함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정(人情)에 합(合)한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기운이 이미 모이면 지절(支節)은 해롭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큰 기운이 모인 땅은 비록 소소한 흠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흉구(凶咎)가 있겠습니까? 진실로 길(吉)한 기운에 해로움이 없을 것이니, 진실로 만세(萬世)의 큰 터입니다. 신(臣) 등이 재주가 양균송(楊筠松)과 곽박(郭璞)에 미치지 못하고 학문이 방향을 알지 못하니, 음양(陰陽)·풍수(風水)의 이치를 감히 아는 것이 아니나, 그러나 불휘(不諱)의 물으심을 받았으니, 어찌 감히 묵묵히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에 전현(前賢)들의 글을 들고 간간이 또한 억설(臆說)을 부쳐서 가히 진달(進達)하니, 성재(聖裁)를 감히 바랍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5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457]배임 향병(背壬向丙) : 임방(壬方:북쪽에서 서쪽으로 15도)을 등지고 병방(丙方:남쪽에서 동쪽으로 15도)으로 향한 것. 곧 임좌 병방(壬坐丙方).
- [註 458]
자좌 오향(子坐午向) : 자방(子方:정북)을 등지고 오방(午方:정남)으로 향한 것.- [註 459]
좌지(坐地) : 앉은 자리.- [註 460]
청오자(靑烏子) : 한(漢)나라 때의 지리 학자.- [註 461]
○風水學訓導崔演元等上言曰:
白岳明堂背壬向丙, 而宮闕則子坐午向。 今楊善臆稱丑坐未向。 有六十壽父, 無六十壽母, 不宜久住, 承文院坐地乃是眞正明堂也, 移其臣庶之家, 請營宮室。 不知前賢所論, 曾若是乎? 厥初建都營室之始, 皆以爕理大臣等典領日官精覈古籍, 審察形勢, 卜宅定基, 政府、六曹亦同僉議, 上親幸涉定, 至今綿綿無替, 豈有當時執事大臣掌任日官等, 不若楊善之心, 而輕忽國家重事哉? 承文院坐地以爲眞, 則靑、郭、楊、曾之賢, 反爲癡師而不及於楊善矣。 殊不知楊、郭之橫行天下, 其言至神而應如影響, 則豈有不及楊善之地理哉? 楊善之地理, 亦非生而知也, 必祖於靑、郭而宗於楊ㆍ曾也。 今楊善執泥臆度, 務爲取勝, 拘於詭怪, 不經之辭屢次上言, 變動天聽, 臣等裒集諸書, 閱其前賢所論之旨, 參考地形, 逐條以聞。 至玄論曰, "眞龍優游, 眞穴隱奧。" 《疑龍經》曰, "千里來山只一穴, 正者爲優旁者劣, 支山有穴雖有形, 不若幹龍爲主精", 以此觀之, 白岳優而爲幹, 承文劣而爲支, 則白岳爲正而承文爲傍明矣。 《疑龍經》曰, "蓋小支龍氣脈短", 又曰, "幹長支短力難爭", 又曰, "又如太樹生小枝, 小枝易疲大枝肥, 大枝分奪全氣去, 小枝不伐自衰羸。" 白岳以幹而特大, 承文以枝亦小, 則白岳全奪其氣, 承文不伐自衰, 蓋可知矣。 《疑龍經》曰, "花穴最是使人迷, 後龍端妙朝又奇。 癡師誤認此花穴, 不知眞穴秘中垣。 又有花穴無人知。 龍虎外抱左右隨。 蓋緣正穴多隱秘, 或作釵鉗或乳垂。" 又曰, "虛花左右自有情, 仔細看來非正形, 虛花作穴更是巧, 仔細觀來無甚好。" 以此觀之, 承文院坐地左右有情作穴是巧, 主山端妙, 朝山又奇, 不論幹龍支龍, 不審四神高低, 以不經庸俗按圖而言之, 則果如眞矣。 以前賢之旨, 參地形而觀之, 則白岳明堂寬平隱秘, 荷葉之形, 蓮橐獨尊, 坐鎭而爲關之主, 則白岳爲眞, 而承文爲花明矣。 《斷制粹言篇》曰, "山形出貴是貴相, 平小之形一代旺。" 《疑龍經》曰, "重重包裹蓮花辦, 正穴却在蓮花心, 朝迎護從亦有穴, 形穴難成有優劣。" 白岳尖岫出貴, 如蓮之未部, 明堂重重包裹, 隱隱隆隆而旣以爲貴, 則承文院坐地以護從之山, 平小而淺近, 雖若有情, 豈非爲花而旺於一代者乎? 《明山寶鑑》曰, "大凡富貴之地, 多是奇形異穴, 人所不識者也。 如左回右抱, 形穴分明, 衆人皆以爲好者, 特小小淺近之地, 未足爲富貴大地也。" 《斷制粹言》篇曰: "小地雖然亦小發, 未及二世亦歇滅。 到此方知小易衰, 大地富貴世不絶。" 《捉脈賦》曰: "大官大富之地, 寬緩而發遲至於弊棄也亦遲, 小官小富之地, 緊拱而易速, 至於退敗也亦易。" 又曰, "又如人之巨室焉, 寢處之所, 必在堂奧之中, 以穴喩堂奧, 則自堂奧之外, 皆是餘氣。" 《疑龍經》曰, "大凡陽宅要穴大, 寬闊連綿又平快。 如此方爲陽宅居, 窄小難容君莫愛。’ 以此觀之, 陽宅之地, 寬闊平快, 以爲貴則景福宮明堂是非貴者乎? 窄狹低小以爲凶, 則承文院坐地, 是非凶者乎? 大凡大地發遲而廢亦遲, 小地發速而廢亦速, 則白岳明堂寬大而平正, 此非廢遲者乎? 承文院坐地窄小而局促, 此非廢速者乎? 白岳明堂奇形異象而人所不識, 藏車隱馬而隱隱隆隆, 如在堂奧之中, 則必以是爲眞而爲貴也。 承文院坐地支中又支而形穴分明, 窄小淺近而人皆爲好, 如在堂奧之外, 則必以是爲花而餘氣也。 《捉脈賦》曰, "龍强從龍, 虎强從虎", 我都形勢, 虎强而龍低, 則景福宮爲眞, 尤加明矣。 況雷霆震裂、龍神驚散之地, 先賢所大忌, 承文院藏書閣, 曾經雷震。 而傷龍無氣之地, 豈可用之宮闕乎? 《地理門庭》曰, "子不離母, 所以認正脈也。 乾以乾應, 坤以坤應。" 李淳風小卷曰, "乾以乾應, 坤以坤應, 石以石應, 此其正應也, 非正應不必相之。 縱或成就, 亦小可衣食。" 《指南詩》曰, "貴山高聳貴人峯, 尊重堂堂立衆中。" 《明山寶鑑》曰, "頓起尖峯定玄武。 便是眞龍主山。" 《撼龍經》曰, "亦有高峰是玄武, 玄武落處四神聚。" 又曰, ‘搖棹向頭忽峰起, 定有眞龍居此地。" 《神藏經》曰, "若萬乘之尊也。" 【玄武之尊隆也】 《疑龍經》曰, "正龍高拔侍衛低。" 又曰, "大凡大形如何斷? 如此至尊坐明堂。" 《坤鑑歌》曰, "明堂自古要寬平, 完完中堪立萬兵。" 《穴法秘要》曰, "三陽不促 【明堂爲內陽, 山爲中陽, 案後山爲外陽, 是爲三陽。】 今此明堂三角山自北向南而來爲祖宗, 下作一峯腰, 更起普賢兩峰, 一高一低, 陰陽相見而爲父母, 自此而羽翼左右, 搖棹向南, 帳幕重重, 收斂後氣, 擁抱東西, 中有大幹龍, 迤邐而來, 入酉爲白岳, 祖宗坎山而入首亦坎山, 祖宗石山而入首亦石山, 子不離母而皆作正應, 成金盤荷葉之形, 而如蓮蘂之尖秀, 若萬乘之至尊, 坐鎭明堂, 此非關闌之主而山水之所朝者乎? 捨此大幹正龍, 以支中又支而偏小局促之地以爲眞龍正主, 則前賢所言正應玄武之論爲如何哉? 說者云白虎高峻, 靑龍低弱, 內龍稍輩以爲欠也。" 《坤鑑歌》曰, "白虎峰起名藏庫。" 《指南詩》曰, ‘龍低虎勝皆無害, 但要山峯合吉形。" 又曰, ‘有龍無虎多爲上, 有虎無龍亦不凶, 若有外山連接應, 分明朝穴福相連。’ 《疑龍經》曰, ‘龍虎背後有衣裾, 此是關闌拜舞袖。" 《至玄論》曰, "大氣旣鍾, 支節不害。" 白岳左臂之內, 又分小支而作內靑龍, 其背又有支足, 則所謂龍虎背後有衣裾, 此是關闌拜舞袖也。 右臂雖强峯如櫃庫, 爲武曲吉形, 則所謂龍低虎勝皆無害, 但要山峯合吉形也, 而況外靑龍重複回轉與木覓交關水口, 而峨嵯山鎭塞關門, 雖若龍低而內龍稍背, 安有凶咎哉? 所謂大氣旣鍾, 支節不害者也。 說者云南大門來脈低平爲欠也。 《疑龍經》曰, "客山千里來作朝。" 《洞林照膽》曰, "案山所見之方, 來朝而秀者爲應龍。" 《指南詩》曰, "案外正朝峯挺秀, 文章功業振朝中。" 白岳右臂回轉蹲踞, 次作平岡, 更起木覔爲朱雀而來, 降回鎭水口, 正合仙宮, 白虎爲案也。 其作平岡之地, 冠岳山自俗離山遠遠而來朝, 此所謂千里來朝案外峯挺秀也。 若無此岡, 而木覔遮障不見外朝, 則《寶鑑》所言三陽之全。 《八式歌》所言近案須低遠案高, 一重案比一重孫’者爲如何哉? 《疑龍經》曰, "明堂寬大氣寬大, 案山逼迫人兇頑, 案來降我人慈善, 我去伏案貴人賤。" 承文院坐地, 主山低下而伏於案山, 案山高峻逼迫, 而不見外朝, 則此非人兇頑貴人賤者也? 考閱前賢所論之旨而觀之, 承文院坐地爲假爲花, 而景福宮明堂爲幹爲眞, 昭然可見矣。 恭惟我太祖 康獻大王肇開景祚, 天錫漢都, 山水之所朝者, 唯白岳而已。 以中正大幹之龍, 其尊無對, 今此明堂, 非從地利之所宜, 亦人情之所合。 古人云 "氣旣鍾, 支節不害", 若是大氣所鍾之地, 雖有小小之瑕, 安有凶咎哉? 固無害於吉氣, 誠萬世之丕基也。 臣等才非楊、郭, 學未知方, 陰陽風水之理, 匪敢有知, 然承不諱之問, 安敢默默? 肆摭前賢之書, 間亦竊付臆說敢陳, 伏望聖裁。
- 【태백산사고본】 12책 3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5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