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 33권, 세조 10년 7월 8일 기미 1번째기사
1464년 명 천순(天順) 8년
운성 부원군 박종우의 졸기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가 졸(卒)하였다. 박종우는 운봉(雲峯) 사람이었는데, 정혜 옹주(貞惠翁主)에게 장가들어 운성군(雲城君)이 되었고 정통(正統)병진년373) 에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임명되고 갑자년374) 에 광덕 대부(光德大夫) 겸 판호조사(兼判戶曹事)로 승진되었다가 곧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로 나갔다. 정묘년375) 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임명되었다가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이조사(兼判吏曹事)로 승진하였다. 경태(景泰)계유년376) 에 정난 공신(靖難功臣)으로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에 임명되고, 을해년377) 에 특별히 평안도 도체찰사(平安道都體察使)로 천거되어 군(郡)·읍(邑)의 연혁(沿革)378) 을 살펴서 정(定)하였다. 박종우는 성질이 어질고 후하고 너그럽고 커서 대신(大臣)의 풍모(風貌)가 있었고, 몸을 가지는 데 삼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근엄(謹嚴)하였고, 사람을 대(待)하거나 물건을 접(接)할 때, 자리가 높았으나 더욱 겸손(謙遜)하였다. 집안이 대대로 부호(富豪)여서 윤사로(尹師路)·윤사윤(尹士昀)·정인지(鄭麟趾)와 같이 재물을 모은 것은 서로 비슷하였으므로 ‘4부(四富)379) 라 불렀다. 시호(諡號)가 성렬(成烈)이니 임금을 도우면서 능히 종명(終命)한 것을 ‘성(成)’이라 하고, 공(功)이 있어서 백성들을 평안하게 한 것을 ‘열(烈)’이라고 한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33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35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