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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32권, 세조 10년 3월 11일 갑자 3번째기사 1464년 명 천순(天順) 8년

지리학 최양선이 천천현로를 막을 것을 상언하다

지리학(地理學) 최양선(崔楊善)이 늙어서 서산군(瑞山郡)에 살고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서(上書)하여서 천천현로(穿天峴路)100) 를 막도록 청하였다. 임금이 좌의정(左議政) 구치관(具致寬)·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질(金礩)·공조 판서(工曹判書) 김수온(金守溫)·행 상호군(行上護軍) 임원준(任元濬) 및 승지(承旨) 등을 불러서 의논하고, 이어 어서(御書)를 내리어 이르기를,

"지리학 최양선천천현로를 막도록 청하였는데, 천천령(穿川嶺)을 적당하게 두터이 보토(補土)하고 돌을 펴서 성(城)을 쌓고 길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대저 일기(一氣)는 음양(陰陽)이 없는 것이고 둘로 나뉘어짐으로써 음과 양이 되는 것이며, 음양이 있기 때문에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주야(晝夜)가 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길흉(吉凶)이 형성(形成)되는 것이니, 이를 ‘하나의 근본에 만 가지의 다름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인간(人間)의 일신(一身)의 향배(向背)에도 스스로 음양(陰陽)이 있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과 동정(動靜)에도 모두 다 길흉이 있는데, 하물며 산천(山川)의 향배에 음양(陰陽)·길흉(吉凶)이 없겠느냐? 이런 고로 길(吉)한 것을 따르고 흉한 것을 피하는 것이 인사(人事)의 큰 것이니, 어리석게 지키고, 몽매(蒙昧)하게 두어서 스스로 흉(凶)과 화(禍)를 되돌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리(地理)·복서(卜筮)의 설(說)이 있고, 경권(經權)을 변통(變通)하여 세상에 재액(災厄)을 없게 하는 것이며, 이른바 패설(稗說)에 이르러서도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이다. 경권이란 무엇이냐? 천지(天地)가 상경(常經)하지 아니하여 한서(寒暑)가 차례를 대신하고, 인도(人道)가 상경하지 아니하여 문무(文武)를 바꾸어 쓰게 되고, 이치가 상경하지 아니하여 길흉이 섞이어 일어난다. 지리(地理)의 설은 착한 것을 상(賞)주고, 악한 것을 벌(罰)주며, 약(弱)한 것을 붙들어 주고, 강(强)한 것을 누르는 데에 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마치 나라의 치적(治績)을 내는 데에, 다스림에 정한 정치가 없고, 사람의 병(病)을 다스림에 병에 정한 증세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산천(山川)을 의지하고 산천은 사람을 우러러보며, 사람으로 인(因)하여 존재(存在)하기도 하고 상(喪)하기도 하고, 산천으로 인하여 화(禍)가 되기도 하고 복(福)이 되기도 한다. 흙은 살[肉]에 비하고 물은 피[血]에 비하며 돌은 뼈[骨]에 비하는 것이니, 육골(肉骨)인 자는 살고, 골육(骨肉)인 자는 죽으며, 양혈(養血)101) 하는 자는 건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로 인(因)하여 변(邊)이 생기어 혹은 골육(骨肉)으로서 살고, 육골(肉骨)로서 죽으며, 피를 버림으로써 편안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경권(經權)이다. 비록 하나로 하는 자도 모름지기 경권(經權)을 변통(邊通)한 뒤에 세상에 재액(災厄)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일가(一家)의 설(說)에 국한(局限)한다고 하면 보토(補土)하는 것도 또한 군살[贅肉]이다. 이제 두텁게 보토를 하고자 하는 것은 조종(祖宗)의 끊어질뻔한 맥(脈)을 이어지게 하는 소이(所以)이며, 이것이 보은(報恩)의 땅에 포석(布石)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만약 성(城)을 쌓고 길을 폐한다면 돌이 비록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석강(石岡)도 또한 천성(天成)으로 있는 것이요, 또 두터운 흙 위에 쇄쇄(碎碎)한 돌로 〈쌓는 것이〉 어찌 끊어진 것을 잇는 데에 관계가 있겠느냐? 후세(後世)에 망령되게 의논하는 자가 쉽게 길을 열까봐 깊이 염려하는 것이다. 단산법(斷山法)에는 교로(交路)에 장사지내는 것을 불가(不可)하다 하였으므로 산가(山家)의 금기(禁忌)하는 바이니 어찌 중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최양선의 설(說)이 이것인데, 이치로 말하면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북돋우어 주면 지엽(枝葉)·화과(花果)가 번식(繁殖)할 것이요, 선골(先骨)102) 이 편안함을 얻으면 자손(子孫)·종손(宗孫)이 번창할 것이니, 이것도 필연(必然)의 이치로서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저 번식하는 가운데에도 편고(偏姑)103) 하는 자가 있고, 번창하는 가운데에도 타락하는 자가 있으며, 편고하다가도 혹 다시 무성할 수가 있고, 궁곤(窮困)하다가도 혹 다시 부귀(富貴)할 수가 있는 것은 어떠한 까닭일까? 이것도 또한 경권이 한결같지 않고 분수(分受)가 가지런하지 않고 수폐(修廢)가 같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즉 이치는 반드시 하나가 될 수 없고, 일도 항상 같을 수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인사(人事)에 있는 것이다. 하물며 다시 본 뿌리는 말랐으되 옮겨 심는 것은 지엽(枝葉)이 무성하고, 부모(父母)는 죽었으되 자손은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 어찌 음양(陰陽)의 설(說)에 구애하겠느냐? 비록 길은 막지 않더라도 또한 가(可)한 것이다. 가령 천천현(穿川峴)을 파서 끊는다고 하면 대모(大母)의 산(山)에 초목(草木)이 없겠느냐? 반드시 깊은 도리를 찾지 말 것이다."

하였다. 이어 전지(傳旨)하기를,

"최양선은 망령된 사람으로 비록 술법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도 또한 막고자한 지 오래이니, 우선 그 의견에 따르겠다."

하고, 드디어 최양선을 불러서 여러 재추(宰樞)에게 명하여 변힐(辨詰)하게 하였더니, 능히 굴복시키는 자가 없었다. 임금이 이르기를,

"길을 막는 의논은 내가 이미 정하였다."

하고, 인하여 최양선에게 물어 이르기를,

"너는 내전(內典)104) 을 읽었느냐?"

하니, 대답하여 이르기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벽곡(辟穀)105) ·치심법(治心法)을 배웠고, 나이 60에 적은 견성(見性)106) 을 하였으며, 70에 큰 견성을 하였고, 80에 능히 대천 세계(大千世界)107) 를 보았습니다마는 구구한 경문(經文)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요즈음의 중들이 승상(繩床)에 앉아서 이름하기를 참선(參禪)을 한다고 하나 실상인즉 하나도 그 도(道)를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김수온(金守溫)이 견성 성불(見性成佛)의 설(說)을 물으니, 최양선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크게 웃으면서 의복(衣服)을 하사하고 그를 보내었다. 최양선은 성질이 우활하고 기괴하며 험악(險惡)하여 자기의 소견(所見)이 옳다 하고, 문자(文字)를 알지 못하면서도 정주학(程朱學)을 비난하며, 망령되게 불법(佛法)을 엿보고 견성(見性)을 말하고, 술법(術法)을 잘못 풀면서 음양(陰陽)·지리(地理)에 정통하다고 하니, 천하(天下)의 망인(妄人)이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13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인물(人物)

  • [註 100]
    천천현로(穿天峴路) : 광주(廣州).
  • [註 101]
    양혈(養血) : 약을 먹어서 피를 도와 보함.
  • [註 102]
    선골(先骨) : 선조의 뼈.
  • [註 103]
    편고(偏姑) : 은택이 한쪽으로 치우침.
  • [註 104]
    내전(內典) : 불경(佛經).
  • [註 105]
    벽곡(辟穀) : 곡식은 안먹고 솔잎·대추·밤 등을 조금씩 먹고 사는 일.
  • [註 106]
    견성(見性) : 모든 망혹(妄惑)을 버리고 자기 본연의 천성을 깨달음.
  • [註 107]
    대천 세계(大千世界) : 삼천 세계(三千世界)의 세째.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해·달·사대주(四大州)·육욕천(六欲天)·범천(梵天)을 합하여 한 세계라 이르고, 이것을 천배 한 것을 소천 세계(小千世界), 소천 세계를 천배 한 것을 중천 세계(中千世界). 중천 세계를 천배 한 것을 대천 세계(大千世界)라 하며, 이를 다시 천배 한 것을 삼천 대천 세계(三千大千世界)라 함.

○地理學崔楊善老居瑞山郡, 至是, 上書請塞穿川峴路。 上召左議政具致寬、刑曹判書金礩、工曹判書金守溫、行上護軍任元濬及承旨等議之, 仍下御書云:

地理崔楊善請閉穿川峴路, 穿川嶺宜厚補土而布石, 若築城閉路。 夫一氣無陰陽而分二爲陰陽。 有陰陽, 故有天地、日月、四時、晝夜。 由是吉凶形焉, 是謂一本萬殊。 人之一身向背, 自有陰陽, 語默動靜, 皆有吉凶, 況山川向背, 無陰陽吉凶乎? 是故趨吉避凶, 人事之大者也, 不可癡守昧措, 自戾凶禍。 故有地理卜筮之說, 通變經權, 世無災厄焉, 所謂至於稗說, 莫不至理存焉者也。 經權者何? 天地不常經, 寒暑代序, 人道不常經, 文武迭用, 理不常經, 吉凶參取。 地理之說, 不過賞善罰惡, 扶弱抑强而已。 猶國之出治, 治無定政, 人之治病, 病無定證也。 人依山川, 山川仰人, 因人而存喪, 因山川而禍福。 土譬之肉, 水譬之血, 石譬之骨, 肉骨之者生, 骨肉之者死, 養血之者壯。 然而因故變生, 或骨肉而生, 肉骨而死, 去血而安, 是則經權。 雖一之者, 故須通變經權, 然後世無災厄焉。 若局於一家之說, 則補土亦是贅肉也。 今欲厚補者, 所以續祖宗幾絶之脈, 是謂報恩之地布石。 若築城閉路者, 石雖非美物, 而石岡亦有天成者。 且厚土之上, 碎碎之石, 焉有關於續絶者哉? 深慮後世妄議者, 易以開路也。 斷山法不可葬交路, 山家所忌, 豈不重歟? 楊善說是也, 以理言之, 猶如木根, 得其培則枝葉花果繁殖, 先骨得其厝, 則子孫、宗族榮昌, 理之必然, 人之易見者也。 至若繁殖之中有偏枯, 榮昌之中有伶俜, 偏枯或復榮茂, 窮困或復富貴者, 何也? 是亦經權之不一, 分受之不齋, 修廢之不同故也。 然則理不可必一, 事不可常同, 歸重於人事耳。 況復本根枯而移栽者, 枝葉自好, 父母歿而子孫生生自若, 焉有泥於陰陽之說耶? 雖不閉路, 亦可也。 假如鑿斷穿川硯, 則大母之山無草木乎? 不必索頣。

仍傳曰: "楊善妄人, 雖不解術, 但予亦欲塞之久矣, 姑從之。" 遂召楊善, 命諸宰樞辨詰, 無能屈之者。 上曰: "塞路之議, 予已定矣。" 因問楊善曰: "汝讀內典乎?" 對曰: "不知。 但學辟穀治心法, 年六十小見性, 七十大見性, 八十而能見大千世界, 區區經文何益之有?" 且言 "今之僧徒坐于繩床, 號曰參禪, 而實則無一能行其道者矣。" 守溫問見性成佛之說, 楊善莫能對。 上大笑, 賜衣而遣之。 楊善性迂怪險惡, 自是所見, 不知文字而非, 妄窺佛法而道見性, 誤解術業而曰精陰陽地理, 天下之妄人也。


  •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13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