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서 사냥을 구경하던 중 군율을 어긴 자들을 하옥하다
서산(西山)에 거둥하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니,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은산 부정(銀山副正) 이철(李徹)·진종(陣宗)·사종(射宗)·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영천 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叔舟)·우의정(右議政) 구치관(具致寬)·좌찬성(左贊成) 황수신(黃守身)·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심회(沈澮)·이조 판서(吏曹判書) 김담(金淡), 행 대호군(行大護軍) 김한(金澣)·홍익생(洪益生)·박대생(朴大生), 행 상호군(行上護軍) 김처례(金處禮)·청성군(靑城君) 한종손(韓終孫)·병조 참판(兵曹參判) 김국광(金國光)·승지(承旨) 등이 어가(御駕)를 수종(隨從)하였다.
갑현(甲峴)에 이르자, 임금이 마봉(馬峯) 꼭대기에 머물렀다. 미시(未時)에 상군(廂軍)이 포위망을 좁히니, 짐승들이 많이 빠져나가 도망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포위망을 파(罷)하고 또 다시 산의 뒷쪽을 몰이하게 하였다. 임금이 이미 하산(下山)하였는데, 잡류(雜類) 등이 몰이하다가 조금 늦게 내려왔고, 또 대열이 가지런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여러 재추(宰樞)를 다 불러서, 명하여 잡류장(雜類將)인 은천군(銀川君)의 갓[笠]을 벗기게 하고 그 정비되지 못한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이 비록 마음을 다하여 분주(奔走)하게 하였으나, 그 재상(宰相)·승지(承旨) 같은 자들이 따르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또 승지(承旨) 등이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고 즉시 몰이하여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비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네가 그 따르지 않았던 자들의 갓을 벗겨라"
하니, 그 때 김담(金淡)·김한(金澣)·홍익생(洪益生)·박대생(朴大生)·김처례(金處禮)와 승지(承旨) 등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찬(李纉)263) 이 김담 이하를 모두 벗기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김담은 오랫동안 외방(外方)에 있어서 군령(軍令)을 알지 못하니, 그 갓을 도로 주라."
하였다. 그 차례가 승지(承旨) 등에게 이르자 이를 중지하도록 명하고, 불러서 묻기를,
"내가 아직도 수라를 들지 못하였고, 또 친히 스스로 몰이하면서 내려왔는데, 경들은 어찌하여 물러가 음식을 먹으면서, 몰이하여 내려 오지 않았는가? 옛날에 양저(穰苴)264) 는 장가(莊賈)를 목베고, 손무(孫武)265) 는 궁빈(宮嬪)을 목베었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근신(近臣)인데, 법을 시행하지 않고 위에서부터 폐지하였다. 또 음식을 먹자는 말을 누가 먼저 꺼냈는가?"
하니, 승지(承旨)가 모두 창졸간(倉卒間)에 대답하지 못하므로 친히 두세 번 물었으나 오히려 대답하지 못하였다. 윤흠(尹欽)·윤잠(尹岑)·이계손(李繼孫)에게 물으니, 모두 대답하기를,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였고, 최선복(崔善復)에게 이르자, 아뢰기를,
"김수령(金壽寧)이 먼저 말을 꺼냈고, 신 등과 같이 의논하여 모여서 먹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어찌하여 바로 아뢰지 아니하는가?"
하고, 명하여 모두 갓[笠]을 벗기고 의금부(義禁府)에 하옥(下獄)시켰다. 김한(金澣)·홍익생(洪益生)·박대생(朴大生)·김처례(金處禮) 등에게는 모두 갓을 돌려주었다. 위장(衛將) 구문로(具文老)·최적(崔適) 등이 통솔(統率)한 군사들이 흩어져 혼란하여서 교룡기(交龍旗)로 지시하여도 응(應)하지 않았고, 초요기(招搖旗)를 세워도 오지 않았으며, 부장(部將) 성중성(成重性)·이동주(李銅柱)·한서정(韓瑞呈)·이함(李諴) 등이 관할하는 군사들도 또한 대오(隊伍)를 잃고 차례를 이탈하니, 명하여 모두 의금부(義禁府)에 하옥시켰다. 김국광(金國光)으로 하여금 승지(承旨)의 일을 임시로 대행(代行)하게 하였다. 행차가 미륵원(彌勒院) 마을에 이르자, 명하여 한 민가(民家)에서 도둑 4인을 체포하여 의금부(義禁府)에 넘겼다. 드디어 환궁(還宮)하여 전지(傳旨)하기를,
"김한(金澣)·홍익생(洪益生)·박대생(朴大生)·김처례(金處禮) 등의 고신(告身)을 거두어라."
- 【태백산사고본】 11책 3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87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역사-고사(故事)
- [註 263]
○甲戌/幸西山, 觀獵, 臨瀛大君 璆、龜城君 浚、銀山副正 徹陣宗、射宗, 河城尉 鄭顯祖、鈴川府院君 尹師路、領議政申叔舟、右議政具致寬、左贊成黃守身、領中樞院事沈澮、吏曹判書金淡、行大護軍金澣ㆍ洪益生ㆍ朴大生、行上護軍金處禮、靑城君 韓終孫、兵曹參判金國光、承旨等隨駕。 至甲峴上, 駐馬峰頭, 未時廂軍合圍, 獸多逸走。 命罷圍, 且令還驅山後。 上已下山, 雜類等驅下稍遲, 且不齊。 上盡召諸宰, 命脫雜類將銀川君笠, 問不整之由, 對曰: "臣雖盡心奔走, 其如宰相、承旨不從何? 且承旨等聚坐飮食, 不卽驅下, 故不整也。" 上曰: "若然則汝脫其不從者笠。" 時, 金淡、金澣、洪益生、朴大生、金處禮及承旨等在坐, 纉自金淡以下皆脫之。 上曰: "淡久在外, 不知軍令, 其還給笠。" 次及承旨等, 命止之。 召問曰: "予尙未進膳, 且親自驅下, 卿輩何爲退食不驅下乎? 昔(穰且)〔穰苴〕 斬莊賈, 孫武斬宮嬪, 汝等皆吾近臣, 法之不行, 自上廢也。 且飮食之言, 誰先發乎?" 承旨皆倉卒莫對, 親問至再三, 猶未對。 問尹欽、尹岑、李繼孫, 皆對曰: "無也。" 至崔善復啓: "金壽寧先發言, 臣等同議聚食耳。" 上怒曰: "若爾何不直啓乎?" 命皆脫笠, 下義禁府。 澣、益生、大生、處禮等竝還給笠。 衛將具文老、崔適等所統軍士散亂, 指交龍旗而不應, 建招搖旗而不來, 部將成重性、李銅柱、韓瑞呈、李誠等所管軍士亦失伍離次, 命皆下義禁府。 令金國光權行承旨事。 行至彌勒院里, 命掩捕一民家獲盜四人付義禁府。 遂還宮。 傳旨: "收(金幹)〔金澣〕 、洪益生、朴大生、金處禮等告身"。
- 【태백산사고본】 11책 3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87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