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30권, 세조 9년 7월 30일 정사 2번째기사
1463년 명 천순(天順) 7년
항상 일을 만나면 기록한 분판을 승정원에 내리고 승정원에도 분판이 있는지 묻다
임금이 일찍이 분판(粉板)을 자리 오른쪽에 놓고, 일을 만나면 문득 기록하여 하루에 칠림(漆林)·육축(六畜)·종상(種桑) 등 10여 조목을 열서(列書)하고, 승정원(承政院)에 내 보이며, 돈권(敦勸)하는 방법을 의논했었다. 또 말하기를,
"내가 사판(事板)에 기록하되 교기(巧記)는 졸서(拙書)만 같지 못한데, 정원(政院)도 또한 이것이 있느냐?"
하니, 이 앞서 동부승지(同副承旨) 김수녕(金壽寧)이 분판(粉板)을 써서 비망(備忘)하였는데, 이계손(李繼孫)이 말하기를,
"일[事]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스스로 암기(暗記)하여야지 어찌 이 판(板)을 쓰는가?"
하였다. 이에 이르러 이계손이 무연(憮然)222)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8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註 222]무연(憮然) : 실심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