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저창의 쌀도둑을 참하고, 취중에도 실수하지 않은 어효첨에게 이조 판서를 제수하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이계손(李繼孫)이 아뢰기를,
"풍저창(豐儲倉)의 종[奴]이 본창(本倉)의 쌀을 도둑질하였으니, 3범(三犯)한 자 2인을 죄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3범(三犯)한 것이 명백하냐?"
하였다. 이계손이 역력히 범한 바를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뢴 바에 의하여 사형에 처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내노(內奴)가 어용(御用)의 자완(瓷椀) 수 벌[數事]을 도둑질한 자가 있는데, 형조(刑曹)에서는 죄가 어고 재물(御庫財物)을 도둑질하였기 때문에 사형에 처하는 데 해당한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떠한 자완(瓷椀)인가? 표지(標誌)가 징험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였다. 형조 판서 이극감(李克堪)이 아뢰기를,
"신(臣)이 취해 와서 징험하니, 비록 징험할 만한 표지(標誌)는 없더라도 이것은 어용(御用)입니다. 이 율(律)로써 안험하였으나, 그러나 정상도 또한 가긍(可矜)하고, 금은(金銀)의 중기(重器) 같으면 그가 비록 율문(律文)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 지은 뜻이 더할 것이나, 이런 그릇은 그가 혹 도둑질한 자가 죽는 데에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처음 잡아 왔더니, 그는 염연(恬然)히 가지고 나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말이 과연 옳다. 마땅히 창고 전량(倉庫錢糧)을 도둑질한 율(律)로써 논(論)하라."
하였다. 이극감(李克堪)이 아뢰기를,
"율(律)은 고칠 수가 없으니,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장(杖) 2백 대에, 자자(刺字)110) 함이 가하다."
하였다. 얼마 있다가 임금이 세자(世子)를 불러, 명하여 어효첨(魚孝瞻)에게 술을 올리게 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얼굴의 부종(浮瘇)은 무병(無病)타 하겠느냐?"
하니, 어효첨이 아뢰기를,
"신은 땅에 엎드려서 상기(上氣)한 것뿐이요, 신은 본시 무병(無病)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땅에 엎드리는 것을 면하게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어깨가 높으니 얼굴은 마땅히 낮아야 한다."
하였다. 어효첨은 매양 취한 뒤에는, 양어깨가 높이 솟아서 시인(時人)이 어부(漁父)라 칭하므로 임금이 이로써 희롱하심이었다. 또 명하여 세자에게 술을 올리게 하고, 이어서 군신(群臣)에게 술을 먹이었다. 윤자(尹慈)의 차례를 당하여 술을 받고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바로 사간(司諫) 윤자(尹慈)이냐? 근일에 간원(諫院)이 최경(崔涇)의 일로 인하여 반드시 송동(竦動)을 당했겠다."
하고, 이어서 최경의 무망(誣妄)한 죄상을 논(論)하기를,
"소인(小人)의 정상(情狀)이 이와 같으니, 내가 크게 징치하려다가 단지 그 직(職)만 파(罷)하였다."
하니, 군신(群臣)으로 대답하는 자가 있지 않았는데, 어효첨이 청하기를,
"화공(畫工)은 천례(賤隷)이니, 직품의 한도가 5품입니다. 세종(世宗)께서 심히 안견(安堅)을 중하게 여겼지만, 서반(西班) 4품을 제수하였는데, 그러나 또한 어렵게 하였습니다. 최경은 재주가 안견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벼슬이 정3품에 이르고, 도화원 별좌(圖畫院別坐)로 예(例)에 따라 자급(資級)111) 을 더하였습니다. 신이 이조 참의(吏曹參議) 때에 이를 통분(痛憤)하면서도 감히 계달(啓達)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최경은 공장(工匠)의 천(賤)함으로써 감히 간원(諫院)과 더불어 항거하였으니, 오로지 직품의 높음을 믿은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말이 심히 마땅하다. 천례(賤隷)한 공장(工匠)이 인연(寅緣)하여 현달(顯達)한 자가 많으므로 내 마땅히 제지할 것이니, 경은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이때에 어효첨이 침취(沈醉)하였는데도 대답에 실수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효첨은 참으로 낙지군자(樂只君子)112) 이다. 내가 본시 그 사람됨을 아니, 판서(判書)를 삼아 쓸 만하다."
하고, 인하여 어효첨에게 이르기를,
"너를 판서(判書)로 삼겠다."
하니, 어효첨이 즉시 배사(拜辭)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어느 조(曹)를 하려 하느냐?"
하니, 어효첨이 아뢰기를,
"명하여 신(臣)을 판서(判書)로 삼으시면, 명(命)에 복종함이 마땅하지 인신(人臣)이 어찌 자점(自占)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감아 말을 하지 않으니, 임금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박원형(朴元亨)을 대신하여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삼음이 가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70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신분-천인(賤人) / 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 / 재정-창고(倉庫) / 재정-국용(國用) / 재정-상공(上供)
- [註 110]자자(刺字) : 중국의 고대로부터 있던 형벌의 한가지.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죄명(罪名)을 찍어 넣는 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조 영조 때까지 시행되었음.
- [註 111]
자급(資級) : 조선조 때 벼슬에 따른 품위(品位)의 등급. 정(正)·종(從)·각품(品)마다 상(上)·하(下) 두 자급이 있었으므로 총 36자급이 있었음.- [註 112]
낙지군자(樂只君子) : 도(道)를 즐기는 군자라는 뜻.○同副承旨李繼孫啓: "豐儲倉奴, 盜本倉米, 三犯者二人罪。" 上曰: "三犯明白乎?" 繼孫歷啓所犯, 上曰: "依所啓處死。" 又啓: "內奴盜御用瓷椀數事者罪, 刑曹當以盜御庫財物處死。" 上曰: "何等瓷椀? 有標誌可驗歟?" 刑曹判書李克堪啓: "臣取來驗之, 雖無標誌可驗, 是御用也。 按以此律, 然情亦可矜, 若金銀重器則彼雖不知律文, 其造意可增。 若此等器, 彼或不知盜者之至死也。 臣始拿來, 彼恬然就執, 略不疑畏。" 上曰: "卿言果是。 宜以盜倉庫錢糧律論。" 克堪啓: "律不可改, 可特原之。" 上曰: "可杖二百刺字。" 俄而上召世子, 命孝瞻進酒, 上曰: "卿面浮𤺄, 得無病乎?" 孝瞻啓: "臣伏地上氣耳, 臣固無病。" 上令免伏地, 仍敎曰: "肩高面當卑", 孝瞻每醉後兩肩高聳, 時人稱爲漁父, 上以此戲之。 又命世子進酒, 仍饋群臣酒。 尹慈次當受酒, 上曰: "汝是司諫尹慈歟? 近日諫院因崔涇事, 必當竦動。" 仍論涇誣妄之狀曰: "小人之情狀如此, 予欲大懲, 只罷其職。" 群臣無有對者, 孝瞻請曰: "畫工則賤隷也, 職限五品。 世宗甚重安堅, 只授西班四品, 然亦難之。 涇才不及堅, 而官至正三品, 以圖畫院別坐, 例加資級。 臣於吏曹參議時痛憤之, 未敢啓達, 涇以工匠之賤, 敢與諫院抗焉, 專恃職高。" 上曰: "卿言甚當。 賤隷工匠(寅)夤緣顯達者多, 吾當制之, 卿勿復言。" 時孝瞻沈醉, 對不失辭, 上曰: "孝瞻眞樂只君子。 予素知其爲人, 可用爲判書。" 因謂孝瞻曰: "以汝爲判書。" 孝瞻卽拜謝。 上問曰: "欲爲何?" 曹孝瞻啓: "命臣爲判書, 則當服命, 人臣安有自占之理?" 搖頭瞑目不言, 上大笑曰: "代朴元亨爲吏曹判書, 可也。"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70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신분-천인(賤人) / 왕실-의식(儀式) / 인물(人物) / 재정-창고(倉庫) / 재정-국용(國用) / 재정-상공(上供)
- [註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