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에서 문신 3품 이하에게 책문을 짓게 하다. 책제의 내용
서현정(序賢亭)에 나아가니, 왕세자(王世子)와 내종친(內宗親)091)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문신(文臣) 3품 이하를 경회루(慶會樓) 아래에 모이게 하고, 어제(御製)로 책제(策題)하기를,
"조회(朝會)·연향(宴享)은 어째서 중하냐 하면, 군신(君臣)의 예(禮)를 익히는 까닭이요, 예악(禮樂)·문물(文物)은 어째서 귀하냐 하면, 군신(君臣)의 분수[分]를 굳게 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연고로 고배(高拜)는 그 몸을 떳떳이 하고, 등차(等差)는 그 뜻을 정(定)히 한다. 엄연(儼然)함이 엉킨 서리와 같아서 나만(懶慢)092) 함이 생기지 아니하고, 비록 아비의 이름[父名]이라도 거리끼지 아니하며, 비록 물·불[水火]이라도 피(避)하지 아니하고 임금에게 몸을 바친다. 그 다른 것을 알지 못함은 예(禮)를 익히고 분수를 굳게 하는 소이(所以)이다. 만약에 그 몸을 떳떳이 하지 않는다면 예(禮)를 사사로이 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만약에 그 뜻을 정하지 않는다면 참람한 자가 생길 것이다. 작다 하여 크게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면, 순치(馴致)093) 하되 피하기 어려워서 화(禍)를 이루어도 방법[術]이 없으니, 이것이 천하 고금(天下古今)의 근심[患]이다. 예악(禮樂)의 중함이 대개 이와 같으므로, 성인(聖人)을 인사[事]로 인하여 예(禮)를 꾸며서 미리 환난(患難)을 막았고, 서적(書籍)에 실린 바는 미진(未盡)하다고 하지 않았는데도 후세(後世)에 어리석은 임금[愚主]이 홀연(怱然)히 이를 고쳐서 미혹하여 폐단을 알지 못하니, 명철(明哲)한 보좌(輔佐)들도 또한 상사(常事)로 여겨 사려(思慮)가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내가 씀은 이것이 아니다. 무릇 연향(宴享)의 의식[儀]은 모두 중국의 제도를 써서 습속(習俗)이 이미 굳었고, 절목(節目)도 허소하여 형세가 고치기에 쉽지 않은데, 어찌하면 쉽게 고칠 것인가? 비단 연향(宴享)의 일만이 무폐(無弊)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大學)에서 치양(齒讓)하는 것은 그 공순함을 가르치고, 뜰 아래[庭下]에서 돈수(頓首)함도 또한 그 공순함을 가르치나, 그 공순한 것을 가르침이 그 나만(懶慢)함을 이룬다. 한 번 공순하고 한 번 게으른 것이 모두 폐단이 되니, 어찌하여야 폐단이 없을 것인가?"
하고, 도승지(都承旨) 홍응(洪應)으로 하여금 전교하기를,
"내가 무신(武臣)에게는 모두 항상 임사(任事)하여 그 능부(能否)를 알거니와 너희들은 항상 임사(任事)하지 않아서 현부(賢否)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특히 제술(製述)하게 하여 보겠다. 너희들로서 만약에 유능(有能)한 자가 있다면 내가 장차 탁용(擢用)할 것이다."
하였다. 참시관(參試官)으로 봉원 부원군(蓬原府院君) 정창손(鄭昌孫), 영의정 신숙주(申叔舟), 우찬성(右贊成) 구치관(具致寬),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최항(崔恒)·성임(成任)·송처관(宋處寬), 예조 참판 김길통(金吉通)이 입시(入侍)하니, 술자리를 베풀었다. 입시(入侍)한 내종친(內宗親)·재추(宰樞)로 하여금 소적(小的)094) 을 쏘게 하고, 내탕금[帑]을 내려 주었다. 어두울 무렵에 이르러 문신(文臣)들에게 등화(燈火)를 내려 주고, 인정(人定)에야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6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신분-양반(兩班) / 인사-선발(選拔)
- [註 091]내종친(內宗親) : 동성(同姓)의 종친을 말함.
- [註 092]
○庚辰/御序賢亭, 王世子與內宗親、承旨等入侍。 聚文臣三品以下慶會樓下, 御製策題曰:
朝會宴享, 何重也? 所以習君臣之禮也, 禮樂文物, 何貴也? 所以固君臣之分也。 是故高拜常其身, 等差定其志, 儼如凝霜, 懶慢不生, 雖父名不諱, 雖水火不避, 委質於主。 不知其他者, 習禮固分之致也。 若不常其身, 則私禮者有焉, 若不定其志, 則僭擬者生焉。 小而不怪大, 則非美馴致而難逃, 禍成而無術, 此天下古今之患也。 禮樂之重, 大槪如此, 聖人因事節禮, 預防患難, 書籍所着不爲未盡, 而後世愚主忽而改之, 迷莫知弊, 明輔哲佐亦視爲常, 慮不及此。 予用不是。 凡宴享之儀, 皆用華制, 而習俗旣膠, 節目又疎, 勢不易革, 如何而可以易革? 非獨宴享事無無弊。 齒讓於大學, 敎其恭也, 頓首於庭下, 亦敎其恭也, 敎其恭者, 致其慢也。 一恭一慢, 俱有弊焉, 如何而可以無弊?
令都承旨洪應傳曰: "予於武臣, 則皆常任事, 知其能否矣, 汝等常不任事, 不知賢否。 故特令製述, 以觀汝等。 若有能者, 則予特擢用矣。" 參試官蓬原府院君 鄭昌孫、領議政申叔舟、右贊成具致寬、知中樞院事崔恒ㆍ成任ㆍ宋處寬、禮曹參判金吉通入侍。 設酌, 令入侍內宗親、宰樞射小的, 賜帑。 至昏賜文臣等燈火, 人定乃出。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7책 56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신분-양반(兩班) / 인사-선발(選拔)
- [註 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