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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30권, 세조 9년 1월 12일 임인 1번째기사 1463년 명 천순(天順) 7년

중외의 호패를 자세히 하기 위해 세부 항목을 규정한 사목

이 앞서 중외(中外)의 호패(號牌)014) 를 이미 이루었는데, 임금이 그것이 정(精)하지 못함을 염려하여 다시 사목(事目)을 짓기를,

"1. 호패(號牌)는 《대전(大典)》에 의하여 체제(體制)를 고치되, 【당상관(堂上官)은 상아(象牙)를 쓴다. 길이[長]는 3치[寸] 5푼[分], 너비[廣]는 1치 1푼이며, 우골(牛骨)·녹각(鹿角)도 통용한다. 3품 이하 천구(賤口)에 이르기까지는 잡목(雜木)을 쓴다. 길이는 4치, 너비는 1치 5푼이며, 영조척(營造尺)을 쓴다.】 을유년015) 12월 그믐날[晦日]을 기한으로 하여 갱신(更新)한다. 경중(京中)은 한성부(漢城府)에서, 외방(外方)은 도회소(都會所)016) 에서 반드시 3원(員)을【수령(守令) 1인, 경차관(敬差官)017) 1인, 분대(分臺)018) 1인.】 갖추고, 대군(大君) 이하 노자(奴子)는 반드시 천적(賤籍)에 준(准)하여 급패(給牌)할 것.

1. 제읍(諸邑)의 수령 등은 친히 도회소(都會所)에 이를 수가 없으니, 일을 잘 아는 전함 조관(前銜朝官)을 가려서 보내게 할 것.

1. 양계(兩界)019)종성(鍾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삼수(三水)·갑산(甲山)·의주(義州)·삭주(朔州)·벽동(碧潼)·창성(昌城)·강계(江界)·이산(理山) 등과 같은 읍(邑)은 도회에 나가지 말고, 경차관(敬差官)·분대(分臺) 등이 순행하며 3원(員)을 갖추어 급패(給牌)할 것.

1. 비록 양적(良籍)은 없더라도 만약 여러 해 동안을 양인(良人)으로서 여럿이 함께 아는 자는 분간(分揀)하여 계문(啓聞)해서 속량(屬良)할 것.

1. 천적(賤籍)에 없는 자는 속량(屬良)하고, 비록 천적(賤籍)은 없더라고 만약 여러 해 동안 역사한 것을 여럿이 함께 아는 자는 이치가 마땅히 속천(屬賤)하여야 하나, 그러나 혹 빈궁(貧窮)으로 인하고 혹 부득이한 사고로 인하여서 남에게 역사한 자는 분간(分揀)하여 계문(啓聞)할 것.

1. 호패(號牌)를 성급(成給)할 때, 치부책(置簿冊) 안에, 출패인(出牌人)020) 의 사는 마을 이름[里名]과 의거한 문안(文案)의 명목(名目)을 갖추 써서 【문안 명목은 양(良)·천적(賤籍)과 분간한 취지(取旨) 등류(等類)와 같은 것.】 뒤에 빙고(憑考)로 할 것.

1. 대군(大君) 이하 종친(宗親)의 노비(奴婢)는 천적(賤籍)에 서제(書題)하되 반당(伴儻)021) 은 일을 잘 아는 노자(奴子) 중에서,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노비(奴婢)는 천적(賤籍)하되, 반당(伴儻)은 일을 잘 아는 노자(奴子) 중에서 가지고 나아가 고준(考准)한다. 만일 위오(違誤)가 있는 자는 그 서제(書題)에 반당 노자(伴儻奴子)라 하여 중론죄(重論罪)를 따르고, 3품 이하는 호패를 발급할 때 불러다 신문할 것.

1. 3품 이하 전함인(前銜人)과 유음인(有蔭人)은 모자(某子)·모년갑(某年甲)·본관(本貫)을 쓸 것.

1. 양인(良人)은 모자(某子)·모년갑(某年甲)·본관(本貫)·형모(形貌)를 쓸 것. 【양인(良人)으로부터 사천(私賤)에 이르기까지는 뒷면에 연호(年號)·일월(日月)을 쓴다.】

1. 보충군(補充軍)에서 거관(去官)022) 한 첩자(妾子)는 모자(某子)·모년갑(某年甲)·본관(本貫)·형모(形貌)를 쓰고, 미거관인(未去官人)은 모비첩자(某婢妾子)·모년갑(某年甲)·형모(形貌)를 쓸 것.

1. 공천(公賤)은 모사노(某司奴)·모년갑(某年甲)·형모(形貌)·부모(父某)를 쓸 것.

1. 향리(鄕吏)·역자(驛子)는 모관(某官)·모역(某驛)의 향리·역자, 모자(某子)·모년갑(某年甲)·형모(形貌)를 쓸 것.

1. 형모(形貌)는 얼굴의 흉터[面瘢]·애꾸눈[目眇]·귀의 쪼개짐[耳割]·언청이[唇缺]·손발 절름발이[手足蹇] 등과 같은 것이 표징[表]이니, 겉에 흔적(痕迹)이 있는 것을 쓸 것.

1. 전인(篆印)은 경중(京中)은 ‘한성(漢城)’ 2자(二字)를, 외방(外方)은 ‘읍명(邑名)’ 2자(二字)를 전·후면(前後面)의 상·하단(上下端)에 찍게 할 것.

1. 기한에 미쳐서도 호패를 받지 못한 자는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023) 로 논(論)하되, 공천(公賤)은 각각 그 사(司)의 해당 관원[該員]과 그 읍(邑)의 수령(守令)을, 사천(私賤)은 본주(本主)를 아울러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로 논하여, 그 사천(私賤)은 속공(屬公)하고 전가족을 변방으로 옮길 것.

1. 몰래 다른 사람의 노비(奴婢)와 양인(良人)이 노비가 되게 기록한 자는 장(杖) 1백 대에 전가족을 변방으로 옮기고, 경차관(敬差官)·수령(守令)·품관 해리(品官該吏) 등이 혹 자세히 살펴서 호패를 주지 않았다든가 혹 가만히 숨어서 호패를 주었다든가 혹 원한을 끼었다든가 혹 때로 호패를 주지 않겠다고 요구한 자는 장(杖) 1백 대에 전가족을 변방으로 옮기고, 수령·품관 해리로서 검거하지 않는 자는 장(杖) 1백 대에 충군(充軍)하게 할 것.

승인(僧人)의 호패(號牌)는,

1. 호패의 체제는 원경(圓徑)024) 이 2치[寸]이며, 앞에는 직명(職名)·연갑(年甲)·형모(形貌)를 쓸 것. 【형모(形貌)와 일월(日月)은 속인(俗人)의 예(例)에 의하여 쓴다.】

1. 전인(篆印)은 경중(京中)은 예조(禮曹)를, 외방(外方)은 읍명(邑名)을 전·후면의 상·하단에 찍게 할 것.

1. 경중은 양종(兩宗)025) 에서 각각 그 소속한 절에 사는 승인(僧人)의 직명(職名)·연갑(年甲)·형모(形貌)를 갖추어 예조(禮曹)에 전보(傳報)하고, 외방은 모든 절[諸寺]의 색장승(色掌僧)을 경중(京中)의 예(例)에 의하여 그 읍(邑)에 써서 바치되, 호패를 받을 때는 각각 도첩(度牒)을 가지고 친히 예조(禮曹)와 도회관(都會官)에 이르러서 고준(考准)하여 호패를 주며, 그 중에 나이 50이상과 여럿이 함께 심행(心行)이 있음을 아는 자는 비록 도첩(度牒)이 없더라도 또한 〈호패를〉 주게 할 것.

1. 경중과 외방[京外]은 호패를 준 중을 성적(成籍)하되, 경중은 양종(兩宗)과 예조(禮曹)에, 외방은 그 읍(邑)과 예조에 간직하고, 호패를 잃어버린 자는 고적(考籍)하여 고쳐 주게 할 것.

1. 위조(僞造)한 자는 속인(俗人)의 예(例)에 의하여 논죄(論罪)한 뒤에 환속(還俗)할 것.

1. 속인(俗人)에 의하여 기한을 정해서 급패(給牌)할 것.

1. 위 항목의 사건(事件) 외에 이미 전의 수교(受敎)는 아울러 준행(遵行)하지 않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62면
  • 【분류】
    호구-호적(戶籍) / 신분(身分)

  • [註 014]
    호패(號牌) : 조선조 때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차게 하였던 신분을 증명하는 패. 앞면에는 성명·나이·난 해의 간지(干支)·신분·거주 등을 새기고, 뒷면에는 관아(官衙)의 낙인을 찍었음.
  • [註 015]
    을유년 : 1465 세조 11년.
  • [註 016]
    도회소(都會所) : 각도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모으기 위하여 설치하던 임시 관아(官衙).
  • [註 017]
    경차관(敬差官) : 나라에서 일이 있을 때 각 지방에 임시로 파견하던 관원.
  • [註 018]
    분대(分臺) : 지방의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중앙에서 따로 파견하는 어사대.
  • [註 019]
    양계(兩界) : 함길도와 평안도.
  • [註 020]
    출패인(出牌人) : 호패를 내는 사람.
  • [註 021]
    반당(伴儻) : 조선조 때 왕자(王子)·공신(功臣)이나 당상관(堂上官)의 문무 신료(文武臣僚)들이 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데리고 다니던 수종인.
  • [註 022]
    거관(去官) : 임기가 만료되어 벼슬을 갈던 것을 말함. 《세종실록》 제1권에 보면, "시속(時俗)에서 직질(職秩)이 차서 관직을 가는 것을 거관이라 한다[俗以秩滿遞官者 爲去官]"고 하였음.
  • [註 023]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 임금이나 왕세자의 명령을 위반하는 자를 다스리는 율(律). 《대명률》 제서유위(制書有違)조에, "무릇 제서(制書)를 받들어 시행하는 데 위반한 자는 장(杖) 1백 대에 처하고, 황태자의 영지(令旨)를 위반한 자도 죄가 이와 같다." 하였음.
  • [註 024]
    원경(圓徑) : 원의 직경.
  • [註 025]
    양종(兩宗) : 교종(敎宗)과 선종(禪宗).

○壬寅/先是, 中外號牌已成, 上慮其未精, 更作事目。 "一, 號牌依《大典》, 改其體制, 【堂上官用象牙, 長三寸五分、廣一寸一分, 牛骨、鹿角通用。 三品以下至賤口用雜木, 長四寸、廣一寸五分, 用營造尺。】 以乙酉年十二月晦日爲限更始。 京中漢城府、外方都會所必備三員, 【守令一人、敬差官一人、分臺一人。】 大君以下奴子必準賤籍給牌。 一, 諸邑守令等不能親到都會所, 擇解事前銜朝官遣之。 一, 兩界若鍾城穩城慶源慶興三水甲山義州朔州碧潼昌城江界理山等邑勿赴都會, 敬差官分臺等巡行, 備三員給牌。 一, 雖無良籍, 若多年爲良, 衆所共知者, 分揀啓聞屬良。 一, 無賤籍者屬良, 雖無賤籍, 多年役使, 衆所共知者, 理當屬賤, 然或因貧窮, 或因不得已事故, 而役事於人者, 分揀啓聞。 一, 號牌成給時置簿冊內 出牌人所居里名及所據文案名目備書, 【文案名目如良賤籍及分揀取旨等類。】 以憑後考。 一, 大君以下宗親奴婢賤籍書題, 伴儻解事奴子中, 堂上官以上奴婢賤籍, 伴儻解事奴子中持詣考準。 如有違誤者, 其書題伴儻奴子從重論罪, 三品以下發牌招來問之。 一, 三品以下前銜人及有蔭人書某子某年甲本貫。 一, 良人書某子某年甲本貫形貌 【自良人至私賤後面書年號日月。】 一, 補充軍去官妾子, 書某子某年甲本貫形貌, 未去官人書某婢妾子某年甲形貌。 一, 公賤書某司奴某年甲形貌父某。 一, 鄕吏、驛子書某官某驛鄕吏驛子, 某子某年甲形貌。 一。 形貌若面瘢、目眇、耳割、唇缺、手足蹇等表表有痕者書之。 一, 篆印京中則 ‘漢城’ 二字外方則 ‘邑名’ 二字前後面上下端印之。 一, 不及限受牌者, 以制書有違律論, 公賤則各其司該員, 其邑守令, 私賤則本主竝以制書有違律論, 其私賤屬公, 全家徙邊。 一, 暗錄他人奴婢及良人爲奴婢者, 杖一百全家徙邊。 敬差官守令品官該吏等或不詳察給牌, 或潛隱給牌, 或挾恨, 或要求不時給牌者, 杖一百、全家徙邊。 守令、品官、該吏不檢擧者杖一百、充軍。 僧人號牌則, 一號牌體圓(經)〔徑〕 二寸, 前書職名年甲形貌 【形貌日月依俗人例書之。】 一篆印京中則禮曹, 外方則邑名, 前後面上下端印之。 一, 京中則兩宗各其所屬寺住居僧人具職名年甲形貌, 傳報禮曹, 外方則諸寺色掌僧依京中例書呈其邑, 受牌時各持度牒, 親到禮曹及都會官考準給牌, 其中年五十以上及衆所共知有心行者, 雖無度牒亦給。 一, 京外給牌僧成籍, 京中藏于兩宗及禮曹, 外方則其邑及禮曹, 失牌者考籍改給。 一, 僞造者依俗人例, 論罪後還俗。 一, 依俗人定限給牌。 一, 上項事件外已前受敎, 竝不遵行。"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62면
  • 【분류】
    호구-호적(戶籍) / 신분(身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