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무경(御製武經)》 서(序)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제장(諸將)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어제무경(御製武經)》 서(序)를 보여주었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예전에 병법(兵法)을 논한 것이 많았으나 이제 받들어 숭상하는 것은 칠서(七書)뿐이다. 모두 선걸(先傑)445) 이 일을 겪어서 안 바이며 생각을 쌓아서 발(發)한 것이니, 정치를 제정하고 나라를 보호하는 데에 이보다 필요한 것은 없다. 구(求)할수록 더욱 깊고 쓰기에 궁함이 없으니, 비유하건대, 산봉우리를 대해 바라보고 올라갈수록 더욱 높은 것과 같으니, 능히 그 문(門)에 들어가는 자라야 바야흐로 엿볼 수 있다. 무릇 하늘이 물(物)을 내되 다리·이빨·날개·발톱을 주어 그 먹을 것을 구하고 그 업신여김을 막게 하고 그 성품을 편하게 하였으니, 하나의 이치가 모든 일에 통한다. 가정과 나라도 모두 그러하므로 그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농사이고 그 업신 여김을 막는 것은 군사이며 성품을 편안하게 함은 학문이니, 이 세 가지가 아니면 세도(世道)는 설 수 없다. 용렬하고 거칠고 미욱하고 자질구레한 무리들은 구류(九流)446) 의 설(說)을 외어도 일치(一致)의 도(道)를 알지 못하고, 〈무경을〉 일찍이 보지 아니하고 무인(武人)의 학문을 했다고 가리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세종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병법(兵法)은 알지 않을 수 없으니, 친히 내 손자에게 준다.’고 하셨으니, 내가 성훈(聖訓)을 받들어 궁마(弓馬) 사이에서 병가(兵家)의 글을 정밀히 연구하여 대개 얻은 바가 있고 암합(暗合)한 곳이 없지는 아니하나, 또한 말로만 남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종(文宗)께서 내가 병법을 안다고 하여 내게 명하여 구결(口訣)과 해석을 붙이게 하시었으나, 내가 권남(權擥)·홍윤성(洪允成)과 더불어 정난(靖難)에 겨를이 없어 상세히 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다시 신숙주(申叔舟)·권남·최항(崔恒)·송처관(宋處寬)·홍응(洪應) 등과 더불어 구결(口訣)을 정하고 교주(校註)하기를 명하였으니, 거의 영재(英才)를 길러 사방에 공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른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54면
- 【분류】군사-병법(兵法) / 출판-서책(書冊)
○壬午/御思政殿, 召諸將, 設酌, 示《御製武經序》。 其辭曰:
古之論兵者多, 而今所宗尙七書而已。 皆先傑更事所知, 積思所發, 制治保邦, 無要於此。 求之益深, 用之不窮, 譬如對峯望山, 陟之彌高, 能入其門者, 方乃可窺。 夫天之生物, 脚之、齒之、翼之、爪之, 求其食, 備其侮, 安其性, 理一事通, 家國皆然, 故求其食者, 農也; 備其侮者, 兵也; 安其性者, 學也。 非此三者, 世道不竪。 庸麤迷碎之徒, 誦九流之說, 不知一致之道, 未嘗經目而指爲武人之學, 何笑如之? 世宗嘗曰, "兵不可不知。" 乃親授予孫子’, 予承聖訓, 弓馬之間, 究精兵家, 蓋有所得, 未必無暗合處, 亦非語言之所能喩人也。 文宗以予知兵, 命予口訣幷解, 予與權擥、洪允成不遑於靖難, 莫得而致詳焉, 今更與申叔舟、權擥、崔恒、宋處寬、洪應等定口訣, 命校註, 庶育英才, 收功四方云爾。
-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54면
- 【분류】군사-병법(兵法)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