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에서 상참 후 주연을 베풀고 권남의 건의에 따라 간관들을 석방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고 윤대(輪對)를 행하니, 좌의정(左議政) 권남(權擥)·우의정 한명회(韓明澮)·공조 판서 심결(沈決)·형조 판서 박원형(朴元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술자리를 베풀고, 명하여 심결에게 술을 올리게 하고, 권남·한명회 등에게 이르기를,
"왕(王)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진실로 특수한 은혜로써 대우함은 불가하다. 그러나 옛 친구로 어찌 이 두 사람과 같은 자가 있겠느냐?"
하였다. 권남과 더불어 의논하여 문사(文士)의 방도[方]를 작성(作成)하고, 드디어 승정원에서 가려 낸 문신(文臣)을 보이며, 권남에게 그 버릴 만한 자를 삭제하여 아뢰게 하였다. 왕세자를 불러 술을 올리게 하고, 입시(入侍)하였던 제신(諸臣)이 모두 전(殿)에서 내려가니, 권남을 불러 어탑(御榻)에 나아오게 하여, 유교(儒敎)·불교(佛敎)·노자(老子)의 도(道)를 의논하였다. 권남이 대답하기를,
"신은 노자(老子)의 도(道)에 적합하지 못하지만 인신(人臣)이 몸을 처세하는 도(道)만은 배웠습니다. 이르기를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는다.[知止不殆 知足不辱]’고 하였으니, 이와 같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그칠 줄을 알고 족한 것을 아는 의(義)를 논(論)하기를,
"이것은 노자(老子)가 나로 하여금 용병(用兵)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니, 권남이 대답하기를,
"신이 아뢴 것은 다만 인신이 몸을 처세하는 도를 말한 것이니, 상교(上敎)와는 같지 않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박원형(朴元亨)을 앞으로 부르니, 권남이 아뢰기를,
"박원형은 오래도록 형조(刑曹)에 벼슬하였으니, 청컨대 모름지기 체직(遞職)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불가하다. 박원형이 아니면 이 관아를 다스릴 수 없다."
하고, 이어서 박원형에게 명하기를,
"너는 모름지기 활인(活人)을 많히 해야 한다."
하니, 권남이 아뢰기를,
"박원형(朴元亨)은 형관(刑官)에 오래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원한을 맺지 않으려고 하여, 무릇 도둑질한 자도 만약 장물(贓物)이 없으면 모두 다 방면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도적이 두려워하지 않으니 해(害)가 평민(平民)에게 미쳤습니다."
하고, 권남이 인하여 아뢰기를,
"사방지(舍方知)는 모름지기 정유를 국문하여 과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째서이냐?"
하였다. 권남이 대답하기를,
"남자로서 과부(寡婦)의 집을 출입하였으니 죄가 진실로 다스릴 만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사방지가 이순지(李純之)의 딸과 간통하였다는 것이냐?"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러합니다. 그가 여복(女服)을 입고 그 집에 있은 것이 거의 10년이나 되니, 그 서로 간통한 것이 명확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일은 대신(大臣)이 가문(家門)에 관계되고 형적(形迹)이 증거될 만한 것이 없는 까닭으로 내가 국문하지 않았으며, 또 이순지(李純之)는 스스로 처치(處置)함이 있다."
하니, 권남이 대답하기를,
"신은 본디 이순지의 사람됨을 아는데, 반드시 처치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가 간원(諫院)의 관리(官吏)를 국문한 것도 그른가?"
하니, 권남이 대답하기를,
"간원의 관리가 능히 다 그 연고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스스로 계청(啓請)하였으니, 진실로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간관(諫官)이라는 것은 말하는 것을 직책(職責)으로 삼는 까닭으로 무릇 들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감히 간하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부득이한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만일 좋은 말이면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만일 좋지 못한 말이면 진실로 마땅히 버려두고 논(論)하지 말게 하며 반드시 그 죄를 다스릴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임금이 즉시 도승지 홍응(洪應)을 불러 간원의 관리를 석방하고, 이어서 명하여 권남에게 술을 올리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재추(宰樞)로 하여금 노비(奴婢)를 황해도(黃海道)·강원도(江原道)·평안도(平安道)에 옮겨 묵은 땅을 개간하여 경작하도록 하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사헌부(司憲府)에 전지하기를,
"여러 재추(宰樞)로 전지를 개간하지 않는 자도 핵실하여 아뢰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8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3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 / 윤리(倫理) / 정론-간쟁(諫諍) / 농업-개간(開墾)
○丙辰/御思政殿, 受常參、視事、輪對。 左議政權擥、右議政韓明澮、工曹判書沈決、刑曹判書朴元亨等入侍。 設酌, 命決進酒, 謂擥、明澮等曰: "王者無私, 固不可以殊恩待之。 然故舊安有如此二人者乎?" 與擥議作成文士之方, 遂以承政院所揀文臣示之, 擥削其可去者以啓。 召王世子進酒, 入侍諸臣皆下殿, 召擥進御榻, 議儒、釋、老子之道。 擥對曰: "臣不會老子之道, 但學人臣處己之道, 曰, ‘知止不殆, 知足不辱, 如斯而已。" 上論知止、知足之義曰: "是老子欲使予不用兵耳。" 擥對曰: "臣之所啓, 但言人臣處己之道, 非如上敎。" 上又召元亨於前, 擥啓: "元亨久任刑曹, 請須遞職。" 上曰: "不可。 非元亨, 不能治此官。" 仍命元亨曰: "汝須多活人。" 擥曰: "元亨久於刑官, 欲不結怨于人, 凡爲盜者, 若無贓則悉皆放之。 以此盜賊不懼, 害及平民。" 擥因啓: "舍方知須當鞫情科罪。" 上曰: "何也?" 擥對曰: "以男子出入寡婦之家, 罪固可治。" 上曰: "然。 則以舍方知爲奸李純之之女乎?" 對曰: "然。 彼衣女服, 在其家幾十年, 其爲相奸明甚。" 上曰: "此事關係大臣家門, 而無形迹可據, 故予不鞫之。 且純之自有處置。" 擥對曰: "臣素知純之爲人, 必無所處置。" 上曰: "然則予之鞫諫院官吏者, 非乎?" 擥對曰: "諫院官吏不能悉知其故, 妄自啓請, 信有罪矣。 然諫官者, 以言爲責, 故凡有所聞, 必欲敢諫, 是皆不得已耳。 殿下如其善言, 則嘉納之, 如其不善, 則固當置而勿論, 不必治其罪也。" 上卽召都承旨洪應, 釋諫院官吏, 仍命擥進酒。 先是, 令宰樞徙奴婢于黃海、江原、平安道耕墾陳地。 至是, 傳旨司憲府曰: "劾諸宰樞不墾田者以啓。"
- 【태백산사고본】 10책 28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3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 / 윤리(倫理) / 정론-간쟁(諫諍) / 농업-개간(開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