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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25권, 세조 7년 9월 26일 계해 1번째기사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한명회가 종사관 김수령을 보내 변방의 방비에 대해 치계하다

처음에 올량합(兀良哈) 세 사람이 밤에 동관(潼關) 장성(長城)에 들어와서 진병(鎭兵)의 허실(虛實)을 염탐하였는데, 첨절제사(僉節制使) 오한(吳翰)이 꾀를 베풀어 앞을 막아 두 사람을 쏘아 죽이고, 한 사람은 화살을 맞고 달아났다. 오한이 그 머리를 함(函)에 넣어 한명회(韓明澮)에게 보첩(報捷)552) 하니, 종사관(從事官) 김수령(金壽寧)을 보내어 치계(馳啓)하고, 인하여 방어(防禦)할 사의(事宜)를 진술하였다. 임금이 교태전(交泰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오한의 일은 가히 기쁘다. 여러 종류의 야인(野人)이 과연 귀명(歸命)553) 하였느냐?"

하니, 김수령이 대답하기를,

"한명회가 처음 변경에 이르러 연강(沿江)의 여러 진(鎭)에 이문(移文)하여 배와 뗏목을 만들어서 강을 건널 계획을 하게 하고, 또 여러 진으로 하여금 각각 방패(防牌) 5백 명을 갖추어 둔영(屯營)할 준비를 하게 하니, 알타리(斡朶里) 등이 한명회를 보고 말하기를, ‘배는 만들어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하니, 한명회가 말하기를, ‘장차 군사들이 강을 건너려고 한다.’ 하고, 비밀히 사람을 시켜 사사로이 알타리에게 말하게 하기를, ‘조정에서 나라의 후문(後門)554) 이 아직 편치 못하기 때문에 이제 한재상(韓宰相)555) 을 보내어 왔는데, 한재상은 주상의 신임(信任)하는 바가 되어 팔도(八道)의 군사를 통솔하고 형벌과 상주는 것이 손 안에 있고, 이르는 곳에 공을 이루었다. 예전에 왜놈[倭奴]을 쳐서 일도(一島)를 멸하고 그 항복한 자는 지금까지도 복종하는데, 너희들이 어찌 일찍이 보았겠느냐? 한재상이 이르렀으니, 나는 야인(野人)의 죽을 곳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더니, 알타리 마구음파(馬仇音波)가 말하기를, ‘저들이 마땅히 귀순(歸順)하여 명령대로 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며칠 있다가 여러 종류의 야인들이 연달아 이르러서 전후(前後)에 와서 항복하는 자가 무려 수백 명이었습니다. 한명회가 여러 추장(酋長)에게 이르기를, ‘지금 성상(聖上)께서 밝게 판단하시니, 순종하면 무사할 것이나 순종치 아니하면 주벌(誅罰)하여 너희를 용서하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중한 군사를 가지고 너희에게 임한 것은 바로 이를 위한 것이다.’ 하니, 여러 추장(酋長)들이 모두 고두(叩頭)하며 말하기를, ‘여러 야인들이 장군(將軍)의 이르는 것을 듣고 문득 머리를 조아려 항복을 청하려고 합니다. 활에 다친 새는 굽은 나무를 보아도 놀라고, 일찍이 곰에게 다친 자는 검은 나무 등걸을 보아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잃는 것인데, 우리들이 감히 못하는 바입니다.’ 하므로, 한명회가 말하기를, ‘진실로 너희 말과 같으면 마땅히 위안(慰安)시키겠다.’ 하니, 여러 추장들이 고두(叩頭)하며 말하기를, ‘많은 별들이 하늘에 반짝여도 홀로 태백성(太白星)이 빛나고, 크고 작은 모든 신하들이 조정에 있어도 홀로 영공(令公)께서 영걸(英傑)이 되십니다. 성상께서 영공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살리게 하는 바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심이 여기에 이르시니, 어찌 감히 두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낭자(狼子)556) 의 야인들의 마음이 어찌 반드시 순종할 것을 보증하랴?"

하니, 김수령(金壽寧)이 대답하기를,

"신이 저들의 정세(情勢)를 익히 보건대, 내가 부르면 날뛰고 굶주리면 남에게 붙습니다. 저들이 관군(官軍)이 날마다 이르는 것을 보고 형세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 말을 들으니, 북변(北邊)에 다다른 듯하다. 내가 한명회가 있어 싸우지 아니하고 사람을 굴복시켰으니, 이른바, ‘사람이 장성(長城)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고, 드디어 김수령에게 좋은 음식을 내려 주고,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였다. 임금이 중궁(中宮)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바로 한명회의 종사관(從事官)이오. 내가 일찍이 북변의 일을 근심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였더니, 이 사람이 오니 내가 안심이 되오."

하였다. 곧 도승지(都承旨) 김종순(金從舜)을 불러 이르기를,

"오한(吳翰)은 변경(邊境)에 공(功)이 있고 김수령(金壽寧)은 변경 일을 자세히 보고하니, 오한은 한 자급(資級)을 더하고 김수령은 세 자급을 뛰어 올리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뒤에 이조(吏曹)에서 김수령은 파적(破賊)한 공이 없는 이유로써 한 계급만 더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5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7책 488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인사-관리(管理)

  • [註 552]
    보첩(報捷) : 승전을 보고함.
  • [註 553]
    귀명(歸命) : 따르고 복종함.
  • [註 554]
    후문(後門) : 조선조 때 동북면(東北面) 여진(女眞) 지역과 통하던 관문(關門). 시대에 따라 그 위치가 일정하지 않았음.
  • [註 555]
    한재상(韓宰相) : 한명회.
  • [註 556]
    낭자(狼子) : 이리.

○癸亥/初, 兀良哈三人夜入潼關長城, 詗鎭兵虛實, 僉節制使吳翰設奇邀截射二人斃之, 一人中箭遁去。 函其首, 報捷韓明澮, 遣從事官金壽寧馳啓, 仍陳防禦事宜。 上御交泰殿, 引見曰: "事可喜。 諸種野人果已歸命乎?" 壽寧對曰: "明澮初至邊, 移文沿江諸鎭, 造舟及桴, 爲渡江計, 又令諸鎭各具防牌五百, 爲屯營之備, 斡朶里等見明澮曰, ‘造舟何爲?’ 明澮曰, ‘將以師渡江。’ 密使人以其私言於斡朶里曰, ‘朝廷爲後門尙梗, 今遣韓宰相來矣, 韓宰相爲上信任, 都摠八道兵, 刑賞在手, 所至有功。 昔伐倭奴, 殄殲一島, 其降者至今賓服, 汝輩豈嘗見之耶? 韓相之至, 吾不知野人死所矣。’ 斡朶里 馬仇音波曰, ‘彼當投順, 惟其所命。’ 居數日, 諸種野人絡繹而至, 前後來投者, 無慮數百人。 明澮語諸酋曰, ‘今聖上明斷, 順且無事, 不順則誅, 不汝饒也。 吾握重兵臨汝, 正爲此也。’ 諸酋皆叩頭謝曰, ‘諸野人聞將軍至, 便欲稽顙請命。 傷弓之鳥, 且驚曲木, 嘗傷於(態)〔熊〕 者, 見黑査不覺神喪, 我輩所以未敢也。’ 明澮曰, ‘信如爾言, 且當慰安。’ 諸酋叩頭曰, ‘列星昭天, 獨太白爲光, 群臣在朝, 獨令公爲英。 聖上遣令公, 所以活我也。 惠我至此, 何敢携貳?" 上曰: "狼子野人, 惡保其必順乎?" 壽寧對曰: "臣熟觀彼人情勢, 飽則陸梁, 飢則附人。 彼見官軍日至, 勢不得不降。" 上曰: "聞爾之言, 如臨北邊。 吾有明澮, 不戰而屈人兵, 所謂賢於長城者也。" 遂賜壽寧珍膳, 命進酒。 上語中宮曰: "此人乃韓明澮從事官也。 予當宵(肝)〔旰〕 北顧, 未嘗置懷, 斯人之來, 予心乃安。" 乃召都承旨金從舜謂曰: "吳翰有邊功, 壽寧詳報邊事, 可加一階, 招壽寧三階。" 後吏曹以壽寧無破賊功, 只加一階。


  • 【태백산사고본】 9책 25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7책 488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