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가 치계한 글에 대해 어찰로 답하다
임금이 한명회(韓明澮)의 치계(馳啓)한 글 끝에 어서(御書)로 말하기를,
"야인(野人)을 많이 보내는 것은 옳지 않으며 뒤에 계속하기가 어렵다. 저들이 만약 노여워하거던 핑계하기를, ‘너는 공(功)이 없으니, 네가 공을 세워서 다시 오라.’고 하면, 그 뜻을 조금 풀리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억지로 오고자 하거던 힘으로 제어할 뿐이다. 한 번 그 단서(端緖)를 열면 후일에는 노여움이 처음보다 반드시 더할 것이다. 또, 중국 조정에서 꺼리는 바라고 핑계하여 거절할 것이다."
하였는데, 주서(注書)에게 명하여 좌의정(左議政) 신숙주(申叔舟)에게 가서 보이게 하니, 신숙주가 말하기를,
"우두(亐豆)·징내(澄乃) 등은 바로 니마차(尼麽車) 사람이고 화라온(火剌溫) 사람이 아닌데, 지금 많이 온다는 자들은 어느 종류의 사람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화라온은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도둑질하기를 꾀하고 니마차는 바야흐로 고령(高嶺)의 싸움으로써 스스로 의심하니, 형세가 거절할 수 없습니다. 만약 중국 조정에서 꺼리는 바라고 핑계하면 화라온은 일찍이 중국에 왕래하였으므로 오히려 가하거니와 니마차는 중국과 통하지 아니하니 거절할 말이 없으며, 또 중국을 가지고 말하여 약함을 보일 수 없습니다. 신은 가만히 이르건대, 마땅히 바른 대로 고하기를, ‘너희들이 오는 자가 많으면 역로(驛路)가 소란하므로 소원을 다 따를 수 없다. 또 올량합(兀良哈)이 나라를 배반하였으니 너희들이 쳐서 공을 세우면 와도 좋다.’고 하고, 스스로 추대된 추장(酋長) 몇 사람을 올려보내게 하고 올라오지 못한 사람은 후하게 대접해 보내면 원망을 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은 또 헤아리건대, 지금 많이 온다는 자는 반드시 니마차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듣건대, 우두(亐豆) 등도 또한 팔리(八里)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이에 오려고 한다 합니다. 니마차는 내왕하는 자 외에 오는 자는 역시 많지 아니하니, 이제는 형편에 따라 많고 적게 할 것이며 억지로 저지하지 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좌의정(左議政) 권남(權擥) 등과 더불어 야인을 대접하는 편리하고 마땅한 것을 의논하니, 이조 판서(吏曹判書) 최항(崔恒)·공조 판서(工曹判書) 윤사윤(尹士昀)·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순(金淳)은 말하기를,
"야인이 정성을 바쳐서 오기를 다투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일이지마는, 그러나 원하는 대로 따라 허락하여서 한 번 그 단서를 열면 뒤에 지탱하기가 반드시 어려울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북방(北方)이 피폐(疲弊)하여 우전(郵傳)480) 이 쇠잔하니, 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중국에서 야인과 교통(交通)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지극히 엄하니, 이 뜻으로 잘 타이르면 저들이 원망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고식지계(姑息之計)481) 로 그 종자(從者)는 줄이고 우두머리만 올라오기를 허락하면, 저들의 오지 못하는 자가 반드시 원망이 생겨 도모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고, 원성군(原城君) 원효연(元孝然)·한성부 윤(漢城府尹) 황효원(黃孝源)·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이효장(李孝長)은 말하기를,
"북정(北征)이 오래지 아니하여 올량합(兀良哈) 등이 항상 원수 갚을 꾀를 품고 있고, 또 올적합(兀狄哈) 등은 이미 오래 대접하였는데 지금 갑자기 중국 조정에서 금한다고 핑계하여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분원(忿怨)이 생길 것입니다. 올량합과 더불어 군사를 연하면 또 하나의 적이 생길 것이니, 예전부터의 관례(慣例)에 의하여 많고 적은 것을 불구하고 대접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하여 그 때의 의논이 결정되지 못하였는데, 명하여 신숙주(申叔舟)를 불러 다시 의논하게 하였다. 어찰(御札)로 한명회(韓明澮)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지금 경의 글을 보고 올적합(兀狄哈)의 오고자 하는 자가 많음을 알았다. 만약 그 원하는 대로 다 따른다면 오늘날의 폐단뿐만 아니라 뒤에 계속하기가 어렵다. 만약 일체 거절하면 저들의 원망이 생길 것이니, 지금 의심하고 막혔던 때를 당하여 형세가 옳지 못하다. 경은 마땅히 저들의 정세(情勢)를 헤아리고 우리의 사태(事態)를 살펴서 간략하게 올려보내되, 가령 저들의 열 사람이 와서 조현(朝見)하기를 청하거던 반드시 한 사람을 가려서 오게 하고, 그 우두머리에게 말하기를, ‘많이 보내면 역마(驛馬)와 공름(公廩)482) 에 폐가 있으니, 네가 헤아려서 데리고 올라가라.’고 하고 올라오지 못한 자에게는 후하게 대접해서 위로해 보내면, 저들이 그 우두머리를 원망할 것이고 우리에게 원망을 하지 않을 것이니, 경이 시의(時宜)를 짐작하여 임의(任意)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7책 481면
- 【분류】외교-야(野) / 외교-명(明) / 군사-군정(軍政)
- [註 480]
○乙酉/御書韓明澮馳啓書尾曰:
野人不可多送, 後難繼也。 彼若怒, 可托 "以汝無功, 汝可立功更來", 則小解其意。 然猶强來, 以力制之耳。 一開其端, 則後日之怒必重於初。 又可托以中朝所忌而拒之。
命注書往示左議政申叔舟, 叔舟以爲: "亏豆、澄乃等乃尼麽車之人, 非火剌溫也。 今多來者, 未知何種人也。 火剌溫則怨我不納而謀寇, 尼麽車則方以高嶺之戰自疑, 勢不可拒。 若托以中朝所忌, 則火剌溫嘗往來中國, 猶可也, 尼麽車不通中國, 拒之無辭, 且不可以中國爲辭而示弱也。 臣竊謂宜直告之曰, ‘汝等來者多, 驛路騷擾, 不得盡從所願。 且兀良哈叛國, 汝等立功, 則可也。’ 令自推酋長者幾人上送, 其不上來者, 厚待而送, 則似不取怨。 臣又計今多來者, 必尼麽車之人。 然聞亏豆等亦欲待八里之還乃來。 尼麽車素來往者外, 來者亦不多, 今因勢而多寡之, 勿强沮之, 何如?" 上與右議政權擥等議待野人便宜, 吏曹判書崔恒、工曹判書尹士畇、知中樞院事金淳以爲: "野人納款爭來, 誠爲美矣。 然隨願隨許, 一開其端則後必難支。 況今北方疲弊, 郵傳凋殘, 此亦不可不慮。 況上國交通之禁至嚴, 以此諭之, 彼不生怨。 若爲姑息之計, 約其從者, 只許頭酋上來, 則彼不得來者必生怨, 蔓難圖矣。" 原城君 元孝然、漢城府尹黃孝源、中樞院副使李孝長以爲: "北征未久, 兀良哈等常懷報仇之計, 且兀狄哈等待之已久, 今據托以中朝之禁, 拒而不納, 則必生憤怨。 與兀良哈連兵, 又生一敵, 依舊例不拘多少, 待之爲便。" 時議未定, 命召叔舟, 更議之。 御札諭韓明澮曰:
今見卿書, 知兀狄哈欲來者多。 若盡從其願, 則非徒今日之弊, 後難繼也。 若一切拒之, 則生彼之怨, 今當疑阻之時, 勢不可也。 卿宜量彼情勢, 審我事體, 從約上送, 假如彼十人來請朝見, 則必推一人而來, 語其首者曰, "多送則驛馬公廩有弊, 汝可量率上歸。" 其不得上來者, 厚慰還送, 則彼怨其首者, 不致怨於我, 卿其斟酌時宜, 任意施行。
- 【태백산사고본】 9책 2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7책 481면
- 【분류】외교-야(野) / 외교-명(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