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24권, 세조 7년 6월 21일 경인 3번째기사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함길도 도체찰사 구치관이 북방의 사변에 대해 치계하다
함길도 도체찰사(咸吉道都體察使) 구치관(具致寬)이 치계(馳啓)하기를,
"저 적(賊)에게 살해되고 노략질당한 갑산군(甲山郡) 혜산 구자(惠山口子)의 사람과 가축의 수를 종사관(從事官) 이문환(李文煥)이 추핵(推覈)하여 왔는데,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18인이고 노략질당한 말이 83필이었습니다. 정희문(鄭希文)은 척후(斥候)가 와서 고함으로 인하여 미리 적변(賊變)을 알고서도 적인(賊人)이 갔는지 머물러 있는지를 전혀 탐지(探知)하지 않고, 적이 성밑에까지 돌입(突入)함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어리둥절하여 알지 못하였습니다. 또 풀 벨 때를 당해서도 마땅히 친히 갑옷을 갖춘 기병(騎兵) 2백여 군사를 거느리고 성(城)에서 나와 수호해야 하는데도 31명으로 수호하게 하고, 밥 짓는 사람과 마필까지 빠짐없이 성에서 나오게 하여 살상과 노략질을 많이 당하게 하였으며, 마침내 추격도 하지 않았으니 군기(軍機)를 그르친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진무소(鎭撫所)·병조(兵曹)에 보이고, 마침내 병조에 내려서 죄를 정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4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7책 470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