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길도 도체찰사 신숙주가 변방의 야인의 사정을 아뢰다
함길도 도체찰사(咸吉道都體察使) 신숙주(申叔舟)가 치계(馳啓)하기를,
"신(臣)이 전일에 회령(會寧)에서 종성(鐘城)에 이르니, 유상동합(柳尙冬哈)이 말하기를, ‘듣건대 벌인(伐引)·하주(河主) 등지의 배마라합(裵麻剌哈)의 아들 아하(阿下) 등 적(賊)의 추장(酋長)들이 여러 적(賊)들을 초치(招致)하는 데 참여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원망하며 병사 수백 명을 모아서 변경(邊境)을 침범하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동화니치(童火爾赤)에게 〈중국의〉 칙서(勅書)를 받고자 하여 장차 벌인(伐引)으로 갈 것인데, 이로 인하여 아하(阿下) 등을 초무(招撫)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므로, 신(臣)이 말하기를, ‘아하(阿下)를 보고 말하기를, 「전일에 예조 판서(禮曹判書)가 성상(聖上)의 교지(敎旨)를 선포 효유(曉諭)하고자 하여 적(賊)의 무리들을 모두 불렀으나 이름을 들어서 부르지는 아니하였다. 지금 너희가 와서 알현(謁見)하고자 하거든 오라. 도둑질하면 도둑이니 너희의 하는 짓에 달린 것이다.」 하라.’ 하였습니다. 신(臣)이 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을 순찰(巡察)하고 도로 고영(古營)에 이르니, 유상동합(柳尙冬哈)이 와서 말하기를, ‘아하(阿下)가 병사 2, 3백 명을 모아 장차 경성(鏡城) 등지로 향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마침 이르러 개유(開諭)387) 하고 또 말하기를, 「너희들이 지금 마땅히 병사를 놓아 보내고, 가서 체찰사(體察使)를 알현(謁見)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니, 아하(阿下) 등이 즉시 병사를 해산하고 알현하러 오는데, 내일 마땅히 회령(會寧)에 도착할 것입니다. 또 동화니치(童火爾赤)도 또한 와서 알현하고자 합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유상동합(柳尙冬哈)을 거느리고 회령(會寧)에 도착하니 아하(阿下) 등 30여 인이 왔습니다. 신이 묻기를, ‘너희들이 모두 우리 성상(聖上)의 연휼(憐恤)을 받았는데도 은혜를 저버리고 적을 따른 것은 죄가 진실로 크다. 지금 또 간곡한 용서를 받고도 오히려 초청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여 원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아하(阿下)가 말하기를, ‘전일에 아비거(阿比車)에게 유혹당하였으니 그 죄가 이미 깊었습니다. 일찍이 여러 적들은 초청하는데도 초청받지 못하자, 나라에서 오로지 우리들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유상동합(柳尙冬哈)의 말을 듣고 즉시 명을 들으러 왔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고 하여 네가 도둑질하고자 하였으니, 지금 너를 놓아 주어 돌려 보내면 너는 돌아가서 병사를 거느리고 올 것이다.’ 하니,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감히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동화니치(童火爾赤) 등 30여 인이 특별히 칙서(勅書) 2통을 가지고 왔으므로, 신이 말하기를, ‘칙서(勅書)는 우리에게 관계가 없으니, 감히 열어서 볼 수가 없다.’ 하니, 동화니치(童火爾赤)가 말하기를, ‘이미 화해(和解)한 일이니, 본다고 해도 또한 무슨 방해가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유상동합(柳尙冬哈)이 말하기를, ‘저는 글을 알지 못하는데, 동화니치(童火爾赤)의 말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열어서 보시고 잘 설명하여 주소서.’ 하므로, 신이 받아서 보니 하나는 동화니치(童火爾赤)에게 유시(諭示)하는 글이었고, 하나는 유상동합(柳尙冬哈)에게 유시하는 글이었습니다. 신이 묻기를, ‘칙서(勅書)안에 너와 유상동합(柳尙冬哈)이 일을 보고하러 상주(上奏)하였다니, 사실 그러한가?’ 하니, 동화니치(童火爾赤)가 말하기를, ‘요동(遼東)에서 일찍이 사람을 시켜서 낭발아한(浪孛兒罕)의 죽은 상황을 물어 왔으므로 제가 제 2자(第二子) 광실탑(廣失塔)을 시켜서 「조선(朝鮮)에서 낭발아한(浪孛兒罕) 등 16인을 죽였으나 무슨 까닭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또 칙서(勅書) 안에 낭발아한(浪孛兒罕)을 유혹하여 자급(資級)을 올려 주고 상사(賞賜)를 주었던 일과 그들이 어찌하여 틈을 만들었던가를 물었다.’고 말하고, 인하여 낭발아한의 죄상(罪狀)을 말하였더니, 동화니치가 말하기를 ‘지금에야 그 죄상을 분명히 알겠습니다. 유혹하여 원수를 갚게 되었던 일은 제가 보고한 바가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칙서(勅書)가 명백한데, 너는 어찌 감히 숨기려하는가?’하니, 동화니치가 감히 변명하지 못하고, 다만 말하기를,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유상동합도 또한 보고한 것이 아닌가 물으니, 동화니치가 말하기를, ‘모두 제가 보고한 것입니다.’ 하고, 유상동합도 말하기를, ‘그때 저의 형(兄)이 서울에 올라가 있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다시 다른 사람을 시켰겠습니까? 이것은 동화니치가 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경성(鏡城)에 이르니 두난대(豆難歹)·타롱합(打弄哈) 등도 또한 이르렀습니다. 임고고(林高古)·이리합(伊里哈)·망내(忘乃)가 고(告)하기를, ‘두난대(豆難歹)·타롱합(打弄哈)이 송헌(宋憲)을 죽이고 빼앗아간 안장[鞍子] 따위의 물건을 가지고 왔으며, 우리들도 이 도둑들과 같이 왔기 때문에 관직(官職)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므로, 신이 두난대(豆難歹)에게 물으니, 두난대가 말하기를, ‘오촌(吾村)이 도둑질할 때에 제가 이를 중지시키려고 뒤쫓아갔으며, 안장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산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너의 동류(同類)가 고(告)한 것이다. 전죄(前罪)는 성상(聖上)께서 이미 용서하였으나 지금도 나를 속인다면 내가 어명(御命)을 받고 와서 한 지방을 다스리는데, 너 같은 더벅머리 놈에게 속임을 당하겠는가? 마땅히 사건의 진상을 성상께 아뢰어야 하며, 그것을 판 사람을 불러서 너와 대질(對質)시켜 죄를 논하고 처결(處決)하겠다.’ 하고, 그대로 두난대(豆難歹)·타롱합(打弄哈)을 억류(抑留)시키고, 또 망내(忘乃)도 잔류(殘留)시켜 증언(證言)하도록 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후하게 음식 대접을 하여 놓아 보냈습니다. 다음날 망내가 말하기를, ‘두난대(豆難歹) 등이 처음으로 자복하고자 하니, 다시 심문하기를 원합니다.’ 하므로, 신이 불러 와서 물었더니 일일이 모두 자복하였고, 또 말하기를, ‘그 나머지 의갑(衣甲)과 잡물(雜物)은 마땅히 가서 다 돌려 주겠습니다.’ 하고, 또 여러 도둑들의 빼앗아간 물건들을 차례로 진술하고 머리가 진흙탕에 닿도록 절하면서 죄를 청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네가 지금 자복하고 정상을 털어 놓았기 때문에 너를 용서하니, 안장을 송헌(宋憲)의 아들에게 돌려 주도록 하라.’ 하고, 신이 송헌(宋憲)의 아들에게 사사로이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하고, 또 양정(楊汀)으로 하여금 굳게 금지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이 출발하여 길주(吉州)로 향하는데, 경성(鏡城) 사람들이 와서 고(告)하기를. ‘송헌(宋憲)의 아들 두 사람이 중로(中路)의 다리 아래에 숨었다가 두난대(豆難歹)·타롱합(打弄哈)을 쏘아서 죽이고 달아났습니다. 호송군(護送軍)이 그들을 구(救)하기를 급히 하지 않았습니다.’ 하므로, 신이 양정(楊汀)으로 하여금 송헌의 아들과 호송(護送)하면서 능히 구(救)하지 못한 자들을 체포하여 가두고 추국(推鞫)하게 하였으며, 아울러 망내(忘乃)에게 사건의 진상을 물어서 아룁니다. 두난대 등의 아들과 조카를 불러서 그가 가지고 왔던 재물(財物)을 돌려 주고 그 시신(屍身)을 보내면서 약간 부의(賻儀)도 주었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이달 14일에 적(賊)들이 갑산(甲山) 영파보(寧波堡) 앞 들에 들어와 남녀 6명을 죽이고, 1명을 사로잡고, 우마(牛馬)을 약탈하여 갔습니다. 지군사(知郡事) 조경례(趙敬禮)가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추격하였으나 미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398면
- 【분류】외교-야(野)
- [註 387]개유(開諭) : 사리를 낱낱이 들어 타이르는 것.
○庚子/咸吉道都體察使申叔舟馳啓:
臣前日自會寧到鍾城, 柳尙冬哈言, "聞伐引、河主等處裴麻剌哈子阿下等賊酋, 以招諸賊而不得與爲怨, 聚兵數百欲犯邊。 今我欲受勑於童火爾赤將往伐引, 因招阿下等何如?" 臣曰, "見阿下語之曰, ‘前日禮曹判書欲宣諭上旨, 汎招賊輩耳, 非提名招之也。 今汝欲來見則來, 作賊則賊, 任汝所爲。’" 臣巡穩城、慶源、慶興, 還到古營, 尙冬哈來言, "阿下聚兵二三百, 將向鏡城等處, 適至開諭, 且語之曰, ‘汝等今宜放兵往謁體察使。 不然則必有大悔。’ 阿下等卽散兵來謁, 明日當到會寧。 又童火爾赤亦欲來謁。" 臣率尙冬哈到會寧, 阿下等三十餘人來。 臣問, "汝等俱被我聖上憐恤, 而背恩從賊, 罪固大。 今又蒙曲赦, 猶以不見招爲怨何也?" 阿下曰, "前日爲阿比車所誘, 罪已深矣。 曾招諸賊而不見及, 意國家獨不赦我等故耳。 今聞尙冬哈言, 卽來聽命。" 臣曰, "我不招汝, 汝欲爲賊, 今放汝還, 汝歸率兵而來。" 皆叩頭謝不敢。 童火爾赤等三十餘人持勑書二道來, 臣曰, "勑書不干於我, 不敢開見。" 火爾赤曰, "旣是和解事, 見亦何害?" 尙冬哈曰, "吾不知書, 火爾赤之言, 安可信? 願開見開說。" 臣受見, 一諭火爾赤, 一諭尙冬哈。 臣問, "勑內汝與尙冬哈奏報事, 然乎?" 火爾赤曰, "遼東曾使人問孛兒罕死狀, 我使第二子廣失塔報, ‘朝鮮殺孛兒罕等十六人, 然不知何故也。’" 臣又(聞)〔問〕 , "勑內誘孛兒罕陞賞事, 何以誣構?’", 因語孛兒罕罪狀, 火爾赤曰, "今乃明知其罪。 誘致報讎事, 非我所報。" 臣曰, "勑書明白, 汝何敢隱?" 火爾赤不敢辨, 但曰, "無。" 臣問, "尙冬哈亦奏報乎?" 火爾赤曰, "皆我所報。" 尙冬哈曰, "其時我兄赴京, 何緣更使他人? 此火爾赤所爲也。" 臣到鏡城, 豆難歹、打弄哈等亦到。 林高古、伊里哈、忘乃告曰, "豆難歹、打弄哈殺宋憲, 取鞍子等物持來, 我等與此賊同來, 故不得受職。" 臣問豆難歹, 豆難歹曰, "吾村作賊時, 我欲止之追來耳, 鞍子亦買於他人。" 臣曰, "此皆汝同類所告。 前罪, 上旣赦之, 今乃欺我, 我受命而來, 節度一方, 爲汝竪子所欺乎? 當啓事意, 招所賣之人, 與汝對論處決。" 乃留豆難歹、打弄哈, 又留忘乃爲證, 餘皆厚饋放之。 翼日忘乃言, "豆難歹等欲首服, 願更問。" 臣呼來問之, 一一俱服, 且曰, "其餘衣甲雜物, 當往盡還。" 又歷陳諸賊掠去之物, 泥首請罪。 臣曰, "汝今自服輸情故赦。 汝鞍子令還憲子。" 臣語憲子不得私讎之意, 又令楊汀堅禁。 臣發向吉州, 鏡城人來告, "憲子二人伏於中路橋下, 射殺豆難歹、打弄哈而逃。 護送軍救之不急。" 臣令楊汀捕囚憲子及護送不能救者推鞫, 幷問忘乃事狀以啓。 招豆難歹等子姪, 還其所齎財物, 送其身屍, 略致賻給。
又啓: "本月十四日, 賊入甲山 寧波堡前平, 殺男婦六名、擄一名、掠牛馬而去。 知郡事趙敬禮率兵追之, 不及而還。"
-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398면
- 【분류】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