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부 윤 김예몽 등을 명에 보내 우리 나라 자제를 보내 입학 할 것을 청하는 등의 표문을 올리다
인순부 윤(仁順府尹) 김예몽(金禮蒙)·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홍익성(洪益誠) 등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받들고 명(明)나라에 가서 채단(綵段)을 하사(下賜)한 것을 사례하고, 아울러 이흥덕(李興德)이 가지고 온 칙지(勅旨)를 회주(回奏)하고, 또 우리 나라 자제(子弟)를 보내어 입학(入學)할 것을 주청(奏請)하게 하였는데, 표문(表文)에 이르기를,
"황제의 덕(德)이 크게 덮어 주고, 이에 회유(懷柔)를 두터이 하시어 황제의 내려주심이 거듭 이르니, 깊이 감격함이 더합니다. 마음에 깊이 새긴들 어찌 다하겠으며, 뼈가 가루가 된다 한들 갚기가 어렵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臣)은 다행히 창성(昌盛)한 때를 만나서 외람하게 먼 변방을 지키고 있으나, 털끝만한 작은 공로도 없고 다만 집양(執壤)330) 에 부지런할 줄만 압니다. 예물[筐篚]을 은혜롭게 내려 주시어 특별히 천자(天子)께서 내리시는 은총(恩寵)을 입었는데, 더구나 달[月]을 연달아서 거듭 이르니, 더욱 세상에 드문 큰 사은(私恩)입니다. 이는 대개 〈황제께서〉 널리 헤아리시고 아울러 포용(包容)하여 인정(仁政)을 베풀어 일시동인(一視同仁)331) 하는 때를 삼가 만나서, 신의 마음을 다하여 바치는 공물[享]을 알아 주시고, 신의 술직(述職)332) 하는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드디어 폐봉(敝封)333) 으로 하여금 남다른 은혜를 입게 하였습니다. 신(臣)은 삼가 마땅히 아침 일찍 일어나 밤 늦게 잠자리에 들며 항상 협광(挾纊)334) 의 정(情)을 가지고 해가 뜨고 달이 뜨는 한 항상 첨주(添籌)335) 의 축수(祝壽)를 갑절이나 바치겠습니다."
하고, 방물표(方物表)에 이르기를,
"천자께서 주시는 물건이 거듭 이르니, 삼가 감격함이 더합니다. 토의(土宜)가 비록 박하나 애오라지 사례하는 예를 다할 뿐입니다. 삼사 황세저포(黃細苧布) 20필(匹), 백세저포(白細苧布) 2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25필, 황화석(黃花席)·만화석(滿花席)·잡채화석(雜彩花席) 각각 20장(張)씩을 준비하였습니다. 위의 물건들은 제조한 것이 정밀하지 못하고 물목(物目)도 변변치 못하니, 어찌 여정지실(旅庭之實)336) 에 합당하겠습니까마는 다만 헌근지성(獻芹之誠)337) 을 나타낼 뿐입니다."
하였다. 황태후(皇太后)의 예물(禮物)은 홍세저포(紅細苧布)·백세저포(白細苧布)·흑세마포(黑細麻布) 각각 10필(匹), 만화석(滿花席) 10장(張)이었고, 중궁(中宮)의 예물(禮物)도 이와 같았다.
황태자(皇太子)에게 바치는 전문(箋文)에 이르기를,
"저위(儲位)338) 에 높이 계시면서 황제의 모유(謀猷)를 가까이 도우시어, 황제의 은혜를 내려 주시어 바닷가 변방까지 적시게 하였습니다. 몸을 어루만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뼈에 새겨도 잊기가 어렵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외람되게 천박한 재주를 가지고 멀리 황예(荒裔)339) 에 처하여 공물(貢物)을 바치는 일에 오로지 삼갈 뿐인데, 어찌 털끝만한 조그만 도움이라도 있겠습니까? 황제께서 권애(眷愛)하심이 특별히 깊어 많은 내려 주심을 우악(優渥)하게 입었는데, 〈물건이〉 많고 중(重)함이 또 극진하니, 감격(感激)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대개 위대한 도량과 깊은 충정과 영매(英邁)한 자질과 옥(玉) 같은 자품을 지닌 황태자께서 항상 승안(承顔)340) 의 효(孝)를 두터이 하여 능히 먼 곳까지 품어 주시는 인정(仁政)을 몸받으시는 때를 삼가 만나서, 마침내 이 잔약(孱弱)한 자질(資質)로 하여금 남다른 은혜를 거듭 입게 하였으니, 신은 더욱 중국 번방(藩方)을 지키는 데 삼가고, 항상 화봉 삼축(華封三祝)341) 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예물(禮物)은 백세저포(白細苧布)·흑세마포(黑細麻布) 각각 20필(匹), 만화석(滿花席)·잡채화석(雜彩花席) 각각 10장(張)입니다."
하였다. 또 주문(奏聞)에 이르기를,
"천순(天順) 4년342) 4월 25일에 배신(陪臣) 이흥덕(李興德)이 북경(北京)에서 돌아올 때 칙유(勅諭)를 삼가 받기를, ‘먼저번에 해당 건주 등위(健州等衛)의 두목(頭目)이 아뢰기를, 「모련위 도독 첨사(毛憐衛都督僉使) 낭발아한(浪孛兒罕) 등 16인이 왕에게 유인(誘引)당해 가서 피살되었으므로 본위(本衛)에서는 사람과 말[馬]을 모아 반드시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하였으므로, 이미 급사중(給事中) 장녕(張寧) 등을 보내어 칙서(勅書)를 가지고 가서 왕(王)이 그를 살해한 연유(緣由)를 묻고 반드시 그 시비(是非)를 명백하게 밝혀서 거의 잘 처리하게 하였다. 지금 왕(王)이 아뢰기를, 「낭발아한(浪孛兒罕) 부자(父子)가 몰래 반역(反逆)을 꾀하여 변방의 환(患)을 일으킨 것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아서 심문하고 법에 의하여 죄를 과하게 된 등사(等事)의 원인입니다.」 하나, 다만 낭발아한(浪孛兒罕)은 도독 첨사(都督僉使)가 되었는데, 이것은 중국 조정에서 준 직함(職銜)이다. 비록 변방의 환(患)을 일으키려고 꾀하였다고 일컫지만, 그러나 또한 형적(形迹)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를 죽였으니, 이것은 왕이 스스로 흔단(釁端)을 연 것이다. 이제 그 아들 아비거(阿比車)가 제종 야인(諸種野人)을 유인(誘引)하여 그대 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여 원수를 갚으려고 생각하니, 왕(王)은 마땅히 스스로 반성하여, 만약 이들과 강화(講和)한다면 거의 변경(邊境)의 환(患)을 면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잇달아서 화(禍)가 될 것이니, 또한 그대 나라의 이로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왕은 그리 알고 이를 도모하라.’ 하였습니다. 논거(論據)하신 낭발아한(浪孛兒罕)의 반역을 꾀하고 변흔(邊釁)을 일으킨 정적(情迹)이 이미 뚜렷하였으므로, 신(臣)이 즉시 과죄(科罪)하도록 하였는데, 어찌 감히 형적(形迹)을 살피지도 아니하고 갑자기 주살(誅殺)을 행하였겠습니까? 그를 죽인 근본 원인은 흠차 급사중(欽差給事中) 장녕(張寧)이 칙유(勅諭)를 가지고 도착하기 전 이미 본년(本年) 3월 초10일에 배신(陪臣) 김순(金淳)을 보내어 모조리 다 주달(奏達)하였으나, 이제 칙유(勅諭)한 내용을 아뢰니, 두렵고 황공한 마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낭발아한의 아들 아비거(阿比車)가 그 아비의 죄악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보복(報復)을 하려고 꾀하여 여러번 변경(邊境)을 침범하니, 변장(邊將)이 형세상 어쩔 수 없어 적(敵)을 쳐서 잡아 죽였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거병(擧兵)하기를 좋아하여 원수를 만들어서 스스로 변경의 환(患)을 남기겠습니까? 강화(講和)하도록 칙유(勅諭)하신 성훈(聖訓)이 진실로 극진하시니, 신(臣)은 깊이 감격함이 절실합니다. 신은 삼가 마땅히 칙지(勅旨)에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또 상주(上奏)하기를,
"신이 그윽이 소방(小邦)을 보건대 해외(海外)에 치우쳐 있어서 문학(文學)이 정미(精微)하지 못하고, 겸하여 또한 이문(吏文)343) 한음(漢音)이 밝게 통(通)하지 못하여, 비단 인재(人才)가 쉽게 성취(成就)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대(事大)의 뜻에도 방애(防礙)됨이 있습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한(漢)나라·당(唐)나라에서 송(宋)나라·원(元)나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라(新羅)·고려(高麗)에서 모두 자제(子弟)를 보내어 학교에 입학시켜 학업(學業)을 익혔습니다. 그 후에 중국 사람 한방(韓昉)·이원필(李原弼)·홍즙(洪楫)·설장수(偰長壽) 등이 서로 잇달아 우리 나라에 와서 자제(子弟)들을 가르쳤으나 위의 항목의 사람들이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전습(傳習)할 길이 없습니다. 한문(漢文)·이문(吏文)의 문서를 깨달아 아는 자가 매우 적으므로 매양 사대 문서(事大文書)를 만다면 체례(體禮)에 익숙치 못하고, 또 중국 조정의 사신이 우리 나라에 오면 응대(應對)하여 말하는 데도 차오(差誤)가 생길까 두려우니, 참으로 미편(未便)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자(聖慈)께서 살피시어 역대(歷代)의 구례(舊例)에 의하여 지금 본국(本國)의 자제(子弟)들을 입학시켜 학업을 익히도록 허락하시고, 겸하여 한문(漢文)·이문(吏文)을 익혀서 서로 통하게 하소서.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삼가 갖추어 주문(奏聞)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9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어문학-어학(語學)
- [註 330]집양(執壤) : 신하가 임금을 뵈올 때 토공(土貢)을 예물로 바쳐 경의를 표하던 일. 집지(執贄).
- [註 331]
일시동인(一視同仁) : 중국 황제가 사해(四海)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로 보아 골고루 인정(仁政)을 베푸는 것.- [註 332]
술직(述職) : 제후(諸侯)가 자기의 직책을 다하고 황제에게 보고드리는 것을 말함.- [註 333]
폐봉(敝封) : 우리 나라를 가리킴.- [註 334]
협광(挾纊) : 솜을 몸에 끼고 있는 듯이 항상 따뜻함.- [註 335]
첨주(添籌) : 사람의 장수(長壽)를 비는 말. 바다 위의 신선(神仙)이 사는 곳에 선학(仙鶴)이 매년 1주(籌:몫을 나타내는 숫가지)를 물어 온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임. 해옥 첨주(海屋添籌).- [註 336]
여정지실(旅庭之實) : 황제의 정원에 제후가 물건을 보내서 진열하는 것.- [註 337]
헌근지성(獻芹之誠) : 옛날 충성된 신하가 미나리를 임금에게 바쳤다는 데서 생긴 말로, 정성된 마음을 가리킴.- [註 338]
저위(儲位) : 황태자의 자리.- [註 339]
황예(荒裔) : 변방의 먼 땅.- [註 340]
승안(承顔) : 부모의 안색(顔色)을 살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함.- [註 341]
화봉 삼축(華封三祝) : 요(堯)임금이 화산(華山)을 순행할 때 백성들이 임금의 덕을 찬양하여 "성인(聖人)은 수(壽)하시고, 성인은 부(富)하시고, 성인은 다남(多男)하시라."고 세 번 축복하였다는 고사(故事).- [註 342]
천순(天順) 4년 : 1460 세조 6년.- [註 343]
이문(吏文) : 중국과 그 주변 나라 사이에 왕래하던 외교 문서에 쓰이던 중국 궁중의 상용 속어(俗語).○丙戌/遣仁順府尹金禮蒙、同知中樞院事洪益誠等奉表如大明, 謝賜綵段, 幷回奏李興德齎來勑旨, 又奏請遣子弟入學。 表曰:
帝德丕冒, 庸篤懷柔, 宸貺荐臻, 冞增感激。 佩銘曷已? 糜粉難酬。 伏念臣幸際昌辰, 叨守遐徼, 絲毫功乏, 唯知執壤之勤。 筐篚恩頒, 特荷自天之寵, 況連月而駢至, 尤希世之鴻私。 玆蓋伏遇度擴兼容, 仁推一視, 諒臣役志之享, 憐臣述職之誠, 遂令敝封獲霑殊渥。 臣謹當夙興夜寐, 常存挾纊之情, 日升月恒, 倍獻添籌之祝。
方物表曰:
天貺沓臻, 祗增感激。 土宜雖薄, 聊伸謝儀。 謹備黃細苧布二十匹、白細苧布二十匹、黑細麻布二十五匹、黃花席ㆍ滿花席ㆍ雜彩花席各二十張。 右件物等製造匪精、名般不腆, 豈合旅庭之實? 庸効獻芹之誠。 皇太后禮物, 紅細苧布ㆍ白細苧布ㆍ黑細麻布各一十匹、滿花席一十張。 中宮禮物, 同。
皇太子箋曰:
尊居儲位, 密贊宸猷, 導霈皇恩, 覃霑海徼。 撫躬罔措, 鏤骨難忘。 伏念臣猥將譾材, 邈處荒裔, 壤奠惟謹, 奚効纖毫之裨? 天眷特深, 優荷便蕃之錫, 稠重又極, 感激何涯? 玆蓋伏遇偉量淵衷、英姿玉裕, 常篤承顔之孝, 克體懷遠之仁, 遂令孱資荐蒙異渥, 臣謹當益愼漢藩之守, 恒伸華祝之誠。 禮物白細苧布ㆍ黑細麻布各二十匹、滿花席ㆍ雜彩花席各一十張。
奏曰:
天順四年四月二十五日, 陪臣李興德回自京師, 欽蒙勑諭該, "先該建州等衛頭目奏稱, ‘毛憐衛都督僉事浪孛兒罕等十六人被王誘去殺死, 本衛要聚人馬報讎。’" 已差給事中張寧等齎勑, 問王殺死緣由, 要見是非明白, 庶可處置。 今王奏稱, "浪孛兒罕父子潛謀反逆, 結構邊患, 差人拿問, 依法科罪等因, 但浪孛兒罕爲都督僉事, 是朝廷所授之職。 雖稱謀構邊患, 然亦未見形迹, 而遽然殺之, 是王自啓釁端。 今其子阿比車誘引諸種野人, 侵犯爾境, 意在報讎, 王宜自省, 若與之講和, 庶免邊境之患, 不然, 兵連禍結, 亦非爾國之利也。 王其圖之。" 欽此所據浪孛兒罕謀逆構釁情迹已著, 臣卽令科罪, 安敢不審形迹遽行誅殺? 其殺死根因, 欽差給事中張寧齎到勑諭, 已於本年三月初十日, 差陪臣金淳具悉奏達, 今(奏)〔奉〕 勑諭, 不勝兢惶。 第孛兒罕子阿比車不悔伊父罪惡, 謀欲報復, 累犯邊境, 邊將勢不獲已, 抵敵厮殺。 臣豈敢喜兵挑怨自貽邊患? 諭令講和, 聖訓諄至, 臣冞切感激。 臣謹當欽依勑旨。
又奏曰:
臣竊照小邦僻在海外, 文學未精, 兼又吏文、漢音不得通曉, 非但人才未易成就, 有礙事大之意。 臣謹按自漢、唐至宋、元朝代, 新羅、高麗皆遣子弟入學肄業。 其後漢人 韓昉、李原弼、洪楫、偰長壽等相繼出來, 訓誨子弟, 上項等人俱已淪沒, 如今傳習無由。 漢、吏之文理會者鮮少, 每遇事大文書, 未諳體例, 且又朝廷使臣到國, 應對語言恐致差誤, 深爲未便。 伏望聖慈照依歷代舊例, 許令本國子弟入學肄業, 兼習漢、吏之文相應。 未敢擅便, 爲此謹具奏聞。
-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9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어문학-어학(語學)
- [註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