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달손·황수신·이인송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홍달손(洪達孫)을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로, 황수신(黃守身)을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으로, 이인손(李仁孫)을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 겸판호조사(判戶曹事)로, 이승손(李承孫)을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으로, 구치관(具致寬)을 이조 판서로, 조석문(曹錫文)을 호조 판서로, 박원형(朴元亨)을 형조 판서로, 최항(崔恒)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 이순지(李純之)를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권지(權摯)를 호조 참판으로, 황효원(黃孝源)을 예조 참판으로, 어효첨(魚孝瞻)을 공조 참판으로, 안숭효(安崇孝)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겸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이사명(李思明)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김처례(金處禮)를 인수부 윤(仁壽府尹)으로, 이극배(李克培)를 경창부 윤(慶昌府尹)으로, 김순(金淳)을 한성부 윤(漢城府尹)으로, 임득정(林得楨)을 병조 참의(兵曹參議)로, 김계희(金係熙)를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이중윤(李中允)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허형손(許亨孫)을 겸 지병조사(兼知兵曹事)로, 조치(趙治)를 지사간원 사(知司諫院事)로, 황석생(黃石生)을 평안도 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로 삼았다.
김처례(金處禮)가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었을 때 모든 일을 옛것을 본받고 집요(執拗)하게 형벌을 사용하여 사은사(謝恩使)에게 맞지 않아서, 박원형(朴元亨)을 접대하는 즈음에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었으므로, 박원형이 돌아오자 김처례가 체직(遞職)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5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丙戌/以洪達孫領中樞院事, 黃守身議政府左贊成, 李仁孫議政府右贊成兼判戶曹事, 李承孫議政府左參贊, 具致寬吏曹判書, 曺錫文戶曹判書, 朴元亨刑曹判書, 崔恒知中樞院事, 李純之判漢城府事, 權摯戶曹參判, 黃孝源禮曹參判, 魚孝瞻工曹參判, 安崇孝同知中樞院事兼忠淸道觀察使, 李思明中樞院副使, 金處禮仁壽府尹, 李克培慶昌府尹, 金淳 漢城府尹, 林得楨兵曹參議, 金係熙刑曹參議, 李中允僉知中樞院事, 許亨孫兼知兵曹事, 趙治知司諫院事, 黃石生 平安道都節制使。 處禮爲都節制使, 凡事効古執拗, 用刑不中, 謝恩使朴元亨接待之際, 有所不愜, 元亨來而處禮遞。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5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