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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16권, 세조 5년 6월 11일 신유 1번째기사 1459년 명 천순(天順) 3년

함길도 경차관 강효문이 야인들의 정세를 아뢰다

함길도 경차관(咸吉道敬差官) 강효문(康孝文)이 치계(馳啓)하기를,

"지금 올미거(兀未車) 올적합(兀狄哈)야당기(也當其)육첩응가(育帖應哥) 등의 남녀(男女) 19명이 마상합(麻尙哈)을 따라서 경원(慶源)에 도착하였습니다. 금년 5월 23일에 신(臣)이 양정(楊汀)과 함께 올량합(兀良哈)알타리(斡朶里)의 여러 추장(酋長)들을 불러 야당기(也當其) 등과 더불어 함께 공궤하니, 야당기(也當其)오량합(五良哈)과 더불어 저들끼리 서로 수작(酬酌)하면서 하늘에 고(告)하여 화친(和親)하기를 약속하므로 그들이 사로잡아온 남녀(男女) 모두 27인을 돌려 주었습니다. 또 전일에 신숙주(申叔舟)경원(慶源)에 있을 때 여러 진(鎭)의 여러 추장(酋長)을 모아서 올적합(兀狄哈)의 인물(人物)을 쇄환(刷還)하였는데, 여러 추장(酋長)들은 모두 왔으나 유독 낭발아한(浪孛兒罕)만은 병을 핑계하고서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숙주(申叔舟)가 돌아갈 시기에 이르러 양정(楊汀)에게 부탁하여 통사(通事)를 보내어 이들을 개유(開諭)하도록 하였습니다. 낭발아한의 아들 어아가독(於兒哥禿)과 조카 월랑가(月朗哥)가 통사(通事)를 길에서 만났는데, 월랑가(月郞哥)가 활을 당겨 쏘려고 하니, 어아가독(於兒哥禿)이 놀라서 이를 말리고는 묻기를,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고 하므로 통사(通事)가 대답하기를, ‘장차 올적합(兀狄哈)과 화해(和解)하게 하려고 너희들을 부르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또 낭발아한이 길에서 통사(通事)를 만났는데, 그의 족인(族人) 낭명가(浪明哥) 등 2인이 또한 활시위를 잔뜩 당기자 어아가독(於兒哥禿)월랑가(月郞哥) 등이 또한 말렸습니다. 낭발아한이 온 이유를 자세히 물으니 통사(通事)가 처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낭발아한이 말하기를, ‘조선(朝鮮)에서 장차 군사를 내어 우리를 치려고 너희들을 보내어 나의 출처(出處)를 염탐하는 것이다.’【낭발아한(浪孛兒罕)은 평소에 양정(楊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으며, 또 올적합(兀狄哈)의 사람들을 돌려 보내려 하지 않았고, 거짓으로 말하기를, ‘조선에서 장차 치려고 한다.’ 하며, 여러 종족(種族)도 또한 목계(木契)362) 를 만들어 서로 전하여서 선동하여 흔단(釁端)이 생기게 하려고 하였다.】 하므로 통사(通事)가 말하기를, ‘혹시 간첩(間諜)인가 의심이 나면 사람을 보내어 동정(動靜)을 염탐해 보라.’고 하니 낭발아한이 말하기를, ‘예전에 경인년363) 에는 안을귀(安乙貴)아고거(阿古車)와 더불어 서로 친하였으나, 반간(反間)이 엿보여 염탐하고 간 조금 후에 병마(兵馬)를 거느니고 와서 처자(妻子)를 죽이고 사로잡아 거의 다 없어졌으니, 너희들의 말하는 바는 실로 보증(保證)할 수가 없다.’고 하므로 통사(通事)가 말하기를, ‘너의 아들 낭이승가(浪伊升哥)가 근일에 연하(輦下)364) 를 가까이 모시고 있어 애호(愛護)함이 매우 돈독한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고 하니, 낭발아한이 말하기를, ‘너희 나라에서 내 자식을 먼저 죽였는지 알겠는가? 전일에 부령(富寧)의 병마(兵馬)가 허수라(虛水剌)의 도로(道路)를 살피므로 우리들이 모두 의심을 품고서 군사를 나누어 망(望)을 보았었다. 지금 4월 15일은 곧 이날이 인일(寅日) 【야인(野人)의 풍속에 인일(寅日)을 꺼리었다.】 이니 어찌 의심하지 않겠는가? 모두 처자(妻子)들로 하여금 산에 오르게 할 뿐이다.’ 하고 마침내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보다 먼저 신숙주(申叔舟)가 부령 부사(富寧府使) 오익창(吳益昌)으로 하여금 허수라(虛水剌)의 적로(賊路)를 살피게 하였으므로 낭발아한이 이를 빌어 구실을 삼은 것입니다. 양정(楊汀)이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이들을 불렀으나 또한 오지 않았으며, 또 말하기를, ‘아들 아아가독(阿兒哥禿)이 사로잡은 올적합(兀狄哈)자알리(刺斡里)란 자가 먹이던 말이 죽은 일로 인하여 미혹(迷惑)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후일에 마땅히 사유(事由)를 친히 고(告)하겠다.’고 하였는데, 이후로도 아직까지 시일을 미루어 가며 오지 않으니 반드시 그 사정(事情)이 있을 것입니다. 신(臣)이 양정(楊汀)의 행문 이첩(行文移牒)을 보고는 회령부(會寧府)에 명하여 형편에 따라 불러오도록 하여, 만약 온다면 낭발아한(浪孛兒罕) 이외는 모두 가두어 국문(鞫問)하도록 했습니다. 신(臣)이 생각하기를, ‘낭발아한의 사람됨은 성질이 본디부터 음험하고 휼망(譎妄)하여 필시 사로잡은 인물(人物)을 돌려보내려고 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속일 것이니, 만약 갑자기 위협을 가(加)한다면 다만 화해(和解)하는 데에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장차는 붕당(朋黨)을 불러와서 혹시 성상의 교화를 배반한다면 여러 진(鎭)을 빙 둘러싼 야인(野人)들이 다 이와 같이 할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신(臣)이 살펴보건대, 동량북(東良北)무아계(無兒界)사지(舍地) 등지의 야인(野人)들의 안온(安穩)하지 못한 형세는 반드시 낭발아한이 이를 수창(首唱)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31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362]
    목계(木契) : 여진인들이 부족 간에 연락할 때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패. 여기에 글자나 부호를 새겨서 의사 전달을 하였음.
  • [註 363]
    경인년 : 1410 태종 10년.
  • [註 364]
    연하(輦下) : 조선의 임금.

○辛酉/咸吉道敬差官康孝文馳啓: "今兀未車兀狄哈 也當其育帖應哥等男婦十九名, 從麻尙哈慶源。 今五月二十三日, 臣與楊汀兀良哈斡朶里諸酋與也當其等同饋, 也當其等與五良哈自相酬酢, 告天約和, 其所擄來男婦共二十七人給還。 且前者申叔舟慶源, 集諸鎭諸酋, 刷還兀狄哈人物, 諸酋皆來, 獨孛兒罕辭病不赴。 及申叔舟還, 囑楊汀令遣通事開諭之。 孛兒罕子於兒哥禿及姪月郞哥遇通事於路, 月郞哥彎弓欲射, 於兒哥禿遽止之, 且問, ‘因何事來?’ 通事(若)〔答〕 曰, ‘將與兀狄哈和解, 招汝等來也。’ 又孛兒罕道遇通事, 其族人浪明家等二人亦引(滿)〔彎〕 , 於兒哥禿月郞哥等又止之。 孛兒罕問委來之由, 通事答之如初。 孛兒罕云, ‘朝鮮將發兵擊我, 遣汝等詗吾出處爾。’ 【孛兒罕素憾楊汀, 且不欲還兀狄哈之人, 詐稱朝鮮將伐, 諸種又作木契相傳, 欲煽動構釁。】 通事云, ‘儻疑間牒, 可遣人探候,’ 孛兒罕云, ‘昔在庚寅, 安乙貴阿古車交親, 反間窺詗, 尋引兵馬殺虜妻子殆盡, 汝等所言, 實未可保,’ 通事云, ‘汝子伊升哥近侍輦下, 愛護甚篤, 豈有是事?’ 孛兒罕云, ‘安知汝國先殺我子乎? 前者富寧兵馬審虛水剌道路, 我等皆懷疑慮, 分軍望候。 今四月十五日卽是寅日, 【野人俗忌寅日】 豈不疑慮? 竝令妻子登山耳。’ 遂不來。 前此叔舟富寧府使吳益昌虛水剌賊路, 故孛兒罕借以爲辭。 累遣人招之, 亦不來, 且言, ‘子阿兒哥禿所擄兀狄哈 剌斡里者, 因所喂馬斃, 惑而自縊, 後當親告事由。’ 是後猶遷延不來, 必有其情。 臣見楊汀文移, 令會寧府因便招致, 若來則孛兒罕外竝皆囚鞫。 臣謂孛兒罕爲人性本陰譎, 必是不欲還所虜人物, 多般詭詐, 若遽加威脅, 非唯無益於和解, 將招朋儻或背聖化, 則安知環鎭野人擧皆如此? 臣觀東良北 無兒界舍地等處野人不靖之勢, 必自孛兒罕唱之也。"


  •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7책 331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