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를 축소시키고 《병요》를 간략히 하여 무신들이 숙독케 하다
경회루 동편방에 나아가서 승지 조석문(曹錫文)·윤자운(尹子雲)·김질(金礩) 등을 인견하고 일을 의논하였는데, 임금이 이르기를,
"원유(苑囿)는 임금이 놀고 즐기는 곳이 아니며, 제사에 이바지하고 강무(講武) 일을 할 뿐인데, 이제 강무장(講武場)이 넓이와 길이가 넓고 멀어서 국가에 이익이 없고 금수(禽獸)가 또 좇아서 곡식의 싹을 해치고 하니, 관원을 보내어 땅의 적정 여부를 심찰하여 그 한계를 정하고, 나머지는 일체 모두 이를 폐지하고, 백성의 경작과 사냥을 들어주라. 후세의 임금이 전렵(田獵)893) 을 좋아하면 이를 늘릴 것이고, 좋아하지 않는 자는 이를 스스로 폐할 것이다. 내가 전렵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러나 어찌 백성을 무휼(撫恤)하지 않겠는가? 나의 계책은 이와 같을 뿐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전에 이미 황해도 관찰사에게 유시하여, 타도(他道)로부터 가서 사는 자는, 평안도·함길도·강원도 3도의 백성을 제외하고는 본토로 돌려보내지 말도록 하였으며, 호조로 하여금 하삼도(下三道)와 경기에 이문(移文)하여, 만일 황해도에 옮겨 가서 살려고 하는 자는 금하지 말게 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문종(文宗)께서 나에게 《병요(兵要)》를 편찬하도록 명하여, 번잡한 것을 산삭(刪削)하고 간략한 것을 좇아 관람에 편리하게 하고 정화(精華)를 모조리 갖추었으나, 다만 간질(簡秩)894) 이 너무 많아서, 배우지 않은 무신(武臣)들이 이를 두루 열람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이를 극히 간략하게 하여 무신의 무리로 하여금 항상 숙독(熟讀)하게 하려고 한다. 만약 당나라 태종(太宗)과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친정(親征)을 하였어도 〈고구려에〉 승리하지 못하였던 등의 일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듣게 하기를, 마치 어제 일과 같이 한다면 거의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당시 예조 판서 홍윤성(洪允成)을 기복(起復)895) 시켜 지중추원사로 삼아, 홍윤성으로 하여금 이를 간략하게 하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7책 22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호구-이동(移動) / 군사-병법(兵法) / 출판-인쇄(印刷) / 농업-권농(勸農) / 농업-임업(林業)
- [註 893]전렵(田獵) : 사냥.
- [註 894]
간질(簡秩) : 서책(書冊).- [註 895]
기복(起復) : 상중(喪中)에 있는 관리를 탈상(脫喪) 전에 관직(官職)에 다시 기용(起用)하는 것. 기복 출사(起復出仕).○丁未/御慶會樓東偏房, 引見承旨曺錫文、尹子雲、金礩議事。 上曰: "苑囿, 非人君遊樂之所也, 供祭祀講武事而已。 今講武場延袤廣遠, 無益於國, 而禽獸又從而害苗, 其遣官審度地宜, 定其界限, 自餘一皆罷之, 聽民耕獵。 後世之君, 喜田則益之, 其不喜者自罷之, 予非不知田獵之爲樂也, 然豈不恤民? 予計若此而已。" 又曰: "前已諭黃海道觀察使, ‘自他道往居者, 平安、咸吉、江原三道人外, 勿還本土’, 其令戶曹移文下三道、京畿, 苟欲移居黃海道者勿禁。" 又曰: "文宗命予撰《兵要》, 刪煩就約, 便於觀覽, 精華悉具, 但簡秩猥多, 不學武臣難於遍閱, 故予欲極約之, 使武臣輩常熟讀。 如唐 太宗、隋 煬帝親征不克等事, 使人聞之, 如昨日事, 庶有益乎?" 時, 禮曹判書洪允成起復爲知中樞院事, 令允成約之。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7책 22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호구-이동(移動) / 군사-병법(兵法) / 출판-인쇄(印刷) / 농업-권농(勸農) / 농업-임업(林業)
- [註 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