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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9권, 세조 3년 9월 24일 을유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논농사를 위해 겨울에 방축을 쌓아야 한다는 옥천 사람 곽유의 상서

옥천(沃川) 사람 곽유(郭瑜)가 상서(上書)하기를,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 되고, 먹는 것은 곧 백성들이 하늘같이 아는 것입니다. 유자(有子)841) 가 말하기를, ‘백성이 족(足)하면 임금이 그 누구와 더불어 부족을 느끼겠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의 먹는 것은 본시 넉넉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먹는 것을 넉넉하게 하고자 하려면, 또 먼저 농사에 힘쓰지 않을 수 없고, 농사를 힘쓰는 데 가장 긴요한 것은 오로지 관개(灌漑)의 이(利)에 있는 것입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성상께서 농사에 힘쓰게 하는 그 원인을 진념(軫念)하시어 누차 유서(諭書)를 내려 널리 관개의 술책을 구하소서. 수령(守令)이 제언(堤堰)을 만들 만한 곳을 찾아 물어도 백성들이 모두 숨기고 고하지 않는 것은, 그 기름진 전지가 손실되고 끝내 그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면, 큰 제언(堤堰), 큰 파당(陂塘)은 그만이지만, 전에 백성들의 비옥한 전지를 빼앗아 조그만 제언을 쌓아 물을 저장하여도 만일 춘경(春耕)할 때를 당하여 비가 흡족하게 내리면, 제언의 물에 의뢰하지 않더라도 관개가 스스로 족하며, 후에 가뭄이 있게 되면 제언 안의 물과 제언 아래 땅이 일시에 함께 말라 버리니, 그 전지의 손실만 있을 뿐이요, 끝내 그 이익이 없는 까닭에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갱도(秔稻)842) 의 성질은 마른갈이[旱耕]를 하였다가 물을 대어 심으면, 그 뿌리가 이미 깊이 내렸기 때문에, 비록 가뭄을 만나더라도 말라 죽지 않으며, 다행히 우로(雨露)의 혜택이 있게 되면 마침내 수확을 거둘 수 있지만, 건모[乾種]로 심게 되면 그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가뭄을 만나면 말라 죽습니다. 그런 까닭에 물논에 심는 것[水種]을 힘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양씨(梁氏)가 수리(水利)의 요령을 논한 것을 보면, 이르기를, ‘만약 10묘(畝)에서 1묘를 덜어서 우물을 판다면 9묘가 한재(旱災)를 면할 것이요, 1백 묘에서 10묘를 덜어 못을 만들면, 90묘의 전지가 관개에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백성의 전지로 습한 곳에 가을과 겨울이 바뀔 무렵을 당하여서 모든 옛 논두렁을 인하여 더 쌓아 방축을 만들되, 그 높이가 약 3, 4척(尺) 가량 되게 하여 눈과 빗물을 저축하여 못을 만들어, 봄갈이할 때에 이르러 그 물을 터놓아 방축 아래 전지에 〈물을 대어〉 파종(播種)을 하고는 즉시 방축 안의 전지를 갈면 위와 아래를 모두 쓸 수 있고, 1묘의 땅을 덜지 않고도 관개의 이익을 얻으므로 사람들이 이를 즐겨 합니다.

신(臣)이 금년에 이러한 술법을 신의 수전(水田)843) 의 습하지 않은 곳에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신의 전지 위에 타인의 습한 전지가 있어, 그 사람을 유인해 끼고는 그 논두렁을 더 쌓아 올리고 눈과 빗물을 저축하였다가 파종할 때에 이르러서 그 물을 터놓아 신의 전지에 대고 물갈이[水耕]를 하고 물모[水種]를 내었더니, 비록 오랜 가뭄을 겪어도 또한 말라 죽지 않았고, 그 결실이 풍년에 내려가지만 못지 않았으며, 그밖에 건모[乾種]로 심은 전지는 모두 말라 버렸습니다. 이로써 벼농사는 물모로 내는 것이 상(上)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 냇물을 막는 술법도 그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나, 또한 일찍이 그 지세(地勢)와 수세(水勢)의 높고 낮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를 하기 때문에 다만 공역의 무거움만 있고 끝내 그 효과가 없습니다. 신이 이제 제언의 술법을 하순(下詢)하심을 만나 차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감히 고설(瞽說)844) 을 진달합니다. 만약 신의 말을 채택할 만하다고 생각하시고, 소신(小臣)으로 하여금 이를 한번 시험하게 하신다면, 그 냇물을 막고 방축을 쌓는 술법에 신은 마땅히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를 하겠습니다."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내가 백성의 일에 마음을 두는 자를 얻어, 각기 그 재능(才能)을 시험하려고 하며, 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단지 이것뿐이다. 홀로 이것뿐만 아니고, 소소한 사무라 하더라도 진달하여 주는 자가 있으면 진정 기뻐하고 1푼이라고 백성에게 혜정(惠政)이 되기를 바라는데, 하물며 국가의 대본(大本)이겠는가? 속히 역마(驛馬)를 주어 불러 오게 하라. 내가 장차 오는 봄에 시험해 이를 임용하겠다. 반드시 공효(功效)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7책 224면
  • 【분류】
    농업-수리(水利)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정론(政論)

沃川郭瑜上書曰:

農爲政本, 食乃民天。 有子曰, "百姓足, 君誰與不足?" 故民食固不可不裕也。 然欲民食之裕, 又不可不先於務農, 而務農之要, 惟在於灌漑之利也。 恭惟聖上軫念務農之源, 屢降諭書, 廣求灌漑之術。 守令訪問可作堤堰之處, 民皆隱而不告者, 有損其膏腴之田而終無其利故也。 何以言之? 其大堤大陂則已矣, 在先有奪民膏腴之田, 築少堤貯水, 若當春耕之時, 雨澤饒洽, 則不資堤堰之水, 灌漑自足, 後有天旱, 則堰內之水與堰下之地一時俱乾, 有損其田而終無其利, 故民皆不樂也。 然秔稻之性, 旱耕水種, 則其根已深, 故雖有旱而不枯, 幸有雨露, 終見收成, 乾種之則根不深入, 故遇旱則枯, 故水種不可不務也。 嘗觀梁氏論水利之要云, "若十畝而損一畝以爲井, 則九畝可以免旱乾, 百畝而損十畝以爲池, 則九十畝可以資灌漑。" 方今每於民田泉濕之處, 當秋冬之交, 皆因其舊隴而加築爲堰, 高可三四尺, 以儲雪水而作池, 及其春耕之時, 決其水而灌堤下之田而播種, 隨卽耕其堤內之田, 則上下皆用, 不損一畝, 而灌漑之利得, 故人人樂爲之也。 臣於今年, 以此術試之臣之水田, 無泉濕之處。 臣田之上, 有他人泉濕沮洳之田, 誘掖其人, 加築其隴, 以儲雪水, 至於播種之時, 決下其水, 漑臣之田, 水耕水種, 雖經久旱, 亦不枯槁, 其實不下於豐年, 其他乾種之田, 皆爲枯槁, 以此知稻田水種爲上也。 且川防之術, 不無其要, 亦嘗不量其地勢水勢之高下而爲之, 故但有力役之重而終無其效也。 臣今遇下詢堤堰之術, 不忍緘默, 敢陳瞽說。 儻以臣言爲可採, 俾小臣一試之, 則其防川築堰之術, 臣當竭其心力而爲之。

御書曰: "予欲得留心民事者, 各試其才, 日夜思慮只此耳。 非獨此也, 雖小小之務, 有人陳之者, 誠以爲喜, 冀一分惠民之政, 而況國家之大本乎? 速給馹徵來。 予將來春試任之, 必有效矣。"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7책 224면
  • 【분류】
    농업-수리(水利)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