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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9권, 세조 3년 9월 10일 신미 2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신숙주·정인지 등이 금성 대군과 노산군을 사사토록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일본국 총관부(總官府) 원승원(源勝元)의 사자(使者) 등 20여 인을 인견(引見)하였는데, 모든 재추(宰樞)가 입시(入侍)하였다. 사자가 서계(書契)를 올렸으니, 다름이 아니라 그가 오게 된 사연이었다. 임금이 중도에서 위조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지만 끝내 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왜인(倭人) 및 모든 재추가 다 나가고 좌찬성 신숙주(申叔舟)가 임금의 앞에 나아가 홀로 아뢰기를,

"이유(李瑜)801) 는 현저하게 대역(大逆)을 범하였으니, 결단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또 지난해 이개(李塏) 등이 노산군(魯山君)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거사하려〉 하였는데, 이제 유(瑜)도 또한 노산군을 끼고 난역(亂逆)을 일으키려 하였으니, 노산군도 역시 편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의정부에서 반드시 다시 와서 청할 것이니, 장차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겠다."

하였다. 무릇 신숙주가 말하는 것은 임금이 윤허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잠깐 있다가 또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좌의정 정창손(鄭昌孫)·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가 와서 신숙주와 더불어 아뢰기를,

"유(瑜)의 모역(謀逆)은 일조 일석(一朝一夕)의 일이 아니고, 그 유래한 바가 오래 됩니다. 지난번 서울에 있으면서 군사를 모아 모역한 것으로도 그 죄가 마땅히 죽여야 하는데, 더구나 이제 거듭 대역(大逆)을 범하여 그 일이 종사에 관계되니, 전하께서 사사로이 용서하실 바가 아닙니다. 이제 그 일당만을 죽이는데 그치고 원흉이 법망에서 빠져 나가는 것은 몹시 불가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법대로 처치하소서."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

"요(遼)나라 태조의 고사(故事)802) 도 있으니, 경(卿)들의 말을 따를 수 없다."

하였다. 정인지가 아뢰기를,

"요(遼)나라는 이적(夷狄)이니, 족히 본받을 것이 못됩니다. 오늘의 이 일은 마땅히 주공(周公)을 본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사사(賜死)803) 하여 머리를 얻어 보전하면 족합니다. 또 노산군(魯山君)은 반역을 주도한 바이니 편안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

"노산군(魯山君)은 이미 강봉(降封)하였으니, 비록 폐(廢)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어도 가(可)하지만, 유(瑜)의 일은 감히 따를 수가 없다. 소원(疏遠)한 친족인 이보흠(李甫欽) 같은 사람도 오히려 은유(恩宥)를 입었는데, 하물며 골육지친(骨肉之親)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인가? 또 유(瑜)의 모역은 실상 궁박(窮迫)한 탓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이니, 어찌 크게 죄주겠는가?"

하였다. 정인지 등이 아뢰기를,

"유(瑜)속적(屬籍)804) 이 이미 끊어졌으니, 골육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순흥부(順興府)에 있으면서 술·음식·의복·금은의 보화를 많이 축적해 놓고는 진흙이나 모래처럼 마구 썼으니 궁박했다고 이를 수 없습니다."

하고, 되풀이하여 간청하였으나 끝내 윤허하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상량(商量)하겠다."

하였다. 대사헌 김연지(金連枝)·좌사간 김종순(金從舜) 등이 또한 아뢰기를,

"이와 같은 대역(大逆)은 상량(商量)하실 것도 못됩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그대로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20면
  • 【분류】
    외교-왜(倭) / 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註 801]
    이유(李瑜) : 금성 대군(錦城大君).
  • [註 802]
    요(遼)나라태조의 고사(故事) :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막내 동생 야율 안단(耶律安端)이 모반하였을 때 이를 잡아서 용서하여 준 고사(故事). 뒤에 야율안단은 태조에게 충성하여 서남 제부(西南諸部)와 발해(渤海)를 치는 데 큰 공을 세웠음.
  • [註 803]
    사사(賜死) : 극형에 처할 죄인을 대우하는 뜻으로 임금이 독약을 내려 자결(自決)하게 하는 일.
  • [註 804]
    속적(屬籍) : 호적(戶籍)에 올려 있는 것. 여기서는 종친이 종적(宗籍)에 올려져 그 권한을 행세하는 것을 말함.

○御思政殿, 引見日本國總官府源勝元使者(者)等二十餘人, 諸宰樞侍。 使者獻書契, 無他, 爲來之事。 上疑其爲中道僞作, 然終不形言。 倭人及諸宰樞皆出, 左贊成申叔舟進前獨啓曰: "顯犯大逆, 斷不可赦。 且去年李塏等以魯山爲名而爲之, 今亦欲挾魯山君倡亂, 魯山君亦不可安居也。" 上曰: "議政府必再來請, 將更議施行。" 凡叔舟所言, 上無不允。 俄而領議政鄭麟趾、左議政鄭昌孫、吏曹判書韓明澮來, 與叔舟啓曰: "之謀逆, 非一朝一夕, 所由來遠矣。 向在京聚兵謀逆, 罪固當誅, 況今重犯大逆, 事關宗社, 非殿下所得私赦。 今誅止黨與, 元惡漏網, 甚爲不可。 請幷置法。" 傳曰: "有 太祖故事, 卿等之言, 不可從。" 麟趾曰: ", 夷狄, 不足法也。 今日之事, 當法周公耳。 若賜死, 得保首領足矣。 且魯山君爲反逆所主, 不可安居。" 傳曰: "魯山君已降封, 雖廢爲庶人可也, 若事, 不敢從。 踈遠如李甫欽尙蒙恩宥, 骨肉之親, 獨不可宥乎? 且之謀逆, 實由窮迫而然, 豈宜深罪?" 麟趾等啓曰: "屬籍已絶, 不可以骨肉視也。 其在順興府, 多畜酒食服用金銀之寶, 用如泥沙, 不可謂窮迫也。" 反覆懇請, 竟不允曰: "吾當商量。" 大司憲金連枝、左司諫金從舜等亦啓曰: "如此大逆, 非所商量。" 上猶不允。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4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20면
  • 【분류】
    외교-왜(倭) / 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