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9월 2일 계해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세자 도원군의 졸기
세자가 본궁 정실(正室)에서 졸(卒)하였다. 세자는 용모와 의표(儀表)가 아름답고 온량(溫良) 공경(恭敬)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또 해서(楷書)를 잘 썼다. 양궁(兩宮)이 애도(哀悼)하니, 시종한 여러 신하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당초 세자가 병을 얻었을 때, 지필(紙筆)을 찾아 고시(古詩)를 쓰기를,
"비바람 무정하여 모란꽃이 떨어지고,
섬돌에 펄럭이는 붉은 작약(芍藥)이 주란(朱欄)에 가득찼네.
명황(明皇)이 촉(蜀) 땅에 가서 양귀비(楊貴妃)를 잃고 나니
빈장(嬪嬙)775) 이야 있었건만 반겨 보지 않았네."
하여, 한 절구(絶句)를 시질자(侍疾者)776) 에게 보이니, 사람들이 그 시(詩)의 말이 상서롭지 못한 것을 걱정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1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世子卒于本宮正室。 世子美容儀, 溫良恭敬好學, 又善楷書。 兩宮哀悼, 侍從諸臣無不慟傷。 初世子病, 索紙筆, 書古詩:
風雨無情落牡丹, 飜階紅(藥)蘂滿朱欄。 明皇幸蜀 楊妃死, 縱有嬪嬙不喜看
一絶以示侍疾者, 人憂其詩語不祥。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1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