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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7월 1일 임술 1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계천위 이등의 졸기

계천위(啓川尉) 이등(李登)이 졸(卒)하였다. 이등태조(太祖)의 딸 의령 옹주(義寧翁主)에게 장가들었으나, 성질이 부지런하고 삼가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록 몹시 추울 때나 몹시 더울 때라도 한 번도 임금을 조알(朝謁)하는 예(禮)를 폐한 적이 없었고, 만년(晩年)에는 더욱 부지런히 하였는데,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를 만류하면, 말하기를,

"내가 재주 없는 몸으로서 모람되게 척리(戚里)668) 인 인연으로 인하여 이 자리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나라의 늠록(廩祿)만을 허비하고 조그마한 보탬도 있지 않았으니, 어찌 조알(朝謁)하는 예를 꺼리겠느냐?"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79세였다. 관가에서 장사(葬事)를 치러주고 ‘호안(胡安)’이라 시호(諡號)하니, 나이가 많고 오래 산 것을 ‘호(胡)’라 하고 화목을 좋아하고 다투지 않은 것을 ‘안(安)’이라 한다. 아들이 4인이 있는데, 둘째 아들 이선(李渲)임자년669) 과거에 급제하여 지위가 추밀(樞密)에까지 이르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07면
  • 【분류】
    인물(人物) / 재정-국용(國用)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註 668]
    척리(戚里) : 임금의 가까운 친척.
  • [註 669]
    임자년 : 1432 세종 14년.

○壬戌朔/啓川尉 李登卒。 太祖義寧翁主, 性勤謹不怠, 雖隆寒盛暑, 未嘗廢朝謁。 晩年尤謹, 人或止之, 曰, "吾以不才, 濫緣戚里, 得至於此。 坐費廩祿, 未有少補, 何憚朝謁?" 至是卒, 年七十九。 官庀葬事, 諡胡安, 彌年壽考胡, 好和不爭安。 有子四人, 二子中壬子科, 位至樞密。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07면
  • 【분류】
    인물(人物) / 재정-국용(國用) / 인사(人事)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