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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3월 15일 무인 1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일본국의 사자인 전밀 등이 토물과 일본 국왕의 서신을 바치다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조하(朝賀)를 받았다. 일본 국왕(日本國王)의 사자(使者)인 중[僧] 전밀(全密)·영숭(永嵩) 등 9인과, 대내전(大內殿) 다다량 교홍(多多良敎弘)의 사자(死者)인 중 덕모(德模) 등 14인이 반열(班列)에 따르고, 인하여 토물(土物)을 바쳤다. 일본 국왕(日本國王)의 서신(書信)에 말하기를,

"원 의정(源義政)은 단정하고 엄숙히 조선 국왕 전하(朝鮮國王殿下)에게 절하면서 회답하옵니다. 사해(四海)에 풍랑(風浪)이 안정되고 두 나라가 차별 없이 교접(交接)하므로, 기뻐서 하례(賀禮)함을 견딜 수 없어서 특별히 사자(使者) 전밀 서당(全密西堂)·영숭 서당(永嵩西堂)·혜광 천주(慧光蕆主) 등을 차견(差遣)하여 부족하나마 인호(隣好)를 돈독히 하면서 조금이라도 경사(慶事)에 기뻐함을 나타내니, 엎드려 고명(高明)한 청문(聽聞)에 통하기를 바라옵니다. 근년(近年) 이래로 사자(使者)가 서로 잇닫게 되어 음신(音信)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우러러보는 사정(私情)이 깊이 위로되었습니다. 이에 고(告)하건대, 우리 나라에 건인사(乾仁寺)란 절이 있었으니, 대개 건국 초기의 선찰(禪刹)로서 복을 비는 영장(靈場)으로 삼은 것입니다. 전밀(全密)·영숭(永嵩)서당(西堂)323) 이 이 절에 이름을 소속시킨 지가 오래 되었으므로, 이로써 폐사(廢寺)를 새로 일으킬 뜻이 있었던 것인데, 이번 걸음에 인편(人便)을 얻게 되어 또한 대방(大邦)324) 에 고(告)하니, 특별히 5만 민(緍)의 자금(資金)을 하사(下賜)하여 불쌍하고 가엾이 여겨 주시고, 또 대왕(大王)의 자비로운 교화(敎化)가 먼 곳에까지 미치게 되기를 바라옵니다. 변변치 못한 토산물(土産物)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었으니, 금장 병풍(金粧屛風) 2장(張), 홍칠 목완(紅漆木椀) 1백 사(事), 홍칠반(紅漆盤) 큰 것과 작은 것 20편(片), 채화선(綵畫扇) 20파(把), 대도(大刀) 10파(把), 조자(銚子) 10병(柄), 제자(提子) 10개(箇), 남도 목통(南都木桶) 2개, 납자 주기(鑞子酒器) 1개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85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

  • [註 323]
    서당(西堂) : 중을 지칭(指稱)함.
  • [註 324]
    대방(大邦) : 우리 나라에 대한 존칭.

○戊寅/御勤政殿, 受朝賀。 日本國王使者僧全密永嵩等九人、大內殿 多多良敎弘使者僧德模等十四人, 隨班仍獻土物。 日本國王書曰:

源義政端肅拜覆朝鮮國王殿下。 四海斂浪, 兩邦同仁, 無任欣賀之至, 特差遣使者全密西堂永嵩西堂慧光蕆主等, 聊修隣好, 少寓慶悰, 伏幸徹高明之聽。 比年以來使者相繼, 音耗靡絶, 深慰詹仰之私。 仍告吾邦有寺曰建仁, 蓋國初禪刹, 以爲祈福之靈場也。 二西堂, 隷名此寺也久, 是以有起廢之志。 玆行得便且告大邦, 切望特賜五萬緡之資, 以垂矜憐, 且獲大王仁化之覃遠也。 不腆土宜, 具如別幅, 金粧屛風二張、紅漆木椀一百事、紅漆盤大小二十片、綵畫扇二十把、大刀十把、銚子十柄、提子十箇、南都木桶二箇、鑞子酒器一箇。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85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