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에서 종친의 관작의 규정에 대한 일로 아뢰니 그대로 따르다
이조(吏曹)에서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 등의 상언(上言)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정통(正統) 8년118) 12월 초8일의 교지(敎旨)에, ‘《문헌통고(文獻通考)》에는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는 아들 10인을 모두 왕(王)으로 봉했고, 적자(嫡子)와 적손(嫡孫)도 모두 물려받아 왕(王)으로 봉했으며, 중손(衆孫)과 중증손(衆曾孫)도 혹은 열후(列侯)로 봉하고, 혹은 향후(鄕侯)와 정후(亭侯)로 봉했으며, 서진(西晉)에서는 황자(皇子)가 아니면 왕(王)이 될 수가 없는데도 여러 왕(王)들의 지자(支子)와 서자(庶子)가 모두 황가(皇家)의 근속(近屬)과 지친(至親)이므로, 또한 각기 토지로써 은혜를 미루어 비로소 왕의 지자(支子)를 봉하여 공(公)으로 삼고, 왕의 지자를 이어서 봉하여 후(侯)로 삼고, 왕의 지자를 계승하여 봉하여 백(伯)으로 삼았으며, 당(唐)나라에서는 황형제(皇兄弟)와 황자(皇子)는 왕으로 삼고, 여러 왕자(王子) 중의 적자(嫡子)는 군왕(郡王)으로 봉하고, 그 중자(衆子)는 군공(郡公)으로 봉했으니, 고조(高祖)가 〈수(隋)나라의〉 선위(禪位)를 받았으나 천하가 안정이 되지 않은 것으로써 종실(宗室)을 널리 봉하여, 천하에 위세(威勢)를 가지고 황종제(皇從弟) 및 황질(皇姪)로서 나이가 겨우 어린아이가 된 사람 수십 인(數十人)을 모두 봉하여 군왕(郡王)으로 삼았다.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이내 속적(屬籍)을 들고 시신(侍臣)에게 묻기를, 「종자(宗子)를 봉하는 것이 천하에 편리한가?」 하니, 봉덕이(封德彝)가 대답하기를, 「불편(不便)합니다. 지난 옛날의 왕을 봉한 사람을 두루 보아도 오늘날의 왕을 봉한 것이 가장 많습니다. 양한(兩漢)119) 이후로 다만 제자(帝子) 및 친형제(親兄弟)만 봉했을 뿐이고, 종실(宗室)의 소원(疏遠)한 사람은 큰 공로가 있지 않으면 모두 명기(名器)120) 를 함부로 차지할 수가 없었으니, 친소(親疎)를 구별하는 까닭입니다. 선조(先朝)121) 에서는 구족(九族)을 돈목(敦睦)하여 일체(一切)로 왕을 봉했으니, 작명(爵名)이 이미 높아졌기 때문에 역역(力役)을 많이 공급(供給)했던 것입니다. 대개 천하로써 사유(私有)로 삼은 것이고 지극히 공평하게 백성을 통솔한 도리는 아닌 것입니다.」 하니,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짐(朕)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본디부터 백성을 위한 것이고, 백성을 괴롭게 하여 자기의 친족(親族)을 받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하고는, 이에 대개 친속(親屬)의 소원(疏遠)한 사람은 봉작(封爵)을 강등(降等)시키고, 다만 공로가 있는 사람 수인(數人)만이 왕(王)이 되고, 나머지 사람은 봉하여 현공(縣公)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송(宋)나라는 왕자로서 왕이 된 사람의 봉작은 겨우 그 자신에게만 그치게 하고, 자손들은 적출(嫡出)과 서출(庶出)을 물을 것도 없이 승음 입사(承蔭入仕)122) 하는 데 지나지 않아서 환위관(環衛官)으로 삼아 차례대로 천직(遷職)되며, 반드시 여러 관직을 차례로 지내고 햇수가 많아서 덕망과 나이가 조금 높아진 것을 기다려 그제야 특별히 왕작(王爵)으로써 봉하고, 그 조부(祖父)의 임명된 작위(爵位)를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제후(諸侯)의 별자(別子)는 조부를 계승할 사람은 별도로 종(宗)이 되고, 아버지를 계승한 사람은 소종(小宗)이 된다.’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사세(四世)가 되어 시복(緦服)123) 이 다한 것과 오세(五世)에 단문(袒免)124) 이 감해진 것은 동성(同姓)인 것이고, 육세(六世)에는 친속(親屬)이 다 된 것이다.’ 하였으니, 대개 친(親)이 다하면 복(服)도 다하고, 복(服)이 다하면 은례(恩禮)도 또한 따라 감해지게 됩니다.
지금 종실(宗室)의 작질(爵秩)은 고제(古制) 및 예경(禮經)을 참작한다면 마땅히 오복(五服)125) 에 의거하여 정해야 하겠습니다. 왕자(王子) 안에서도 중궁(中宮)의 아들은 대군(大君)으로 봉하고, 측실(側室)의 아들은 군(君)으로 봉하여 모두 정1품으로 삼고, 자급(資級)이 없는 왕손(王孫)으로서 장차 승습(承襲)할 사람은 종 2품으로 삼고, 중손(衆孫)은 정4품으로 삼고, 증손(曾孫)으로써 장차 승습할 사람은 정3품으로 삼고, 중증손(衆曾存)은 종4품으로 삼고, 현손(玄孫)으로서 장차 승습할 사람은 종 3품으로 삼고, 중현손(衆玄孫)은 정5품으로 삼고, 마땅히 승습할 사람이 아버지가 죽고 승습한 후의 왕손은 종 1품으로 삼고, 증손(曾孫)은 정2품으로 삼고, 현손(玄孫)은 종 2품으로 삼고, 장차 승습할 사람이 아버지가 승습하기 전에는 지자(支子)의 예(例)에 의거하고, 제손(諸孫) 안에서 양첩(良妾)에서 난 사람은 각기 1등을 강등(降等)시키고, 전에 매 1등마다 1자급이 있었던 것은 옳지 못하니, 마땅히 문관(文官)·무관(武官)의 예(例)에 의하여 2자급을 서용해야 할 것입니다.
정1품은 현록 대부(顯祿大夫)와 흥록 대부(興祿大夫)로 하고, 종 1품은 소덕 대부(昭德大夫)와 가덕 대부(嘉德大夫)로 하며, 정2품은 숭헌 대부(崇憲大夫)와 승헌 대부(承憲大夫)로 하고, 종2품은 중의 대부(中義大夫)와 정의 대부(正義大夫)로 하며, 정3품은 명선 대부(明善大夫)와 창선 대부(彰善大夫)로 하고, 종3품은 보신 대부(保信大夫)와 자신 대부(資信大夫)로 하며 정4품은 선휘 대부(宣徽大夫)와 광휘 대부(廣徽大夫)로 하고, 종 4품은 봉성 대부(奉成大夫)와 광성 대부(光成大夫)로 하며, 정5품은 통직랑(通直郞)과 병직랑(秉直郞)으로 하고, 종5품은 근절랑(謹節郞)과 신절랑(愼節郞)으로 하며, 정6품은 집순랑(執順郞)과 종순랑(從順郞)으로 하고, 사람됨이 어질고 부지런한 사람은 특지(特旨)로 가자(加資)하게 할 것입니다. 또 옛날의 열후(列侯)·향후(鄕侯)의 제도에 의거하여 1품은 경(卿)이라 일컫고, 2품은 윤(尹)이라 일컫고, 3품은 정(正)이라 일컫고, 4품은 영(令)이라 일컫고, 5품은 감(監)이라 일컫고, 6품은 장(長)이라 일컬어 부곡(部曲)과 향리(鄕里)의 칭호로써 이를 봉하고, 장차 승습(承襲)할 사람은 2품에 이르면 군(君)으로 봉하고, 단문친(袒免親)은 이성 유복친(異姓有服親)의 예(例)에 의거하여 서용(敍用)하고, 친(親)이 다하면 입사(入仕)하기를 문관(文官)·무관(武官)의 예(例)에 의거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만약 종친을 예(例)에 따라 가자(加資)한다면 종친은 본디부터 행직(行職)이 없기 때문에 자급에 따라 봉록(俸祿)을 주는 것이 어렵게 되니, 청컨대 전의 교지(敎旨)에 의거하여 종친의 아들을 제외하고 대신으로 여서(女壻)126) 1인을 추가시켜 자원(自願)에 따라 가자하여 서용하도록 하고, 또 동반(東班)·서반(西班)의 각품(各品) 및 구전(口傳)127) 한 전함인(前銜人) 안에서 임기가 30개월이 찬 사람은 모두 자급을 뛰어 올려 무공랑(務功郞)으로 삼고, 이미 15개월이 찬 사람은 선무랑(宣務郞)으로 삼고, 그 다음에 해당되는 사람은 자급을 뛰어 올려 선교랑(宣敎郞)으로 가자(加資)하고, 종친(宗親) 및 통정 대부(通政大夫) 이상의 족친(族親)에게는 대신 산관직(散官職)128) 을 더하고, 나이 16세 이상이 된 사람은 통훈 대부(通訓大夫) 이하의 관직을 제수(除授)하되 대신 임명되기를 자원하는 사람은 또한 당상관(堂上官)의 예(例)에 의거하여 5품에 한정하여 그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7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의생활-관복(官服)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고사(故事)
- [註 118]정통(正統) 8년 : 1443 세종 25년.
- [註 119]
양한(兩漢) : 서한(西漢)과 동한(東漢).- [註 120]
명기(名器) : 작위(爵位)와 거복(車服).- [註 121]
선조(先朝) : 고조(高祖).- [註 122]
승음 입사(承蔭入仕) :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나아감.- [註 123]
시복(緦服) : 상복(喪服)의 하나. 시마친(緦麻親), 즉 종증조(從曾祖)·삼종 형제(三從兄弟)의 상사(喪事)에 3개월 동안 입던 복제(服制).- [註 124]
단문(袒免) : 상복(喪服)의 하나. 단문친(袒免親), 즉 종고조부(從高祖父)·고대고(高大姑)·재종 증조부(再從曾祖父)·재종증 대고(再從曾大姑)·삼종 조부(三從祖父)·삼종 대고(三從大姑)·삼종 백숙부(三從伯叔父)·삼종고(三從姑)·사종 형제 자매(四從兄弟姉妹) 등의 상사(喪事)에 입던 복제임.- [註 125]
오복(五服) : 사람의 신분의 등급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의 복장을 말함. 즉, 천자(天子)·제후(諸侯)·경대부(卿大夫)·사(士)·서민(庶民)이 입는 다섯 가지의 옷.- [註 126]
○吏曹據讓寧大君 禔等上言啓: "正統八年十二月初八日敎旨, ‘《文獻通考》 漢 光武子十人皆封王, 嫡子、嫡孫皆襲封王, 衆孫、衆曾孫或封列侯, 或封鄕侯、亭侯。 西晋非皇子不得爲王, 而諸王之支庶, 皆皇家之近屬至親, 亦各以土推恩, 封王之支子爲公, 承封王之支子爲侯, 繼承封王之支子爲伯。 唐皇兄弟皇子爲王, 諸王子嫡者封郡王, 其衆子封郡公, 高祖受禪, 以天下未定, 廣封宗室, 以威天下, 皇從弟及姪, 年始孩童者數十人, 皆封爲郡王。 太宗卽位因擧屬籍問侍臣曰, 「封宗子於天下便乎?」 封德彛對曰, 「不便。 歷觀往古封王者, 今日最多。 兩漢以降, 唯封帝子及親兄弟, 若宗室踈遠者, 非有大功, 竝不得濫叨名器, 所以別親踈也。 先朝敦睦九族, 一切封王, 爵命旣崇, 多給力役。 蓋以天下爲私, 殊非至公馭物之道也。」 太宗曰, 「然。 朕理天下, 本爲百姓, 非欲勞百姓以奉己之親也。」 於是率以屬踈降爵, 唯有功者數人得王, 餘封爲縣公。’ 宋王子之爲王者封爵, 僅止其身, 而子孫無問嫡庶, 不過承蔭入仕, 爲環衛官, 以序而遷, 必須歷任年深, 德齒稍尊, 方特封以王爵, 而其祖父所授之爵則不襲也。 《禮》曰, ‘諸侯之別子, 爲祖繼別爲宗, 繼禰者爲小宗’, 又曰, ‘四世而緦服之窮, 五世袒免殺同姓也, 六世親屬竭矣。’ 蓋以親盡則服窮, 服窮則恩禮亦隨而殺矣。 今宗室爵秩, 參酌古制及禮經, 當據五服爲定。 王子內中宮之子封大君, 側室之子封君, 皆正一品, 無資王孫將承襲者從二品, 衆孫正四品, 曾孫將承襲者正三品, 衆曾孫從四品, 玄孫將承襲者從三品, 衆玄孫正五品, 當承襲者, 父歿承襲後王孫則從一品, 曾孫則正二品, 玄孫則從二品, 將承襲者, 父未承襲之前, 依支子例, 諸孫內良妾之出, 各降一等, 在前每一等一資不可, 當依文武官例用二資。 正一品顯祿大夫、興祿大夫, 從一品昭德大夫、嘉德大夫, 正二品崇憲大夫、承憲大夫, 從二品中義大夫、正義大夫, 正三品明善大夫、彰善大夫, 從三品保信大夫、資信大夫, 正四品宣徽大夫、廣徽大夫, 從四品奉成大夫、光成大夫, 正五品通直郞、秉直郞, 從五品謹節郞、愼節郞, 正六品執順郞、從順郞, 爲人良謹者, 特旨加資。 又依古列侯、鄕侯之制, 一品稱卿, 二品稱尹, 三品稱正, 四品稱令, 五品稱監, 六品稱長, 以部曲鄕里之號封之, 將承襲者, 至二品則封君, 袒免親依異姓有服親例敍用, 親盡則入仕依文武官例。 今若宗親隨例加資, 則宗親本無行職, 隨資給祿爲難, 請依前敎旨, 除宗親之子代加以女壻一人, 從自願加資敍用, 又東西班各品及口傳前銜人內, 考滿三十月, 則竝超資務功, 已滿十五月宣務, 當次者超加宣敎, 宗親及通政以上族親, 代加散官職, 年十六歲以上者, 除授通訓以下, 自願代授者, 亦依堂上官例, 限五品而止。" 從之。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7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의생활-관복(官服)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고사(故事)
- [註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