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3권, 세조 2년 3월 21일 경인 2번째기사
1456년 명 경태(景泰) 7년
중궁의 관복과 명나라 사신을 만날 때의 세자의 복장에 관하여 의논하다
예조 정랑(禮曹正郞) 이한겸(李漢謙)이 본조(本曹)136) 와 의정부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명나라 사신이 만약에 친히 중궁(中宮)에게 고명(誥命)을 주고자 하면 복색(服色)은 마땅히 국제(國制)를 쓰고, 친히 주지 않을 것 같으면 편의(便宜)로 지수(祗受)137) 하며, 왕세자는 명(命)138) 을 받지 못했으니 영조(迎詔)하는 데 참여하지 말고 명나라 사신이 관(館)에 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행례(行禮)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중궁(中宮)의 종속례 의주(從俗禮儀註)를 예조로 하여금 상정(詳定)하게 하라. 세자의 관복(冠服)은 내가 마땅히 다시 상량(商量)하겠다."
하였다. 김하(金何)가 아뢰기를,
"신이 세종조(世宗朝)에 있을 때 여러 번 북경(北京)에 나아가 《대명집례(大明集禮)》를 상고(詳考)하였습니다. 황제는 곤룡포 위에 왼쪽 어깨에는 해가 있고 오른쪽 어깨에는 달이 있으며, 황태자(皇太子)로부터 친왕(親王)·군왕(郡王)은 곤룡포 위에 모두 오조룡(五爪龍)을 썼습니다. 이제 세자는 명을 받지 못했으니 우선 사조룡(四爪龍)을 써서 겸양(謙讓)의 뜻을 두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21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