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에 거둥하여 선성을 알현하고, 《하도》·《낙서》를 강론하다
어가(御駕)로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백관과 학생(學生)을 거느리고 선성(先聖)409) 을 알현하고 전(奠)을 마치고 나서 명륜당(明倫堂)에 임어하니, 종친·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참판(參判) 이상 및 시신(侍臣)이 입시(入侍)하였다. 강서관(講書官) 겸 성균관 사성(兼成均館司成) 김구(金鉤)와 시강관(侍講官)인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예몽(金禮蒙) 등이 강좌(講坐)로 나아가니, 임금이 《하도(河圖)》410) ·《낙서(洛書)》411) 의 강의(講義)를 명하였다. 김구가 음양(陰陽)의 이수(理數)가 생성 합변(生成合變)하고, 왕래 굴신(往來屈伸)하는 이치(理致)를 설명하고, 김예몽이 반복(反覆)해서 분석(分析)하여 어려운 것을 밝히니, 임금이 말하기를,
"강론(講論)은 그만하면 충분하니, 너희들은 각각 술잔을 들라."
하였다. 김구가 잔을 올리고 인하여 입시한 재상(宰相)들에게 행주(行酒)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와 아뢰기를,
"복희씨(伏羲氏)412) 가 《하도(河圖)》를 본받아 8괘(卦)를 그렸고, 문왕(文王)·주공(周公)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만들었는데, 본래는 점치는 법(法)이었습니다. 공자(孔子)께서 ‘십익(十翼)’을 지으셨는데 완전히 의리(義理)를 썼으니, 사람마다 역리(易理)를 체득(體得)해 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첫머리 건(乾)의 괘(卦)는 군왕의 도(道)이니, 바로 성상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건괘(乾卦)413) 를 몸받으려고 하면 마땅히 천도(天道)를 몸받아야 할 것인데, 거기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運行)이 쉬지 않으므로, 군자(君子)는 이로써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하였으니,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안일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공이 무일편(無逸篇)414) 을 지어 성왕(成王)을 경계하였는데, 그 첫머리에 이르기를, ‘먼저 가색(稼穡)415) 의 어려움을 알고 안일(安逸)하면 소인(小人)의 가색에 의지함을 알 것입니다.’고 하였으니,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안다는 것은 곧 안일함이 없다는 실증입니다. 그렇게 되는 까닭으로는 가색이란 곧 생민(生民)의 생명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하고, 인하여 가색의 노고를 극진하게 말하고, 심지어 유자후(柳子厚)416) 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까지 인용하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그 명령의 번거로움을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해 진달하였다. 명하여 학관(學官)417) 에게 섬돌 아래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인하여 유생(儒生)들에게 술을 하사하였다.
김구는 학문(學問)이 정심(精深)하고 해박(該博)하였으며, 더욱이 《역경(易經)》에 조예가 깊었으며, 천문(天文)·지리(地理)·복서(卜筮)·산수(算數)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묻지 않으면 발단하여 밝히지 않았고,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먼저 여러 사람의 학설(學說)을 널리 인용하면서 그 동이점(同異點)을 변별한 연후에, 이전부터 얻은 의의(意義)를 참고로 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닫도록 하고, 혹은 자기 의견에 동조하고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을 공박하는 자가 있으면, 또한 자기 의견만을 옳다고 이르지 않고서 말하기를,
"의리(義理)란 무궁한 것인데 고집(固執)해 무엇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종학(宗學)418) 에 나가 강독하였는데, 김구가 당시 박사(博士)로 있었기 때문에, 깊은 예대(禮待)를 더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8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물(人物)
- [註 409]선성(先聖) : 공자 묘.
- [註 410]
《하도(河圖)》 : 옛날 중국 복희씨(伏羲氏) 때에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지고 나왔다는 쉰 다섯 점의 그림. 낙서(洛書)와 함께 주역(周易)의 기본 이치가 됨.- [註 411]
《낙서(洛書)》 :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치수(治水)할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있었다고 하는 마흔 다섯 점의 글씨. 《서경(書經)》의 홍범 구주(洪範九疇)는 이 낙서에 의하여 만든 것이라 하며, 팔괘(八卦)의 법도 여기에서 나왔다 함.- [註 412]
복희씨(伏羲氏) : 중국 전설에 나오는 3황(三皇)의 하나.- [註 413]
건괘(乾卦) : 《주역(周易)》의 편명. ‘하늘이 쉬지 않으므로, 군자는 그것으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天行建 君子以自彊不息]’ 하였음.- [註 414]
무일편(無逸篇) : 《서경(書經)》의 편명. ‘아아! 군자(君子)는 안일(安逸)이 없는 법입니다. 먼저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고 편히 논다면 소인(小人)의 의지함을 알게 될 것이다.[嗚呼君子所其無逸 先知稼穡之艱難 乃逸則知小人之依]’ 하였음.- [註 415]
가색(稼穡) : 농사.- [註 416]
유자후(柳子厚) : 당(唐)나라 시인(詩人) 유종원(柳宗元).- [註 417]
학관(學官) : 성균관 관원.- [註 418]
종학(宗學) : 조선조 세종(世宗) 때 종친(宗親)의 교육을 위하여 설치한 학교.○壬午/駕幸成均館, 率百官學生謁先聖, 奠訖御明倫堂, 宗親、議政府、六曹參判以上及侍臣入侍。 講書官兼成均司成金鉤、侍講官集賢殿副提學金禮蒙等就講坐, 命講《河圖》、《洛書》。 鉤說陰陽理數、生成合變、往來屈伸之理, 禮蒙反覆難論, 上曰: "講論已足矣, 爾各擧爵。" 鉤進爵, 因行酒於入侍宰相, 還坐啓曰: "伏羲則《河圖》畫卦, 文王、周公係卦爻之辭, 本占法也。 孔子以作十翼, 全用義理, 欲使人人體《易》而用之。 其首《乾》之爲卦君道也, 正當聖上事也。 體《乾》則當體天道, 其曰,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自强不息, 是所謂無逸也。 周公作《無逸》戒成王, 首曰, ‘先知稼穡之艱難, 乃逸則知小人之依’, 則知稼穡之艱難, 乃《無逸》之實也。 所以然者, 稼穡乃關生民之大命耳。" 因極言稼穡之苦, 至引柳子厚 《種樹郭橐駝傳》, 長民者, 好煩其令之說, 反覆陳論。 命饋學官于階下, 仍賜儒生酒。 鉤學問精博, 尤長於《易》, 以至天文、地理、卜筮、算數無所不通。 其敎人也, 不扣不發, 及旣叩之, 則必先廣引衆說, 辨其同異然後, 參以平昔所得之義, 令人易曉, 或有黨同伐異者, 則亦不以己見爲是, 曰 ‘義理無窮, 何必固執? 上在潛邸, 就宗學講讀, 鉤時爲博士, 故深加禮待。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8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인물(人物)
- [註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