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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2권, 세조 1년 8월 9일 임자 2번째기사 1455년 명 경태(景泰) 6년

병조 판서 이계전 등이 육조 직계의 불가함을 청함에, 수창자 하위지를 하옥하다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갔는데,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계전(李季甸)·참판(參判) 홍달손(洪達孫)·참의(參議) 이예장(李禮長)·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인손(李仁孫)·참판 권자신(權自愼)·형조 판서(刑曹判書) 권준(權蹲)·참의 윤사윤(尹士昀)·예조 참판(禮曹參判) 하위지(河緯地)·이조 참의(吏曹參議) 어효첨(魚孝瞻)·공조 참의(工曹參議) 박쟁(朴崝)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육조(六曹)에 전지하신 것을 엎드려 보니, 각기 그 직무(職務)를 직접 계달(啓達)하여 시행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우리 나라가 태조(太祖)께서 개국(開國)하시면서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정부(政府)로 하여금 의논하여 계달하도록 하였는데, 갑오년294) 에 이르러 태종(太宗)께서 혁파(革罷)하였다가 세종조(世宗朝) 때 다시 세워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청컨대 옛 그대로 하소서."

하니, 임금이 승지(承旨) 박원형(朴元亨)을 불러서 이계전(李季甸) 등에게 전교하기를,

"옛날에 삼공(三公)은 이치(理致)를 강론(講論)하여 나라를 경륜(經綸)하였고, 육경(六卿)은 각기 직임(職任)이 나누어져 있었으니, 내가 이 제도를 좇으려고 한다. 경들이 만약 육조(六曹)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하겠거든 사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이계전이 대답할 말이 없어 하위지(河緯地)를 돌아보고,

"성상의 하교가 이와 같으시니, 장차 어떻게 아뢰어야 되겠는가?"

하니, 하위지가 아뢰기를,

"주제(周制)에 삼공(三公)295) 은 항구한 이치를 강론(講論)하여 나라를 경륜하고, 삼고(三孤)296) 는 이공(貳公)으로서 교화(敎化)를 넓혔고, 육경(六卿)은 직임(職任)을 나누어 맡았는데, 삼공(三公)과 삼고(三孤)가 비록 직사(職事)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총재(冢宰)297) 가 사실은 겸임하여 다스렸습니다. 신은 원컨대, 주제(周制)를 따르소서."

"이와 같이 오활(迂闊)한 말을 누가 먼저 꺼냈느냐?"

하였다. 이계전이 황공하고 두려워하며 아뢰기를,

"하위지가 신과 더불어 한 말입니다."

하니, 임금이 즉시 이계전 등을 불러들였다. 임금이 하위지에게 명하여 관(冠)을 벗게 하고 이르기를,

"총재(冢宰)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임금이 훙(薨)하였을 때의 제도이다. 너는 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느냐? 또 내가 아직 어려서 서무(庶務)를 재결(裁決)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끝내 대권(大權)을 아랫사람에게로 옮겨 보겠다는 말이냐?"

하고는, 위졸(衛卒)에게 명하여 곤장(棍杖)을 치게 하였다.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가 아뢰기를,

"하위지의 죄가 비록 중하나, 군주(君主)가 신하에게 이와 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청컨대 유사(有司)에 회부(回付)하소서."

하니, 임금이 박원형으로 하여금 머리채를 꺼두르고 끌고 나가 의금부(義禁府)에 가두게 하고는, 전지(傳旨)하기를,

"하위지(河緯地)가 대신(大臣)에게 아부(阿附)하여 나를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망령되게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스스로 현명함을 자랑하여 국가의 모든 사무를 다 정부(政府)에 위임하려고 하였으니, 이를 추국(推鞫)하여 계달(啓達)하라."

하고는, 이어서 박원형(朴元亨)영천 위(鈴川尉) 윤사로(尹師路)에게 명하여 가서 신문(訊問)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계전(李季甸) 등에게 이르기를,

"경 등은 하위지(河緯地)를 현량(賢良)하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만 얽매여서야 옳겠는가?"

하였다. 또 사인(舍人) 조효문(曹孝門)을 불러 당상(堂上)에게 전교하기를,

"경들로 하여금 일을 서리(署理)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권한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니, 혐의(嫌疑)하지 말라. 하위지는 내일 마땅히 극형(極刑)에 처할 것이니, 그리 알라."

하고, 드디어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이달 10일에 하위지(河緯地)조시(朝市)298) 에서 목베어서 후일에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경계하라."

하였으나, 종친(宗親)들이 하위지의 죄를 용서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 전지를 도로 거두고, 홍달손(洪達孫)을 불러 말하기를,

"내 친히 하위지를 신문(訊問)할 것이니, 네가 가서 데리고 오라."

하여, 홍달손하위지를 인솔하여 오니, 도로 가두고 국문(鞫問)하라고 명하였다. 조효문(曹孝門)이 당상(堂上)의 말을 가지고 아뢰기를,

"전지하시기를, ‘하위지가 대신(大臣)에게 아부(阿附)한다.’ 하시니, 신 등은 두려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이날 밤 삼고(三鼓)에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하위지(河緯地)를 인솔하고 와서 기다리게 하였다. 다시 사고(四鼓)에 이르러서는 도로 하옥(下獄)시키고 즉일로 추국을 마치어 아뢰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사신(史臣) 이승소(李承召)는 말하기를, "무릇 사람의 말이 광명 정대하면 처음 듣기에는 좋을 것도 같지만, 그 실제를 추구하게 되면 현실과 배치(背馳)되어 마침내는 쓸 수 없는 것이 많다. 하위지의 말이 삼공(三公)에게 책임지운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세조(世祖)의 초기에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노산군(魯山君) 당시에 태아(太阿)299) 를 거꾸로 잡고 이를 간신(姦臣)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군주는 그 손을 요동하지도 못하였고, 백관들은 명을 받을 겨를도 없이 턱으로 가리키고 눈치로 시켜도 감히 누가 무어라 하지 못하였으며 사람들이 정부가 있는 줄은 알아도 군주가 있는 줄은 모른 지가 오래였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그 폐단을 깊이 경계하여 먼저 정부에서 모든 일을 서리(署理)하는 법부터 폐지시켜 작록(爵祿)의 존폐(存廢)와 생살 여탈(生殺予奪)의 권한을 모두 군주에게 돌아가게 한 연후에, 군신(君臣)의 분의(分義)가 정하여졌고, 상하(上下)의 심정이 편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세조가 그 형세로 인하여 기회를 타고 당시에 군주의 대권(大權)을 건진 것이니, 어찌 구구한 천견(淺見)으로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세조의 고명(高明)한 학식으로 고금의 흥하고 망한 사유를 밝게 살폈을 것인데, 대저 어찌 삼공에게 맡길 만할 것임을 몰랐겠는가? 옛날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300) 가 ‘삼공(三公)에게 정사를 맡기지 않은 것은 역시 왕망(王莾)301) 의 난(亂)을 뒤이어서 경장(更張)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인데, 이로 인해 정치가 대각(臺閣)에게 돌아가고 말았다.’고 말을 한다면, 이는 광무제의 죄가 아니고 계승한 자가 그 뒤를 잘 이어가지 못한 탓이다. 아! 모르는 자는 반드시 나의 이 말을 인후(咽喉)가 막혔다고 식음(食飮)을 폐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論理)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인후가 막혔을 때는 반드시 막힌 것을 먼저 치료한 뒤에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막힌 것을 다스리지 않고 음식을 먹이는 데만 힘쓰게 되면, 나는 아마도 그 막힌 것이 더욱 심해져서 마침내 전복(顚覆)하기에 이르지 않을까 두렵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7책 77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역사(歷史)

  • [註 294]
    갑오년 : 1414 태종 12년.
  • [註 295]
    삼공(三公) :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 [註 296]
    삼고(三孤) :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
  • [註 297]
    총재(冢宰) : 천관(天官)의 우두머리.
  • [註 298]
    조시(朝市) : 시가지.
  • [註 299]
    태아(太阿) : 중국 고대의 명검(命劍). 태아를 거꾸로 잡아 그 자루를 남에게 주는 것[倒太阿授柄]은 자기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말함.
  • [註 300]
    광무제(光武帝) : 후한(後漢)의 시조(始祖).
  • [註 301]
    왕망(王莾) :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을 세운 사람.

○御思政殿, 兵曹判書李季甸、參判洪達孫、參議李禮長、戶曹判書李仁孫、參判權自愼、刑曹判書權蹲、參議尹士昀、禮曹參判河緯地、吏曹參議魚孝瞻、工曹參議朴崝啓曰: "臣等伏覩傳旨六曹, 各以其職直啓施行。 臣等意謂我朝自太祖開國, 事無大小, 悉令政府擬議以啓, 至甲午年, 太宗罷之, 世宗朝復立, 以至于今。 請仍舊。" 召承旨朴元亨, 傳于季甸等曰: "古者三公論道經邦, 六卿分職, 予遵此爲之。 卿等於六曹若不堪任, 辭避可矣。" 季甸無辭以對, 顧緯地曰: "上敎如此, 將何以啓?" 緯地啓曰: "制三公論道經邦, 三孤貳公弘化, 六卿分職, 三公、三孤雖不與事, 冢宰實兼治之。 臣願從制。" 傳曰: "如此迂闊之言, 誰唱之?" 季甸惶懼啓曰: "緯地與臣言之。" 卽召季甸等入。 上命緯地免冠謂曰: "聽於冢宰, 君薨之制也。 汝以我爲薨耶? 且以予爲幼沖, 不能裁決庶務, 遂使權移於下乎?" 命衛卒杖之。 雲城府院君 朴從愚啓曰: "緯地罪雖重, 然人君於臣下, 不必如是。 請付諸有司。" 上, 使元亨捽髮曳出, 囚義禁府, 傳旨曰: "河緯地阿附大臣, 比予幼沖, 妄引故事, 自矜賢良, 國家庶務, 欲悉委政府, 其推鞫以啓。" 仍命元亨鈴川尉 尹師路往訊之, 謂季甸等曰: "卿等以緯地爲賢良, 局於度內可乎?" 召舍人曺孝門, 傳于堂上曰: "不令卿等署事, 非以奪權也, 毋嫌。 緯地則明日當置極刑, 其知之。" 遂傳旨義禁府曰: "本月十日, 斬河緯地於朝市, 以戒後來懷二心者。" 宗親等請赦緯地之罪, 上還收傳旨, 召洪達孫曰: "予當親問緯地, 汝往率來。" 達孫緯地至, 命還囚鞫問。 曺孝門將堂上言啓曰: "傳旨謂緯地阿附大臣, 臣等皇恐無地。" 夜三皷, 令義禁府, 率緯地來待, 四皷命還下獄, 卽日畢推以啓。

【史臣李承召曰: "夫人之言, 光明俊偉, 其始聽也若可喜, 而究其實, 則與時背馳, 終不可用者多矣。 緯地之言, 責任三公者是矣, 而欲行於世祖之初, 則有不然者也。 當魯山之時, 倒持太阿, 授諸姦臣, 人主不得而搖手, 百官不假於承命, 頤指氣使, 莫敢誰何, 知有政府而不知有君之日久矣。 世祖卽位, 深懲其弊, 首罷政府署事之法, 使爵祿廢置、生殺予奪之權, 皆歸於人主, 然後君臣之分定, 而上下之情安矣。 此世祖因勢乘機救時之大權, 豈區區淺見所能則哉? 不然則以世祖高明之學, 洞照今古興替之由, 夫豈不知三公之可任歟? 昔 光武, ‘不任三公以事者, 亦承王莽之亂, 而不得不有所更張耳, 其曰政歸臺閣’, 則非光武之罪, 繼之者不能善其後矣。 嗚呼! 不知者, 必以予言, 爲因噎廢食之論。 然當其噎也, 必先治其噎而後食可食也。 苟或噎之不治, 而務進其食, 則予恐其噎之益甚, 而終至於顚覆也。"】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7책 77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