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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1권, 세조 1년 윤6월 16일 경신 7번째기사 1455년 명 경태(景泰) 6년

경상도 관찰사가 유포와 웅천에 책을 설치하고 가을에 성을 쌓도록 청하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아뢰기를,

"이제 병조(兵曹)에서 수교(受敎)한 행문 이첩(行文移牒)을 보고 신이 좌도 절제사(左道節制使) 하한(河漢)·처치사(處置使) 박거겸(朴居謙)·경주 부윤(慶州府尹) 마승(馬勝)과 더불어 함께 울산(蔚山) 유포 성기(柳浦城基)를 심찰한 바, 구책(舊柵)으로부터 5리 허에 있는 고 연대(古烟臺) 북쪽 변지에 성(城)을 쌓을 것 같으면 바다를 곁에 끼고 험준한 지역에 의거하게 되고 수원(水源)도 마르지 않으며, 또 울산사을산리(沙乙山里)058) ·대한리(大閑里)와, 경주(慶州)상서지리(上西知里)·하서지리(下西知里) 등지의 민간 촌락과도 멀지 않아서 그 수호를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우도 절제사(右道節制使) 한세룡(韓世龍)·처치사(處置使) 이호성(李好誠)과 함께 웅천진(熊川鎭)석보기지(石堡基址)를 심찰한 바, 본진으로부터 거리가 10리 쯤에 위치한 두동(豆洞)은 그 지면의 형세가 높으면서도 평평하고 수원도 마르지 않을 것이며, 또 부곡리(釜谷里)·천읍리(川邑里)·다읍리(多邑里) 등지에 인민의 주거가 매우 많아서 혹시 적도의 동태의 긴급 정보가 있을 경우 웅천은 멀리 격해 있어 미처 입보(入堡)059) 하지 못할 것이므로, 모두 이의 방어가 가장 긴요하므로 성보(城堡)를 설치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제 측량하여 보니 유포성기(柳浦城基)는 그 주위가 1천 4백 92척이었고 웅천 보기(熊川堡基)는 그 주위가 1천 5백 척이었습니다. 우선 두 고을로 하여금 각기 새 기지[新基]에 책(柵)을 설치하게 하고, 청컨대 가을을 기다려서 성을 쌓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4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註 058]
    사을산리(沙乙山里) : 살뫼.
  • [註 059]
    입보(入堡) : 변방(邊方)에 거주(居住)하는 사람들이 적이 침입해 오면 보(堡)에 들어가서 피하는 것.

慶尙道觀察使啓: "今照兵曹受敎文移, 臣與左道節制使河漢、處置使朴居謙慶州府尹馬勝, 同審蔚山柳浦城基, 若於舊柵五里許古烟臺北邊築城, 則傍海據險, 水源不渴, 且蔚山 沙乙山里大閑里慶州 上西知里下西知里等處, 民居不遠, 守護不可不嚴。 又與右道節制使韓世龍、處置使李好誠, 同審熊川鎭 石堡基址, 距本鎭十里許豆洞, 地勢高平, 水源不渴, 且釜谷里川邑里多邑里界等處, 民居甚夥, 若有聲息, 熊川隔遠, 未及入保, 竝防禦最緊, 合置城堡。 今量柳浦城基, 周圍一千四百九十二尺, 熊川堡基, 周圍一千五百尺。 姑令二邑, 各於新基設柵, 請待秋築之。" 從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7책 64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