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빈 양씨와 상궁 박씨의 가산을 적몰하고, 금성 대군 이유는 논하지 않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혜빈양씨(惠嬪楊氏)와 상궁박씨(尙宮朴氏)는 그 가산(家産)를 적몰(籍沒)하라."
하였다. 당초에 양씨(楊氏)가 낳은 여러 아들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불법한 행동이 많았고, 양씨는 노산군(魯山君)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궁중을 드나들면서 요구가 많았는데, 세조가 이에 약간의 절제를 가한 바 있어 양씨가 이를 원망하였고, 그의 아들 수춘군(壽春君) 이현(李玹)이 교만 광망(狂妄)하여 불만을 품은 무리들을 모아서 날마다 술을 마시며 노름을 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또 은밀하게 이용(李瑢)에게 붙어서 일찍이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을 달래어 말하기를, ‘주상이 어리고 약한데다가 질병에 싸여 있고, 안평 대군이 이미 대신(大臣)들과 더불어 극비리에 모의하고는 우리 어머니 혜빈(惠嬪)으로 하여금 궁중에 들어가 일을 총괄해 다스리기로 의논이 이미 정해 있다. 또 안평 대군이 인정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널리 인심을 얻은 데다가 이제 또 안으로는 궁중과 결탁하고 밖으로는 대신들과 연결을 맺었으니, 무엇을 구하지 못하여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자주 나아가 만나지 않겠는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비록 엄중하고 명철하고 공정하긴 하지만, 문(門)에 빈객(賓客)이 없고 고립하여 돕는 자가 없으니 이는 한낫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바 있었다.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는 그 집의 재산이 누거만(累鉅萬)에 이르고 성질이 호탕 방종하여 근신할 줄을 모르고 사치하고 참람하였으며, 〈안평 대군〉 용과 정이 가까웠는데, 안평 대군이 실패한 뒤로부터 항상 불만을 품어 오다가 드디어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과 더불어 협력하기고 모의하고, 은밀히 혜빈에게 뇌물을 주고는 안으로는 궁인(宮人)과 결탁하고 밖으로는 환관(宦官)과 연결하는 등, 널리 그 일당의 성원을 수립하고, 비밀히 무사(武士)를 불러다가 혹은 활쏘기도 하고 혹은 사냥도 하면서 가산을 기울여 은혜를 베풀었는데, 혹시나 미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급급(汲汲)한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그 계략을 알게 되었고, 한명회(韓明澮)는 이를 일찍 제거하여 양호 유환(養虎遺患)012) 이 없도록 하기를 청한 바가 있었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용(瑢)이 복죄(伏罪)되어 골육 간의 슬픔을 차마 말하지 못할 바인데, 어찌 다시 금성대군(錦城大君)을 논의하겠는가? 삼가고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한명회가 아뢰기를,
"죄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사온데, 은혜(恩惠)로써 대의(大義)를 엄폐할 수는 없습니다. 원컨대 깊이 유의(留意)하소서."
하니, 임금이,
"화근(禍根)을 이미 제거하였는데, 다시 또 지엽(枝葉)까지 의논하겠는가?"
하였다. 한명회가 다시 반복하여 진달하니, 임금이,
"만약 그렇다면 서서히 그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의 일당을 제거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말게 하도록 하는 것이 가하다. 골육 사이에 어찌 다시 그 과오를 범하게 하겠느냐?"
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유(瑜)의 음모(陰謀)가 더욱 드러나므로 뭇사람들이 모두 그의 제거를 청하였던 것이다. 유가 일찍이 임금을 좇아 《주역(周易)》을 배운 바가 있는데, 임금이 그를 사랑하였고 또 골육의 온정을 생각하여 혹은 체읍(涕泣)까지도 하였기 때문에, 유(瑜)에게는 특히 곡진하게 깨우쳐 타이르고 그의 평생은 보전하게 하려고 사람들의 말을 모두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혹시 유가 의심하고 두려워할까 염려하여 매양 손수 글을 써서 통문(通問)하며 물품의 증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는 오히려 번민과 원한을 품고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0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註 012]양호 유환(養虎遺患) : 화근을 길러 그로 인해 화를 입게 됨.
○傳旨義禁府曰: "惠嬪 楊氏、尙宮朴氏家産籍沒。" 初楊氏諸子驕橫不法, 楊氏以保護魯山, 出入宮掖, 需求萬端, 世祖稍禁節之, 楊氏以爲怨, 壽春君 玹又驕狂, 好聚不逞之徒, 日與飮博, 且密附於瑢, 嘗說桂陽君 璔曰, "主上幼弱纏疾, 安平已與大臣等密謀, 令我母惠嬪入宮摠治內事, 議已定。 且安平好施, 廣收人心, 今又內結宮禁, 外連大臣, 何求不得, 何事不成? 盍數數進見乎? 首陽雖嚴明公正, 門無賓客, 孤立無助, 一匹夫耳。" 瑜家累鉅萬, 豪縱不謹, 奢侈僭擬, 與瑢情昵, 自瑢之敗居, 常怏怏, 遂與瓔協謀, 陰賄惠嬪, 內結宮人, 外連閹竪, 廣樹黨援, 密招武士, 或射或獵, 傾家好施, 汲汲如不及, 人皆知其謀, 韓明澮請早除之, 毋養虎遺患。 上曰: "瑢伏辜, 骨肉之戚, 所不忍言, 豈可復議錦城耶? 愼勿更道。" 明澮曰: "罪有大小, 不可以恩掩義。 願留三思。" 上曰: "禍根旣除, 更議枝葉乎?" 明澮反覆陳說, 上曰: "若然則徐觀所爲, 稍除其黨, 勿使復作可也。 骨肉之間, 豈容再誤?" 旣而瑜陰謀益著, 衆皆請除。 瑜嘗從上受《易》, 上愛之, 又念骨肉之恩, 或至涕泣, 故於瑜曲盡開誨, 欲保終始, 人言皆拒而不納, 慮瑜疑懼, 每手書通問, 賚遺絡繹。 瑜尙懷憤怨。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7책 60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