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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실록10권, 단종 2년 3월 16일 정묘 2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

권준 등이 전순의를 외방으로 내쫓기를 청하다

대사헌(大司憲) 권준(權蹲)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삼가 《춘추(春秋)》를 상고하니, ‘허(許)나라 세자(世子) 지(止)가 그 임금 매(買)를 시해(弑害)하였다.’ 하고, 《전(傳)》에 이르기를, ‘지(止)는 약(藥)을 맛보지 않았다.’고 하고, 또 이르기를, ‘지(止)가 약(藥)을 맛보지 않은 것은 군부(君父)의 존엄을 소홀히 해서 삼가히 하지 않은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군부의 존엄을 소홀히 해서 삼가지 않으면, 이것은 찬시(簒弑)251) 의 싹이 굳어져 가는 징조이므로 《춘추》에서 삼가는 바입니다. 또, 《대명률(大明律)》을 상고하면 대불경(大不敬) 조목에 이르기를, ‘임금의 약을 화합(和合)하여 짓는 데 잘못 본방(本方)에 의하지 아니하고, 어선(御膳)을 만드는 데 식금(食禁)252) 을 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는데, 다만 ‘잘못 본방(本方)에 의하지 아니하고, 잘못 식금(食禁)을 범하는 것이라.’고만 말하고, 그 뜻의 유무(有無)와 일의 절박함과 해로움은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대개 지존(至尊)한 데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하지 아니하여 비록 해(害)가 있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상의 경중(輕重)을 논하지 말고 반드시 이 율(律)로 다스려서 용서함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무릇 밝게 헤아리고 신중히 엄하게 하여 용법(用法)의 지극히 자세한 것은 《춘추(春秋)》와 같은 것이 없고, 백왕(百王)을 짐작(斟酌)하여 만세(萬世)의 모범이 되는 것은 대명률(大明律)과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약을 맛보지 않은 것을 적연(適然)하게 생각지 아니하고 반드시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책망을 가했고, 〈약을 짓는 데〉 잘못하여 방문(方文)에 의하지 않은 것과 〈음식을 만드는 데〉 잘못하여 식금(食禁)을 범한 것을 과오(過誤)로 생각지 아니하고 반드시 대불경(大不敬)의 죄를 가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상하(上下)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제거하며, 미세한 것을 삼가는 지극한 뜻에서입니다.

지금 전순의(全循義)는 계통이 본래 용천(庸賤)한데 성명(聖明)을 만나 여러번 초탁(超擢)되어 지위가 3품에 이르렀고, 사여(賜與)한 것이 셀수가 없었으니,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싸라기[粉骨糜身]가 되어도 오히려 그 〈은공의〉 만분의 1을 갚기에도 부족할 터인데, 지난번 문종 대왕(文宗大王)께서 병환이 위중[彌留]하실 때 어약(御藥)을 짓는 데 본방(本方)을 상고하지 않고 망령되게 약을 지어 올렸고, 사위[禁忌]하는 방법도 사용하지 않고 해(害)가 없다고 하여, 병환이 위독하기에 이르렀는데, 오히려 말하기를, ‘성체(聖體)가 회복[平得]되었다.’고 하여, 마침내 선왕(先王)으로 하여금 마지막 명령을 말할 수 없게 하고, 전하께서 친히 유조(遺詔)를 받을 수 없게 하여, 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는 슬픔이 되게 하였으니, 그 죄(罪)가 크고 악(惡)이 극에 달하여, 삼가지 않고 공경하지 않은 데 그칠 뿐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신민(臣民)이 분통하게 여겨 이를 갈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마땅히 엄한 법에 처치하여 여망(輿望)을 쾌(快)하게 했어야 할 터인데, 그 때에 간신 황보인(皇甫仁) 등이 전하께서 자상(慈祥)하고 인서(仁恕)한 덕(德)이 있는 것을 엿보고, 또 전하께서 비통하여 근심하고 계신 틈을 타서 교묘하게 그럴듯한 말을 드려 천주(天誅)를 벗어나게 하였으니, 진실로 이미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갑자기 전지(傳旨)를 내리셔서 고신(告身)을 도로 주고, 얼마 안되어 또 작위(爵位)로써 은총을 베푸시니, 무릇 이목(耳目)이 있는 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경탄(驚嘆)하되 그 연유를 알지 못하고, 신 등도 어리석어서 역시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또 벼슬로서 선(善)한 것을 권하고 형벌로서 악(惡)한 것을 징계하는 것은 인군(人君)이 강상(綱常)을 부식(扶植)하고 풍속(風俗)을 고무(鼓舞)하는 대권(大權)이니, 조금이라도 구차함이 있어 법도가 없게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전순의가 재주가 있다면야 그만이겠으나. 취(取)할 만한 것도 없고, 게다가 또 불경(不敬)·불충(不忠)의 막대한 죄를 졌는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상벌(賞罰)의 권한을 전도하여 시행하셔서 사람의 견문(見聞)을 놀라게 하십니까? 신 등은 재주가 없어서 전하께서 장차 무엇에 쓸려고 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춘추(春秋)》의 뜻을 본받고 시왕(時王)의 제도를 준수하시어 급히 내리신 명령을 거두고 외방(外方)으로 내쫓아서, 신민들의 분함을 풀게 하시고, 후세의 인신(人臣)들로서 불경·불충한 자를 경계하시면 심히 다행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였으나, 궁중에 머물러 두고 회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6책 67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 의약-의학(醫學) / 의약-약학(藥學)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출판-서책(書冊) / 정론-정론(政論)

  • [註 251]
    찬시(簒弑) : 임금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음.
  • [註 252]
    식금(食禁) : 음식을 만드는 데 서로 섞어서는 안되는 것.

○大司憲權蹲等上疏曰:

臣等謹按《春秋》, 世子弑其君, 《傳》曰: "不嘗藥也。" 又曰: "不嘗藥, 是忽君父之尊而不愼也。" 忽君父之尊而不愼, 此簒弑之萌、堅氷之漸, 而《春秋》之所謹也。 又按《大明律》大不敬之目云: "合和御藥, 誤不依本方若造御膳, 誤犯食禁之類。" 但云誤不依本方、誤犯食禁, 而不言其情之有無、事之切害, 蓋曰至尊之所, 少不盡心, 雖不至於有害, 勿論情之輕重, 必以此律而無赦也。 夫明恕謹嚴, 用法之至詳者, 莫如《春秋》; 斟酌百王, 以爲萬世之所取象者, 莫如《大明律》, 而不嘗藥, 不以爲適然, 而必加之弑君之誅; 誤不依方、誤犯食禁, 不以爲過誤, 而必加之大不敬之罪: 皆所以維持上下, 除惡謹微之至意也。 今全循義係本庸賤, 遭遇聖明, 屢蒙超擢, 位至三品, 賜與無算, 雖粉骨糜身, 猶不足以報其萬一。 頃在文宗大王彌留之日, 敦掌御藥, 不考本方, 妄進藥餌, 不用禁忌, 以爲無害, 至濱於大漸, 而猶曰聖體已平復矣。 遂使先王不得道楊末命, 殿下不得親受遺詔, 以爲沒世無窮之慟, 其罪大、惡極, 非特不愼、不敬而已也。 一國臣民, 莫不憤痛切齒, 宜置重典, 以快輿望。 其時姦臣皇甫仁等窺殿下有慈祥仁恕之德, 乘殿下悲痛無聊之隙, 巧進疑似之說, 俾脫天誅, 固已失矣。 今乃忽降傳旨, 還賜告身, 俄又寵以爵位, 凡有耳目者, 扼腕驚嘆, 莫知其由。 臣等愚陋, 亦竊惑焉。 且爵以勸善、刑以懲惡, 人君所以扶植綱常、鼓舞風俗之大權, 不可少有苟焉而無章也。 以循義爲有才, 則已無可取, 而又負不敬、不忠莫大之罪, 殿下何倒施賞罰之權, 駭人見聞乎? 臣等不佞, 不識, 殿下將何所用哉? 伏望, 殿下法《春秋》之義、遵時王之制, 亟收成命, 放黜于外, 以解臣民之憤, 以戒後世爲人臣而不敬不忠者, 不勝幸甚。

留中不下。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6책 67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왕실-국왕(國王) / 의약-의학(醫學) / 의약-약학(藥學)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출판-서책(書冊)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