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를 맞아들이고 즉시 길복을 입으시라는 세조의 청을 따르기로 하다
종친(宗親)·부마(駙馬)·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당상(堂上)이 빈청(賓廳)에 모여서 의논하고 다시 왕비를 맞아들이는 일을 청하였다. 세조(世祖)는,
"왕비를 맞아들이는 것을 어찌 다시 의논할 필요가 있겠는가? 다만 왕비를 맞아 들인 뒤에 길복(吉服)을 따를 것인지와 왕비를 맞아들이는 일을 정지할 것인지를 의논할 따름이다."
하고, 드디어 차례로 이를 물으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미 종사(宗社) 대계(大計) 때문에 이를 청하였고, 또 책례(冊禮)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중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으나, 오로지 예조 참의(禮曹參議) 어효첨(魚孝瞻)만이,
"왕비를 맞아들인 뒤에는 길복(吉服)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되풀이하여 효유(曉諭)하니, 어효첨이 대답하기를,
"소인(小人)은 우직(愚直)하여 그 본래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지만, 청컨대 여러 사람의 의논을 채용하소서."
하였다. 세조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백관(百官)들의 청을 힘써 따르시어 이미 고기(告期)하고 책봉(冊封)하였으니, 어찌 갑자기 이를 정지시키겠습니까? 신 등은 실망하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억지로 이에 따르려고 힘썼으나, 그러나 다시 이를 생각하니, 마음에 편안치 못하였다. 또 이를 말하는 자가 있다."
하였다. 세조가 다시 청하기를,
"일개 성삼문(成三問)의 말을 가지고 갑자기 대사(大事)를 정지시키는 것이 가(可)하겠습니까? 무릇 조정(朝廷)의 일은 모두 고제(古制)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수릉관(守陵官)이 전하를 대신하여 3년 동안 최질(衰絰)을 입는 일과 같은 것은 또한 고제(古制)가 아닙니다. 더구나, 27일에 상(喪)을 없애는 것이 중국 조정의 임시 제도이니, 청컨대 임시 제도를 따라서 왕비를 맞아들이고 즉시 길복(吉服)을 입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6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宗親、駙馬、議政府、六曹堂上會賓廳, 議復請納妃事。 世祖以爲: "納妃, 何必復議? 但議納妃後從吉與停納妃耳。" 遂歷問之, 僉曰: "旣以宗社大計而請之, 且冊禮已成, 不可中止。" 獨禮曹參議魚孝瞻以爲: "納妃後不可從吉。" 世祖反復曉諭, 孝瞻對曰: "小人愚直, 不能變其素心。 請採衆議。" 世祖啓曰: "上勉從百官之請。 旣已告期冊封, 何遽停之乎? 臣等缺望。" 傳曰: "予初勉强從之。 然更思之, 未安於心, 又有言之者。" 世祖更請曰: "以一成三問之言遽停大事, 可乎? 凡朝廷之事, 皆不能從古制。 如守陵官代殿下衰絰三年, 亦非古制也。 況二十七日而除喪, 中朝權制也。 請從權制納妃、卽吉。" 從之。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6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