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정인지·한확 등과 더불어 왕비를 맞아들이기를 청하다
세조(世祖)가 좌의정 정인지(鄭麟趾)·우의정 한확(韓確)과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와 여러 종친(宗親)·부마(駙馬)와 문무 백관(文武百官)과 더불어 아뢰기를,
"신 등이 전일에 비(妃)를 맞아 들이도록 재삼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물러나서 생각하여 보니 의리상 중지할 수가 없습니다. 금일 백관들이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하여 다시 아뢰니, 청컨대 모름지기 힘써 따르소서."
하니,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할 수 없다."
하였다. 세조가 다시 아뢰기를,
"옛날에는 상(喪) 중에 있으면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 고기를 먹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이 상(喪) 중에 있는 3년 동안에는 말을 하지 아니하였으나, 지금은 3년 안에 온갖 사무를 재결(裁決)합니다. 옛날에는 제왕(帝王)은 띠로 이은 초가집에 흙으로 쌓은 섬돌에 살았으나, 지금은 제왕이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웅장하고 화려하게 합니다. 옛날에는 심의(深衣)001) 에 큰 띠를 매었으나, 지금은 호복(胡服)002) 차림에 따릅니다. 옛날에는 수레[車]를 타고서 싸웠으나, 지금은 말을 타고 싸웁니다. 이것은 모두 부득이하여 때에 따라서 적당한 것을 헤아려 권도(權道)에 따라서 이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 사람의 의논에 따르기를 도모하신다면 천심(天心)에 합(合)할 것이요,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이와 같다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하늘의 뜻이 이와 같다면 조종(祖宗)의 하늘에 계신 마음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청컨대 신 등의 청을 따르소서."
하니,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아뢰는 뜻을 내가 모두 알고 있으나, 따를 수는 없다."
하였다. 세조가 다시 아뢰기를,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을 이 일과 비교하여 동일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지금은 부득이하여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오로지 큰 일에 대해서는 윤허를 하지 않으시니, 신 등은 통절히 가슴 아파합니다. 또 인군(人君)의 한 몸은 종묘·사직과 실로 관계되는데, 하물며, 지금 세종(世宗)께서 승하(昇遐)하신 이후로 나라에서 잇달아 액운(厄運)을 만났고, 또 전하께서 외로운 혼자 몸이시니 한갓 상경(常經)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국론(國論)이 이미 이와 같을지라도 끝내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56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癸丑朔/世祖與左議政鄭麟趾、右議政韓確及讓寧大君 禔、孝寧大君 (補)〔𥙷〕 、諸宗親、駙馬、文武百官, 啓曰: "臣等前日請納妃再三, 未得蒙允, 退而思之, 義不可中止。 今日百官以宗社大計更啓, 請須勉從。" 傳曰: "不可。" 世祖更啓曰: "古者居喪不飮酒、食肉, 今則不然; 古者諒陰三年不言, 今也三年之內, 裁決萬務; 古者帝王茅茨、土階, 今也帝王所居, 必令壯麗; 古者深衣、大帶, 今也從胡服; 古者乘車以戰, 今也騎馬以戰: 此皆不得已因時度宜, 從權以爲之也。 況謀從衆, 則合天心, 衆論如是, 則天意可知, 天意如是, 則祖宗在天之心亦可知矣。 請從臣等之請。" 傳曰: "所啓之意, 予悉知之。 然不可從也。" 世祖更啓曰: "飮酒、食肉比之, 此事不可同(日)〔一〕 而語。 今者不得已飮酒、食肉, 獨於大事不允, 臣等痛憫。 且人君一身, 實關宗社, 矧今自世宗升遐以後, 國家連遭厄運, 且殿下孤單, 不可徒守常經也。" 傳曰: "國論旣已如此, 終未遂予心也。"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56면
- 【분류】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