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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실록 9권, 단종 1년 12월 25일 정미 1번째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권준 등이 민건과 김효급 등의 관직을 파면하기를 청하다

대사헌(大司憲) 권준(權蹲)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전일에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민건(閔騫)과 도사(都事) 김효급(金孝給) 등의 관직을 파면하기를 청하였는데, 아직 윤허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는 마땅히 악(惡)한 것을 내치고 선(善)한 것을 올려 써서 서무(庶務)를 고르게 해야 합니다. 만약 혹시라고 현부(賢否)가 뒤섞이고 시비(是非)가 전도(顚倒)된다면, 이는 곧 국가의 이란(理亂)의 계기가 되고, 생민(生民)의 휴척(休戚)의 근원이 되오니,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안으로는 정부(政府)가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육조(六曹)가 서무(庶務)를 분장하여 감독하고, 헌부(憲府)가 불법(不法)한 것을 규찰(糾察)하고 있으나, 기강(紀綱)이 엄숙하지 못함에 걱정이 되고, 용재(庸材)가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음에 근심이 됩니다. 가까운 서울에서도 오히려 이러하니, 하물며, 외방(外方)은 조정이 강기(綱紀)가 두루 미치지 못하고, 이목(耳目)이 제대로 못미치는데, 한 도(道)를 감사(監司)에게 내어 맡겨서 출척(黜陟)의 권한을 마음대로 하게 하니, 그 책임이 무겁지 않습니까? 옛사람은

수레에 올라 말고삐를 잡고 〈지방으로〉 나가서 탐오하고 완악한 수령들의 인수(印綬)를 풀어 파직시킨 이1218) 도 있고, 또 비단옷을 입고 부월(斧鉞)을 들고 나가서 주군(州郡)을 숙청(肅淸)한 이1219) 도 있었습니다. 대개 목민(牧民)하는 관리가 반드시 청렴 결백하고 수행(修行)이 있는 선비는 아닙니다. 승출(陞黜)1220) 의 방법은 차라리 엄격함에 실수가 있을지언정, 관대함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오니, 진실로 관리에게 관대하면 백성에게 해롭게 됨이 부득불(不得不)한 것입니다.

지금 민건김효급은 이미 중임(重任)에 뽑혀서 한 도(道)를 마음대로 전제(專制)하게 되었으니,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진실로 마땅히 조심스럽게 봉공(奉公)하여, 위임(委任)한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전최(殿最)의 대사(大事)는 더욱 마땅히 지극히 엄격하고 지극히 정당하여, 한결같이 공정(公正)하게 해서 명실(名實)이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인데, 그저 인심 좋게 흑백(黑白)을 가리지 않고 한 도(道)의 수령(守令) 40여인을 모두 다 최상급[最例]에 두어, 사사로운 은혜를 팔고 전하를 속이며 조정(朝廷)을 경시하고서도, 조금도 두려워하고 꺼리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민건 등이 교묘하게 혐원(嫌怨)을 피하고자 하여 고의로 관대하게 하였다면, 이는 간사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이며, 본래 밝은 식견(識見)이 없어서 청탁(淸濁)의 분변하는 데 어두웠다면, 이는 혼미하고 용렬한 것이오니, 혼미하고 용렬한 자는 진실로 중임(重任)을 맡길 수 없으며, 간사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는 그 죄가 더욱 무거운 것입니다. 김효급은 그 사람됨이 기력이 없고 용렬하여서 진실로 책임을 맡기에 부족하며, 민건은 여러 차례 청요(淸要)의 벼슬을 지내고, 또 근시(近侍)가 되어 종사한 지가 이미 오래이온데, 비록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또한 심히 용렬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같이 한 것은 반드시 교가 있는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속히 명하시어 두 사람을 파직하여 내쫓고, 〈전최(殿最)의〉 등제(等第)를 개정(改正)하여 기강을 바로잡게 하소서."

하니,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654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註 1218]
    수레에 올라 말고삐를 잡고 〈지방으로〉 나가서 탐오하고 완악한 수령들의 인수(印綬)를 풀어 파직시킨 이 : 후한(後漢) 때 범방(范滂)이 어지러운 기주(冀州)를 규찰하여 완악한 수령들의 인수(印綬)를 풀어 파직시키고 기강(紀綱)을 숙정(肅正)한 고사(故事).
  • [註 1219]
    비단옷을 입고 부월(斧鉞)을 들고 나가서 주군(州郡)을 숙청(肅淸)한 이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직지사자(直指使者) 포승지(暴勝之)가 비단옷을 입고 부월(斧鉞)을 잡고 나가서 지방에 횡행하던 도적들을 토벌한 고사(故事).
  • [註 1220]
    승출(陞黜) : 공이 있는 자를 올려 쓰고 공이 없는 자를 내쫓음.

○丁未/大司憲權蹲等上疏曰:

臣等前日請罷忠淸道觀察使閔騫、都事金孝給等職, 未蒙允兪。 臣等竊惟, 爲國之道, 當黜幽陟明, 以諧庶務。 若或賢否混淆、是非顚倒, 則此乃國家理亂之機、生民休戚之源, 不可不愼也。 今內則政府統率百官, 六曹分督庶務, 憲府糾察不法。 然紀綱或患於未肅, 闒(葺)〔茸〕 尙患於未汰。 京輦之下, 猶且如此, 況外方, 則朝廷綱紀之所未悉及, 耳目之所未盡逮, 以一道畀之監司, 使專黜陟之權, 其任不已重乎? 古人有登車攬轡而貪頑解印者、繡衣持斧而州郡肅淸者。 蓋牧民之吏, 未必皆淸修之士, 陞黜之方, 寧失於嚴, 不可失於寬。 誠以寬於吏則害於民, 所不得不爾也。 今孝給旣承重選, 專制一道, 凡於事爲, 固宜小心奉公, 以不負委任之意。 況此殿最大事, 尤當至嚴至正, 一以至公, 使名實不爽。 而顧乃容容, 不別黑白, 一道守令四十餘人, 皆置最例, 以市私恩而欺殿下、忽朝廷, 略無畏忌。 若等, 巧避嫌怨, 故爲寬大, 則是回邪不直也; 本無鑑識, 昧於淸濁之辨, 則是昏迷庸妄也。 昏迷庸妄者, 固不可以重任; 回邪不直者, 其爲罪尤重。 孝給爲人疲軟庸妄, 固不足責; 累經淸要, 且爲近侍, 從仕已久, 雖未可謂賢明, 亦不甚庸妄。 今之爲此, 必有計較。 伏望, 亟命罷黜二人, 改正等第, 以正紀綱。

命議于大臣。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654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