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실록 9권, 단종 1년 12월 13일 을미 1번째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사헌부에서 불에 탄 유점사에 주지를 보내어 창건하게 한 일의 부당함을 아뢰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근래에 유점사(楡岾寺)가 불에 탔으므로, 신 등이 그 토전(土田)을 군자(軍資)에 붙이고 불상(佛像)을 근방 사원(寺院)에 옮기기를 청하였는데, 지금 주지(住持)를 다시 보내어 특별히 창건(創建)하게 하시니, 신 등은 실망하고 있습니다. 당초에 나라에 복(福)을 비는 비보사(裨補寺)가 매우 많았는데, 태종(太宗)께서 거의 다 도태(淘汰)시켜 그 노비(奴婢)와 법손 노비(法孫奴婢)1213) 를 한결같이 모두 혁파하고, 말씀하시기를, ‘지금 사원을 모두 다 혁파하고자 하나, 그 내력이 이미 오래기 때문에 감히 일조(一朝)에 모두 혁파하지 못하니, 반드시 후세의 자손이 내 뜻을 본받아서 능히 혁파할 자가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선왕의 뜻이 이와 같으셨고, 이제 이 절이 불탔으니, 실로 천행입니다. 청컨대 그 역사를 파하소서."
하니, 전지하기를,
"내 마땅히 다시 의논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52면
- 【분류】군사-금화(禁火) / 군사-병참(兵站) / 사상-불교(佛敎) / 건설-건축(建築)
- [註 1213]법손 노비(法孫奴婢) : 승려가 승려에게 전하여 주던 노비(奴婢). 법손(法孫)은 불가(佛家)에서 후계(後繼) 승려를 가리키는 말인데, 조선조에서는 억불 정책(抑佛政策)을 취하여 법손 노비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속공(屬公)시켰음.
○乙未/司憲府啓曰: "近楡岾寺失火, 臣等請將土田屬軍資、佛象〔佛像〕 移旁近寺院。 今更遣住持, 特令創建, 臣等缺望。 初資福裨補寺頗多, 而太宗沙汰幾盡, 其奴婢及法孫奴婢, 一皆革罷。 乃敎曰: ‘今欲盡革寺院, 第因其來已久, 不敢一朝盡革。 必有後世子孫, 體我志, 能革之者。’ 先王之志如此, 而今此寺火, 實天幸也。 請罷其役。" 傳曰: "予當更議。"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52면
- 【분류】군사-금화(禁火) / 군사-병참(兵站) / 사상-불교(佛敎) / 건설-건축(建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