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조가 심치경을 자신과 더불어 대변케 하고 법에 따라 처리하여 주기를 청하다
이조 참의 신석조(辛碩祖)가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보잘것없는 문필의 재주로써 외람되게 성은(聖恩)을 입어 오래도록 참람하게 시종(侍從)하여 이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공효(功效)도 없었사오나, 오직 봉공(奉公)만 할 줄 알고 다른 마음은 없이 하여, 성은(聖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심치경(沈致敬)이란 자가 신을 모함하여 말하기를, ‘지난 여름 5월에 민신(閔伸)이 동대문(東大門) 감역소(監役所)에서 이명민(李命敏)을 시켜 신에게 화차(火車)를 감조(監造)하도록 위촉하였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10월 28일에 신이 춘추관(春秋館)에서 신의 아들 신수담(辛壽聃)에게 이르기를, 「집에 간수하여 둔 문서(文書)에 지화(池和)와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의 이름이 실려 있는 글이 있으니, 빨리 가서 찾아 내어 불태워 버리라.」고 하였다.’ 하여, 이 두 가지 일로써 신을 모함하려고 하였습니다. 대저 화차의 제조는 반드시 만든 곳이 있을 것이고, 장인(匠人)도 한두 사람이 한 바가 아닐 것이니, 어찌 흔적을 찾을 수 없겠습니까? 또, 민신이 비록 이를 시켰다 하더라도, 어찌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히 큰소리로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였겠으며 또 어찌 이 우졸(迂拙)한 소유(小儒)로 하여금 계획하게 하였겠습니까? 또 정난(靖難)이 10월 초10일에 있었는데, 만약 문서를 불질러 자취를 없애려고 하였다면 마땅히 그날에 집에서 불살라 버렸을 것이지, 누가 능히 금함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18일 씩이나 오래 지나서 사관(史館)인 공청(公廳)에서 아들을 시켜 불태우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애매하여 밝히기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까? 성상(聖上)의 예감(睿鑑)으로 그 정위(情僞)를 밝게 비추시어 그대로 두고 묻지 않으시면, 심치경에게는 다행한 일이나, 신은 터무니없는 죄를 뒤집어쓰고도 유사(有司)에게 나가 변별(辨別)하여 밝히지 못하면 어찌 여러 사람의 의문을 풀 수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매 원통함을 견딜 수 없고,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으며, 자나 깨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심치경을 유사(攸司)에 내리도록 명하시어 신과 더불어 대변(對辨)케 하시고, 법에 따라 밝게 처리하여 국법을 엄하게 하고 소신(小臣)의 분하고 억울한 심정을 펴게 해 주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638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吏曹參議辛碩祖上書曰:
臣以文墨末技, 濫蒙聖恩, 久叨侍從, 得至於此。 雖無寸效, 唯知奉公無他, 以報聖恩之萬一。 今有沈致敬者, 構臣曰: "夏五月, 閔伸在東大門監役所, 使李命敏囑臣監造火(軍)〔車〕 。" 又曰: "十月二十八日, 臣在春秋館, 謂臣子壽聃曰: ‘家藏文書, 有池和、皇甫仁、金宗瑞載名之書, 急往搜出焚之。’ 以此二事謀欲陷臣。 夫火車製造, 必有工作之處, 夫匠亦非一二人所爲, 豈無跡可尋? 且閔伸雖爲之, 豈於廣坐公然大言、使人聞之乎? 又豈令迂拙小儒爲之計畫乎? 且靖難在十月初十日, 若欲焚書以滅跡, 當卽日在家焚之, 有誰能禁, 而越十八日之久, 在史館公廳, 乃使其子焚之乎? 此皆非曖昧難明之事。 伏蒙睿鑑, 已洞照情僞, 置而不(間)〔問〕 , 於致敬則幸矣。 臣被誣構, 不就有司而別白, 則豈能解人人之疑哉? 臣念至此, 不勝痛泣, 跼天蹐地, 寤寐罔措。 伏望, 命下致敬于攸司, 與臣對辨, 明置於法, 以嚴邦憲, 以伸小臣憤鬱之情。
- 【태백산사고본】 3책 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638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