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동·정분 등이 책방을 혁파할 것을 청하다
우승지(右承旨) 노숙동(盧叔仝)이 경연(經筵)에서 아뢰기를,
"전날 의정부에서 책방(冊房)을 혁파하도록 청하니, 가부(可否)를 다시 의논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의정부에서 또 이르기를, ‘책방(冊房)은 선왕께서 혁파하고자 하였으나, 시행하지 못했던 것이니, 모름지기 이를 혁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책방(冊房)은 혁파할 수가 없지 않느냐? 세종(世宗)의 초기에 설치한 것은 무슨 뜻이었는가?"
하였다. 우의정 정분(鄭笨)이 나아가서 아뢰기를,
"세종(世宗)께서 책방·묵방(墨房)340) ·화빈방(火鑌房)341) ·조각방(雕刻房)을 금내(禁內)에 설치한 것은 특별히 일시적인 일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문종조(文宗朝)에 신 등이 모두 이를 혁파하도록 청하였으나, 문종께서 조각방·화빈방·묵방을 혁파하여 상의원(尙衣院)에 합하였으며, 또 책방을 혁파하여 주자소(鑄字所)에 합하고자 하였으나, 일이 아직 끝나지 않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즉시 혁파하지 못하고, 별좌(別坐) 2인을 뽑아서 주자(鑄字)의 일에 구임(久任)시킬 자로 삼았으며, 책방(冊房)을 주자(鑄字)에 합하여 성효(成効)를 책임지우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생각건대, 이미 주자소(鑄字所)가 있고 또 책방(冊房)을 설치하여 공장(工匠)을 나누어 역사시키니, 실로 폐단이 있게 됩니다. 이것은 선왕께서 혁파하고자 한 바이니, 신 등이 감히 청하는 것입니다."
하고, 지경연사(知經筵事) 이사철(李思哲)은 아뢰기를,
"신이 도승지(都承旨)가 되었을 때에도 또한 선왕께서 책방(冊房)을 혁파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니, 노산군(魯山君)이 한참 동안 있다가 말하기를,
"나의 뜻으로는 책방은 길이 혁파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고, 이어서 노숙동에게 이르기를,
"책방(冊房)의 현임 서원(書員)은 모두 주자소(鑄字所)로 돌려보내고, 그 이미 거관(去官)한 자에게는 그대로 책방(冊房)의 일을 맡기도록 하라."
하였다. 좌승지(左承旨) 박중손(朴仲孫)·동부 승지(同副承旨) 신숙주(申叔舟) 등이 아뢰기를,
"하나의 주자소(鑄字所)만으로도 서책(書冊)의 일을 족히 감당할 수 있으니, 청컨대 책방을 혁파하여 이를 주자소(鑄字所)에 귀속시키소서."
하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이미 알고 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586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출판-인쇄(印刷) / 왕실-경연(經筵)
○戊午/右承旨盧叔仝於經筵啓曰: "前日, 議政府請罷冊房, 令更議可否。 今議政府又云: ‘冊房, 先王欲罷而未行者, 須當罷之。’" 魯山曰: "冊房, 無乃有不可罷乎? 世宗之初置, 何意也?" 右議政鄭苯進曰: "世宗置冊房、墨房、火鑌房、雕刻房於禁內者, 特一時事耳。 文宗朝, 臣等請皆罷之, 文宗罷雕刻、火鑌、墨房, 合於尙衣院; 又欲罷冊房, 合於鑄字所, 以事有未畢者, 未卽罷, 而擇別坐二人, 爲鑄字久仕者, 欲合冊房於鑄字而責成也。 臣等以爲, 旣有鑄字所, 又設冊房, 分役工匠, 實爲有弊。 此先王之所欲罷, 而臣等之所敢請也。" 知經筵李思哲啓曰: "臣爲都承旨時, 亦聞先王欲罷冊房。" 魯山良久曰: "予意以爲, 冊房不可永罷也。" 仍謂叔仝曰: "冊房見任書員, 皆還鑄字所; 其已去官者, 仍任冊房。" 左承旨朴仲孫、同副承旨申叔舟等啓曰: "一鑄字所, 足以當書冊之事, 請罷冊房, 歸之鑄字所。" 魯山曰: "已知之矣。"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58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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