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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실록 2권, 단종 즉위년 7월 2일 계사 3번째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윤형·이견기·이계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형(尹炯)을 의정부 좌참찬으로, 이견기(李堅基)를 호조 판서로, 이계린(李季疄)을 형조 판서로, 권맹손(權孟孫)을 판한성 부사(判漢成府事)로, 정창손(鄭昌孫)을 예문 제학(藝文提學)으로, 박중림(朴仲林)을 호조 참판으로, 이사순(李師純)을 공조 참판으로, 신처강(辛處康)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성봉조(成奉祖)를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김조(金銚)를 인임부 윤(仁臨府尹)으로, 조극관(趙克寬)을 대사헌으로, 이순지(李純之)를 예조 참판으로, 박중손(朴仲孫)을 우승지로, 노숙동(盧叔仝)을 좌승지로, 권준(權蹲)을 우부승지로, 김유온(金有溫)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홍약치(洪若治)를 사간원 우정언으로 삼고, 왕순례(王循禮)를 숭의전 부사(崇義殿副使)로 삼아 반차(班次)를 봉상 소윤(奉常少尹) 아래에 두었다. 이번 정사에서 의정부 당상들이 매일 빈청(賓廳)226) 에 나아가고, 이조·병조의 당상이 의논에 참여하여, 제수(除授)하는 대성(臺省)·정조(政曹)·연변 고을의 장수와 수령은 반드시 3인의 성명을 썼으나, 그 중에 쓸 만한 자 1인을 취하여 황표(黃標)를 붙여서 아뢰면 노산군(魯山君)이 다만 붓으로 낙점(落點)할 뿐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황표 정사(黃標政事)’227) 라고 일컬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51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註 226]
    빈청(賓廳) : 조선 때 의정부의 당상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무를 맡아 보던 곳.
  • [註 227]
    ‘황표 정사(黃標政事)’ : 조선조 단종 때 임금이 어렸기 때문에 전조(銓曹)에서 의정부 대신들과 상의하여 3망(三望)을 추천하고, 그 중에 적격자 1인의 이름 밑에 황표를 붙여서 아뢰면 임금이 형식적으로 낙점하던 일을 말함. 이 결과 의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음.

○以尹炯爲議政府左參贊, 李堅基戶曹判書, 李季疄刑曹判書, 權孟孫漢城府事, 鄭昌孫藝文提學, 朴仲林戶曹參判, 李師純工曹參判, 辛處康同知中樞院事, 成奉祖中樞院副使, 金銚仁臨府尹, 趙克寬大司憲, 李純之禮曹參判, 朴仲孫右承旨, 盧叔仝左副承旨, 權蹲右副承旨, 金有溫僉知中樞院事, 洪若治司諫院右正言, 王循禮 崇義殿副使, 班在奉常少尹下。 是政, 議政府堂上, 每日詣賓廳, 吏、兵曹堂上就議所, 除臺省、政曹、沿邊將帥及守令, 必書三人姓名, 取其中可用者一人, 付黃標以啓。 魯山但以筆點之而已, 時人謂之黃標政事。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6책 51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