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5월 3일 을미 1번째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주문사 안완경이 칙서와 상사를 받들고 북경에서 돌아오다.
주문사(奏聞使) 안완경(安完慶)이 칙서(勅書)와 상사(賞賜)의 8개의 표리(表裏)662) 를 받들고 북경(北京)에서 돌아왔는데, 임금께서 옥체(玉體)가 편안하지 못한 이유로써 문무 백관(文武百官)들이 모화관(慕華館)에 나가서 맞이하여 돌아와, 경복궁(景福宮)에 이르러 행례(行禮)하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칙서(勅書)에 이르기를,
"중국 남부(男婦)인 이산(李山)과 왕가가(王呵呵) 등에게 의복과 식량, 각부(脚夫)663) 를 주고, 사람을 시켜 요동 도사(遼東都司)에게 보내니, 왕의 성의(誠意)는 잘 알았다. 지금 특별히 채단(綵段)의 표리(表裏)를 보내어 왕의 충근(忠勤)에 보답하니, 도착되거든 영수(領受)할 것이다. 전일의 칙서(勅書)에 말한 바의 야인 여진(野人女眞)을 거절하여 용납해 머물기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1절(節)은 더욱 모름지기 조심성 있게 지켜야 하고, 금후에도 만약 사로잡혀 간 중국 사람이 왕의 나라 변경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계속해서 모름지기 사람을 시켜 관리해 보내 오게 한다면 또 왕의 충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칙서(勅書)와 같이 봉행(奉行)할지어다."
하였다. 임금이 안완경(安完慶)에게 안마(鞍馬)를 하사(下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90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