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가 《세종실록》을 찬술할 때 정인지의 의견에 따라 별도로 지를 만들도록 건의하다
김종서(金宗瑞)가 아뢰기를,
"지금 찬술(撰述)한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정인지(鄭麟趾)와 허후(許詡)는 말하기를, ‘세종(世宗)께서 강기(綱紀)를 제정하고 예악(禮樂)을 제작한 일이 매우 많으니, 의주(儀注)660) 와 같이 마땅히 별도로 지(志)를 만들어 고열(考閱)에 편리하게 한다면, 실록(實錄)이 번거롭고 용장(冗長)한 데 이르지 않을 것이라.’ 하고, 김조(金銚)·박중림(朴仲林)·이계전(李季甸)·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무릇 예악(禮樂)을 제작하는 일은 마땅히 실록(實錄)에다가 날마다 기록해야 된다.’고 하는데, 신(臣)도 또한 가부(可否)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실록(實錄)에다가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김종서가 아뢰기를,
"신의 뜻도 또한 그렇게 여깁니다마는, 다만 정인지(鄭麟趾)는 문한(文翰)을 맡은 사람인데, 말하기를, ‘마땅히 별도로 지(志)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므로, 신이 감히 어길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김종서가 또 아뢰기를,
"세종(世宗) 30년 동안의 일을 쉽사리 편마(編摩)661) 할 수가 없으므로, 육방(六房)으로 나누어 모두가 빨리 성취시키려고 하는데, 박중림(朴仲林)이 지금 사은사(謝恩使)가 되었으니, 최항(崔恒)으로써 대신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내 강맹경(姜孟卿)과 박중손(朴仲孫) 등에게 이르기를,
"시작할 때는 부지런하다가도 종말에 가서는 게으르게 되는 것은 보통의 인정(人情)이니, 경(卿) 등은 내왕하면서 감시(監視)하여 그 부지런함과 태만한 것을 등급을 정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90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 인사(人事)
○金宗瑞啓: "今撰《世宗實錄》, 鄭麟趾、許詡曰: ‘世宗立經陳紀, 制禮作樂之事甚多, 如儀注當別爲志, 以便考閱, 則實錄不至煩冗矣。’ 金銚、朴仲林、李季甸、鄭昌孫曰: ‘凡制禮作樂之事, 宜於實錄逐日以錄。’ 臣亦未知可否。" 上曰: "於實錄詳記爲可。" 宗瑞曰: "臣意亦以爲然, 但鄭麟趾掌文翰者, 乃曰: ‘當別作志。’ 臣不敢違。" 宗瑞又啓: "以世宗三十年之事, 未易編摩, 分爲六房, 皆欲速成, 朴仲林今爲謝恩使, 請以崔恒代之。" 上從之。 仍謂姜孟卿、朴仲孫等曰: "始勤終怠, 人情之常, 卿等來往監視, 課其勤慢。"
- 【태백산사고본】 6책 1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9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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