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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12권, 문종 2년 3월 28일 신유 4번째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이양·안숭선·허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양(李穰)을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으로 삼아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하게 하고, 안숭선(安崇善)허후(許詡)에게는 정헌 대부(正憲大夫)를 가(加)하고, 김조(金銚)를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 김황(金滉)김한(金澣)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김수(金修)를 수 사헌 집의(司憲執義)로 삼고, 정효강(鄭孝康)을 지병조사(知兵曹事)를 겸하게 하고, 박호문(朴好問)을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로 삼았다.

이양(李穰)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손자로서, 세종(世宗)의 수릉관(守陵官)이 되어 묘당(廟堂)347) 에 있게 되었는데, 이때에 와서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무시켜 특별히 총애하였다. 김황(金滉)이문(吏文)348) 을 잘 짓는 까닭으로 의정부(議政府)에서 이를 천거하여 당상관(堂上官)으로 삼아 오로지 그 일만 관장하게 하였다. 김한(金澣)공정왕(恭靖王)349) 의 궁인(宮人)이 낳은 딸에게 장가갔으니, 그 어미는 세 남편에게 시집가서 사헌부의 자녀안(恣女案)350) 에 기록되어 있었다.

김한(金澣)용의(容儀)351) 가 있었으나, 날마다 호협(豪俠)한 것을 일삼아 음탕하고 방종하여 그침이 없었다. 이웃에 판부사(判府事) 이징(李澄)의 아들 이효경(李孝敬)이 살았는데, 그 아내는 곧 판사(判事) 설존(薛存)의 딸이었다. 성질이 음란하고 아름다운 자태(姿態)가 있었으나, 항상 그 남편이 미친 병이 있었으므로 그 뜻에 만족하지 못하여 날마다 거울을 대하여 곱게 화장을 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아양을 떨었다. 혹은 날이 저물 때를 이용하여 계집종 한 사람을 거느리고서 미복(微服)을 하고 가로(街路)에서 놀기도 하고, 혹은 여름철을 만나면 앞 냇물에서 목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몸을 더럽히기를 구하기도 했는데, 김한(金澣)이 그 용모가 아름다움을 듣고 이를 간통하였다. 집에 종 하나가 있어 이름이 불로(佛老)라고 했는데, 용모가 조금 아름다왔으므로 설씨(薛氏)가 상시(常時)로 간통 하였다가 아이를 가진 듯하니, 억지로 남편과 동침하여 이효경(李孝敬)의 아들처럼 꾸미기도 하였다. 불로(佛老)는 의복이 많았으나, 이효경은 비록 한겨울이지만 단지 옷 한 벌만 입고 버선도 벗고 있었으니, 곁에 있는 사람은 이를 불쌍히 여겼으나 설씨(薛氏)는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간사노(幹事奴)352) 가 이를 원통하게 여겨 이효경에게 아뢰었으나, 이효경은 힘으로 능히 제어하지 못하고 다만 불로(佛老)의 망건(網巾)을 짜는 그릇만 부수었다. 【망건(網巾)은 머리털을 감싸는 물건인데, 말총으로 그물처럼 짠다.】 불로는 스스로 편안하지 못할 줄 알고서 제주(濟州)에 도망해 숨었다가 그 후에 사람을 시켜 설씨(薛氏)에게 말하기를, "만약 다시 보려고 한다면 옷을 만들어 보내라." 하였으니, 듣는 사람들이 이를 통분해 하였다.

순평군(順平君) 이군생(李群生)이효경(李孝敬)의 동서(同壻)인데, 이군생피병(避病)353) 을 핑계하고서 설씨(薛氏) 집에 가서 유숙하다가 곧 간통하였다. 이효경의 아들 이번(李蕃)김문기(金文起)의 딸에게 장가가서 아내로 삼았으니, 김문기는 성품이 욕심이 많아서 이효경의 가산(家産)이 넉넉하다는 말을 듣고 그 아들을 취하여 사위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 마침 사헌부에서 설씨(薛氏)의 음란한 행실을 듣고 동부(東部)354) 로 하여금 추핵(推劾)하도록 했는데, 김문기가 그때 승지(承旨)가 되었으므로 유사(攸司)355) 에 달려가서 알리니, 마침내 중지되고 말았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79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司法)

  • [註 347]
    묘당(廟堂) : 의정부(議政府).
  • [註 348]
    이문(吏文) : 중국과 주고받는 문서에 쓰던 특수한 문체(文體).
  • [註 349]
    공정왕(恭靖王) : 태종(太宗).
  • [註 350]
    자녀안(恣女案) : 조선조 때 양반 가문의 여자로서 품행이 나쁘거나 세 번 이상 시집가서 양반의 체면을 손상시킨 사람의 경력을 적어 두던 문서. 이 문서에 올려지면 그 일문(一門)의 불명예는 물론, 그 자손의 과거(科擧)·임관(任官)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
  • [註 351]
    용의(容儀) : 예의(禮儀)에 맞는 기거 동작(動作).
  • [註 352]
    간사노(幹事奴) : 일을 맡은 노복.
  • [註 353]
    피병(避病) : 병을 피하여 기처를 옮기는 일.
  • [註 354]
    동부(東部) : 서울 안의 5부의 하나.
  • [註 355]
    유사(攸司) : 맡은 관사(官司).

○以李穰爲議政府右贊成兼判兵曹事, 安崇善許詡加正憲, 金銚仁順府尹, 金滉金澣僉知中樞院事, 金修守司憲執義, 鄭孝康兼知兵曹事, 朴好問義州牧使。 , 義安大君 之孫也, 爲世宗守陵官, 得居廟堂, 至是兼兵曹, 以寵異之。 , 善吏文, 故政府薦之爲堂上官, 專掌其事。 , 娶恭靖王宮人所生女, 其母適三夫, 錄於憲府恣女案。 有容儀, 日以豪俠爲事, 淫縱無已。 隣有判府事李澄之子孝敬居焉, 其妻乃判事薛存之女也。 性淫有姿色, 常以其夫有狂疾, 未滿其意, 日對鏡爲粉黛以媚人。 或乘昏率一婢, 微服游於街路, 或當暑月, 浴於前川, 求爲人所汚, 聞其美, 通之。 家有一奴, 名曰佛老, 容貌稍美, 常私焉, 若有身, 强與夫同宿, 似若孝敬子然。 佛老多衣服, 孝敬雖隆冬, 但一衣脫襪, 旁人哀之, 而不哀焉。 幹事奴痛之, 白孝敬, 孝敬力不能制, 只破佛老結網巾器。 【網巾, 韜髮物, 以馬尾結之如網。】 佛老知不能自安, 逃匿濟州, 其後使人言於曰: "若欲復見, 製衣以送。" 聞者痛之。 順平君 羣生, 孝敬之友壻也, 羣生稱避病, 至薛家留宿, 因通焉。 孝敬, 娶金文起之女爲妻, 文起性貪, 聞孝敬家産饒足, 取其子爲壻。 時適憲府聞淫行, 令東部推劾, 文起時爲承旨, 奔告攸司, 遂寢之。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79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