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안숭선·허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양(李穰)을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으로 삼아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하게 하고, 안숭선(安崇善)과 허후(許詡)에게는 정헌 대부(正憲大夫)를 가(加)하고, 김조(金銚)를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 김황(金滉)과 김한(金澣)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김수(金修)를 수 사헌 집의(司憲執義)로 삼고, 정효강(鄭孝康)을 지병조사(知兵曹事)를 겸하게 하고, 박호문(朴好問)을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로 삼았다.
이양(李穰)은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손자로서, 세종(世宗)의 수릉관(守陵官)이 되어 묘당(廟堂)347) 에 있게 되었는데, 이때에 와서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무시켜 특별히 총애하였다. 김황(金滉)은 이문(吏文)348) 을 잘 짓는 까닭으로 의정부(議政府)에서 이를 천거하여 당상관(堂上官)으로 삼아 오로지 그 일만 관장하게 하였다. 김한(金澣)은 공정왕(恭靖王)349) 의 궁인(宮人)이 낳은 딸에게 장가갔으니, 그 어미는 세 남편에게 시집가서 사헌부의 자녀안(恣女案)350) 에 기록되어 있었다.
김한(金澣)은 용의(容儀)351) 가 있었으나, 날마다 호협(豪俠)한 것을 일삼아 음탕하고 방종하여 그침이 없었다. 이웃에 판부사(判府事) 이징(李澄)의 아들 이효경(李孝敬)이 살았는데, 그 아내는 곧 판사(判事) 설존(薛存)의 딸이었다. 성질이 음란하고 아름다운 자태(姿態)가 있었으나, 항상 그 남편이 미친 병이 있었으므로 그 뜻에 만족하지 못하여 날마다 거울을 대하여 곱게 화장을 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아양을 떨었다. 혹은 날이 저물 때를 이용하여 계집종 한 사람을 거느리고서 미복(微服)을 하고 가로(街路)에서 놀기도 하고, 혹은 여름철을 만나면 앞 냇물에서 목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몸을 더럽히기를 구하기도 했는데, 김한(金澣)이 그 용모가 아름다움을 듣고 이를 간통하였다. 집에 종 하나가 있어 이름이 불로(佛老)라고 했는데, 용모가 조금 아름다왔으므로 설씨(薛氏)가 상시(常時)로 간통 하였다가 아이를 가진 듯하니, 억지로 남편과 동침하여 이효경(李孝敬)의 아들처럼 꾸미기도 하였다. 불로(佛老)는 의복이 많았으나, 이효경은 비록 한겨울이지만 단지 옷 한 벌만 입고 버선도 벗고 있었으니, 곁에 있는 사람은 이를 불쌍히 여겼으나 설씨(薛氏)는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간사노(幹事奴)352) 가 이를 원통하게 여겨 이효경에게 아뢰었으나, 이효경은 힘으로 능히 제어하지 못하고 다만 불로(佛老)의 망건(網巾)을 짜는 그릇만 부수었다. 【망건(網巾)은 머리털을 감싸는 물건인데, 말총으로 그물처럼 짠다.】 불로는 스스로 편안하지 못할 줄 알고서 제주(濟州)에 도망해 숨었다가 그 후에 사람을 시켜 설씨(薛氏)에게 말하기를, "만약 다시 보려고 한다면 옷을 만들어 보내라." 하였으니, 듣는 사람들이 이를 통분해 하였다.
순평군(順平君) 이군생(李群生)은 이효경(李孝敬)의 동서(同壻)인데, 이군생이 피병(避病)353) 을 핑계하고서 설씨(薛氏) 집에 가서 유숙하다가 곧 간통하였다. 이효경의 아들 이번(李蕃)이 김문기(金文起)의 딸에게 장가가서 아내로 삼았으니, 김문기는 성품이 욕심이 많아서 이효경의 가산(家産)이 넉넉하다는 말을 듣고 그 아들을 취하여 사위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 마침 사헌부에서 설씨(薛氏)의 음란한 행실을 듣고 동부(東部)354) 로 하여금 추핵(推劾)하도록 했는데, 김문기가 그때 승지(承旨)가 되었으므로 유사(攸司)355) 에 달려가서 알리니, 마침내 중지되고 말았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7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司法)
- [註 347]묘당(廟堂) : 의정부(議政府).
- [註 348]
이문(吏文) : 중국과 주고받는 문서에 쓰던 특수한 문체(文體).- [註 349]
공정왕(恭靖王) : 태종(太宗).- [註 350]
자녀안(恣女案) : 조선조 때 양반 가문의 여자로서 품행이 나쁘거나 세 번 이상 시집가서 양반의 체면을 손상시킨 사람의 경력을 적어 두던 문서. 이 문서에 올려지면 그 일문(一門)의 불명예는 물론, 그 자손의 과거(科擧)·임관(任官)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 [註 351]
용의(容儀) : 예의(禮儀)에 맞는 기거 동작(動作).- [註 352]
간사노(幹事奴) : 일을 맡은 노복.- [註 353]
○以李穰爲議政府右贊成兼判兵曹事, 安崇善、許詡加正憲, 金銚仁順府尹, 金滉、金澣僉知中樞院事, 金修守司憲執義, 鄭孝康兼知兵曹事, 朴好問判義州牧使。 穰, 義安大君 和之孫也, 爲世宗守陵官, 得居廟堂, 至是兼兵曹, 以寵異之。 滉, 善吏文, 故政府薦之爲堂上官, 專掌其事。 澣, 娶恭靖王宮人所生女, 其母適三夫, 錄於憲府恣女案。 澣有容儀, 日以豪俠爲事, 淫縱無已。 隣有判府事李澄之子孝敬居焉, 其妻乃判事薛存之女也。 性淫有姿色, 常以其夫有狂疾, 未滿其意, 日對鏡爲粉黛以媚人。 或乘昏率一婢, 微服游於街路, 或當暑月, 浴於前川, 求爲人所汚, 澣聞其美, 通之。 家有一奴, 名曰佛老, 容貌稍美, 薛常私焉, 若有身, 强與夫同宿, 似若孝敬子然。 佛老多衣服, 孝敬雖隆冬, 但一衣脫襪, 旁人哀之, 而薛不哀焉。 幹事奴痛之, 白孝敬, 孝敬力不能制, 只破佛老結網巾器。 【網巾, 韜髮物, 以馬尾結之如網。】 佛老知不能自安, 逃匿濟州, 其後使人言於薛曰: "若欲復見, 製衣以送。" 聞者痛之。 順平君 羣生, 孝敬之友壻也, 羣生稱避病, 至薛家留宿, 因通焉。 孝敬子蕃, 娶金文起之女爲妻, 文起性貪, 聞孝敬家産饒足, 取其子爲壻。 時適憲府聞薛淫行, 令東部推劾, 文起時爲承旨, 奔告攸司, 遂寢之。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7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사법(司法)
- [註 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