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실록12권, 문종 2년 2월 20일 갑신 5번째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김청·정창손·이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청(金聽)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 정창손(鄭昌孫)을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으로, 이변(李邊)을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박중림(朴仲林)을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성봉조(成奉祖)를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으로, 이선제(李先齊)를 경창부 윤(慶昌府尹)으로, 최선민(崔善敏)을 형조 도관 좌랑(刑曹都官佐郞)으로 삼았다. 최선민(崔善敏)은 최사위(崔士威)의 손자이고, 최조(崔肇)의 아들이다. 최선민의 어미는 과천현(果川縣)에 살았는데, 용모는 아름다왔으나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남편이 같이 살지 않았었다.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성급(成扱)이 일찍이 인천 군수(仁川郡守)로 있을 적에 그 집에 왕래하였으므로 자못 추잡한 소문이 나게 되었다. 최조(崔肇)는 용모가 추솔(麤率)하고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어긋나서 아내가 항상 남에게 말하기를,
"나는 종족(宗族)들이 모이는 날에 내 남편을 보면 남과 같이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져 바로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후에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남편을 배반하면 참형(斬刑)에 해당되는 일인데……"
하므로, 마침내 중지하였다. 최선민(崔善敏)은 처부(妻父) 성봉조(成奉祖)의 음덕(蔭德)에 힘입어 여러 번 현달(顯達)한 관직에 임명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67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