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의 후예를 예우하라 명하다
도승지(都承旨) 이계전(李季甸)이 경봉 교지(敬奉敎旨)1521) 하기를,
"선대(先代)의 후손으로써 왕가의 빈(賓)으로 삼는 것은 고금의 통의(通義)이다. 우리 조정(朝廷)에서 혁명의 초기에 왕씨(王氏)를 대우한 것이 옛날과 같지 못하였던 것은 바로 그때의 모신(謀臣)들의 소행이요, 태조(太祖)의 뜻은 아니었다. 태조께서는 항상 이 때문에 슬퍼하셨다. 태종(太宗)께서도 매양 이 일을 말씀하실 때에는 ‘태조의 뜻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일찍이 마음에 통한(痛恨)하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그때에 왕씨의 유얼(遺孽)1522) 이라고 고하는 자가 있으니, 여러 사람의 의논이 그를 없애고자 하였으나, 놓아 보내도록 명하여 그가 생업(生業)에 편안하게 하였다. 우리 황고(皇考)1523) 께서도 또한 이것을 애도하여 그대로 두지 아니하고 갑자년1524) ·을축년1525) 간에 이르러 일찍이 그 후손을 구하여 세우려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무릇 왕씨(王氏) 5백 년의 조업(祚業)인데도 제사에 주인이 없다면 이것이 어찌 조종의 어질고 후한 본의(本意)이겠는가? 내가 부덕(否德)한 몸으로서 외람되게 큰 왕업을 이어받았으니, 바라는 것은 오직 선대(先代)의 뜻을 계승하는 것뿐이다. 그 후예(後裔)를 얻어서 옛날 빈(賓)을 삼던 도리에 의거하여 그 작위(爵位)를 높여 주고 제사하는 일을 계승하게 하여, 국가를 휴명(休明)1526) 에 따르게 하고자 하였으나, 아직도 왕씨의 후손으로 민간에 숨어 있는 자가 오히려 조종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의심하여 두려워하며 나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중외(中外)의 관리는 나의 마음을 밝게 펴고 마음을 다하여 수색하고 탐방(探訪)하여 예우(禮遇)하여서 보내라. 왕씨의 제사를 영구히 의지할 곳이 있게 한다면 우리 열성(列聖)1527) 의 아름다운 뜻이 어찌 거룩하지 않겠느냐? 오직 너희 의정부(議政府)에서는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몸받아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51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왕실(王室)
- [註 1521]경봉 교지(敬奉敎旨) : 신하가 임금의 교지(敎旨)를 삼가 받드는 일. 경봉(敬奉).
- [註 1522]
유얼(遺孽) : 남은 서자(庶子).- [註 1523]
황고(皇考) : 돌아가신 아버지.- [註 1524]
갑자년 : 1444 세종 26년.- [註 1525]
○庚子/都承旨李季甸敬奉敎旨: "先代之後, 作賓王家, 古今通義也。 我朝革命之初, 待王氏不古若者, 乃其時謀臣所爲, 非太祖意也。 太祖常以是疚懷。 太宗每言此事, 非太祖意, 未嘗不痛恨於心。 時有告王氏遺孼者, 群議欲除之, 亟命釋遣, 以安其生。 我皇考亦悼, 此不置, 至甲子、乙丑年間, 嘗欲求立其後, 而未及焉。 夫以王氏, 五百年之祚, 而祀無其主, 是豈祖宗仁厚本意耶? 予以否德, 叨襲丕基, 仰惟先志是繼。 欲得其裔, 依古作賓之義, 尊其爵位, 俾承祀事, 以匹休邦家, 尙慮王氏之後, 隱在民間者, 猶未悉祖宗之意, 疑懼不出。 其中外官吏, 明布予懷, 悉心搜訪, 禮而遣之。 使王氏之祀, 永有所依, 成我列聖之美意, 豈不偉歟? 惟爾議政府, 體予至懷, 曉諭中外。"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51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왕실(王室)
- [註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