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방 별감을 서울로 올라오도록 명하다
정사(政事)를 보았다. 대사헌(大司憲) 정창손(鄭昌孫)이 아뢰기를,
"채방 별감(採訪別監)을 보내어 송골매[松鶻]를 잡는 것은 곧 중국 조정[中朝]의 청구(請求)를 염려하여 그를 위해 미리 대비하려는 것뿐입니다. 지금 이미 5, 6련(連)을 잡았으나, 중국 조정[中朝]에서도 또한 구하지 않으니, 채방 별감은 속히 올라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잡은 송골매[松鶻]를 대궐 안에서 기르니, 기르는 매[鷹]의 숫자도 또한 많아서 이미 3패(三牌)를 설치하였는데, 어찌 반드시 대궐 안에 또 좌응방(左鷹坊)·우응방(右鷹坊)을 설치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응방(鷹坊)의 설치는 금일에서부터가 아니고 세운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갑자기 혁파(革罷)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고, 여러 신하가 나가자, 임금이 여러 승지(承旨)에게 이르기를,
"비록 지금은 바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해청(海靑)은 미리부터 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를 기르고자 한다면 그것을 외부에 붙이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내응방(內鷹坊)1514) 의 설치는 그 유래가 오래니, 혁파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진언(進言)한 뜻은 또한 3년 뒤에 내가 혹시 매사냥을 할 것인가 의심해서이다. 그러나, 사람의 소행은 반드시 그 재질(才質)을 따른다. 내가 전에 팔 위에 매를 붙이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그 당초 재질이 변하여 매사냥하는 일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사람의 재질을 헤아리지 못하고 발언하는 것이 가벼운가?"
하고, 또 말하기를,
"직집현전(直集賢殿) 성삼문(成三問)이 경연 당상(經筵堂上) 대객 중관(對客中官) 이율(李慄)과 예(禮)를 다투었으니 미안한 듯하다. 가선 중관(嘉善中官)도 또한 당상(堂上)이다. 이제 중국 조정의 예를 들으니, 조사(朝士)가 중관(中官)에 대하여 잠깐이라도 그와 항례(抗禮)1515) 하지 못하는 것은 미리 불경(不敬)을 멀리 하려는 까닭이라 한다. 성삼문이 전에도 문중선(文仲善)에 대하여 또한 다투고 힐난하였으니, 성삼문은 경박한 사람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50면
- 【분류】재정-진상(進上)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政論)
○戊戌/視事。 大司憲鄭昌孫啓曰: "遣採訪別監, 捕松鶻, 乃慮中朝之求請, 預爲之備耳。 今已捕五六連, 中朝亦不求之, 採訪別監宜速上來。" 從之。 又啓曰: "所捕松骨, 養於闕內, 所養鷹子之數亦多, 旣設三牌, 何必闕內, 又設左右鷹坊乎?" 上曰: "鷹坊之設, 非自今日, 設立已久, 不可遽革。" 諸臣出, 上謂諸承旨曰: "雖此時不進獻, 然海靑不可不預養也。 欲養之, 不可付之於外也。 內鷹坊之設, 其來已久, 未可革也。 進言之意, 亦疑三年之後, 予或放鷹也。 然人之所爲, 必隨其才質。 予前此臂上不接鷹, 何變其初質, 以事放鷹之事乎? 何不量人之材質, 而發言之輕也。" 又曰: "直集賢殿成三問, 與經筵堂上對客中官李慄爭禮, 似乎未安。 嘉善中官, 亦堂上也。 今聞中朝之禮, 朝士於中官, 暫不得與之抗禮, 所以預遠不敬也。 三問前於文仲善, 亦與之爭詰, 三問輕薄人也。"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50면
- 【분류】재정-진상(進上)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