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의 후예를 찾아 그 작위를 높여 제사를 이어가게 할 것을 명하다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도승지(都承旨) 이계전(李季甸)과 우부승지(右副承旨) 박중손(朴仲孫)을 인견하고 말하기를,
"개국(開國)할 초기에 왕씨(王氏)를 참혹하게 대우한 일은 진실로 태조(太祖)의 본의(本意)가 아니고, 바로 그때의 모신(謀臣)들이 한 바인데, 태조께서 항상 몹시 애도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태종조(太宗祖)에 이르러 왕씨의 후예(後裔)로 왕걸우음[王巨乙于音]의 옥사(獄事)가 있었는데, 당시의 법사(法司)에서 극형(極刑)에 처하고자 하였으나, 태종께서 석방하여 주고 논하지 말도록 명하여 그로 하여금 생업(生業)에 편안하게 하였다. 선왕(先王)께서도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추도(追悼)하여 마지않으시고 항상, ‘왕씨(王氏)의 후손을 찾아내고자 한다.’고 말씀하셨다. 계해년1494) 과 갑자년1495) 사이에는 더욱 간절히 진념(軫念)1496) 하셨으나, 다만 국가에 일이 많았음으로 인하여 시행하지 못한 것뿐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전대(前代)의 후손으로 왕가(王家)에 빈(賓)을 삼는 것은 고금의 통의(通義)라고 여긴다. 하물며 5백 년의 조업(祚業)을 가지고도 제사에 주인 없는 것이 옳겠느냐? 이제 조종(祖宗)의 뜻을 이어서 왕씨의 후예를 구하여 역대(歷代)로 빈(賓)을 삼았던 예에 의거하여 그 작위(爵位)를 높여 줌으로써 제사를 이어가게 하고자 하니, 집현전(集賢殿) 문학(文學)이 선비를 불러서 나의 뜻을 상세히 말해 주고 교서(敎書)를 지어 올리게 하라. 내가 전일에 이 일을 정부(政府)에 의논하였는데, 정부에서도 옳게 여겼다."
하고, 또 말하기를,
"왕걸우음[王巨乙于音]의 옥사(獄事)를 내버려두고 묻지 아니하였는데, 뒤에 이를 칭송하는 말이 있었으며, 그 뒤에 또 왕씨가 나타난 일도 있었다."
하니, 이계전이 대답하기를,
"왕걸우음의 일은 국사(國史)에 실려 있어서 신도 또한 칭송한 말을 알고 있습니다. 왕씨의 후손을 보존하여 생업에 편안하게 한 것은 천하의 국가와 천지의 도량(度量)을 공변되게 하는 것이니, 바로 탕왕(湯王)1497) 과 무왕(武王)1498) 이 혁명(革命)하였으나 기(杞)1499) 나라와 송(宋)1500) 나라를 보존한 뜻입니다. 이것은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낙천정기(樂天亭記)》의 말입니다. ‘뒷날에 왕씨가 나타났다.’는 일은 신이 아직 이 일을 알지 못하니 대단히 통탄하고 슬픕니다. 이제 교서를 내려서 시행하시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고, 이계전이 또 우의정(右議政) 김종서(金宗瑞)의 말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이 전자에 춘추관(春秋館)에 벼슬할 때 이미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였고, 다음으로 《여사장편(麗史長編)》을 편찬하여 거의 이미 완성이 되었었으나 지금은 전임하여 의정(議政)이 되었으니, 춘추관에 벼슬하는 것을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례에 의하여 춘추관(春秋館)에 출사(出仕)한 모신(謀臣)은 바로 정도전(鄭道傳)의 무리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50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왕실-국왕(國王)
- [註 1494]계해년 : 1443 세종 25년.
- [註 1495]
갑자년 : 1444 세종 26년.- [註 1496]
진념(軫念) : 임금이 마음을 써서 근심함.- [註 1497]
탕왕(湯王) : 은(殷)나라 시조.- [註 1498]
○乙未朔/上御思政殿, 引見都承旨李季甸、右副承旨朴仲孫謂曰: "開國之初, 待王氏慘酷之事, 固非太祖本意, 乃其時謀臣之所爲也, 太祖常懷痛悼之念。 至太宗朝, 有王氏後裔王巨乙于音之獄, 當時法司, 擬欲置之極刑, 太宗命釋勿論, 使安其生。 先王每念此事, 追悼不已, 常言欲得王氏之後。 癸亥、甲子年間, 尤切軫念, 第因國家多事, 未及施行。 予惟, 前代之後, 作賓王家, 古今通義。 況以五百年之祚, 而祀無其主可乎? 今欲繼述祖宗之志, 求得王氏之裔, 依歷代作賓禮, 尊其爵位, 以承其祀, 其召集賢殿文學之士, 詳說予意, 製敎書以進。 予前日議此事于政府, 政府亦以爲可。" 且言: "置王巨乙于音之獄而不問, 後有稱頌之辭, 其後亦有王氏見出之事。" 季甸對曰: "巨乙于音之事, 載在國史, 臣亦知稱頌之辭。 存王氏之後, 而俾安生業, 則公天下國家天地之量, 卽湯、武革命, 而存杞、宋之意也。 此卞季良所製《樂天亭記》之辭也。 後日王氏見出之事, 臣未知此事, 甚可痛愍。 今下敎書施行, 甚美事也。" 季甸又以右議政金宗瑞之言啓曰: "臣前此仕春秋館, 已撰《高麗史》, 次撰《麗史長編》, 庶幾已成, 今轉爲議政, 其仕春秋館, 未敢擅便爲之。" 上曰: "依前仕春秋館謀臣, 乃鄭道傳輩也。"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6책 450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왕실-국왕(國王)
- [註 1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