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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10권, 문종 1년 10월 8일 계유 2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수양 대군과 안평 대군의 불법한 행동에 대해 논의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이 끝나자 우헌납(右獻納) 조원희(趙元禧)가 나아와서 말하기를,

"종실(宗室)의 불법(不法)은 단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에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헌사에서 원적지로 돌려보내던 중의 가쇄(枷鎖)를 마음대로 풀어 주었고, 지금 안평 대군(安平大君)은 많은 추종(騶從)1412) 을 거느리고 충청도 보은현(報恩縣)의 복천사(福泉寺)에 가서 폐를 일으키는 일이 많으며, 또 향연(享宴)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미세(微細)할 때에 어거하지 않으면 장차 그 커진 것을 어거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금하지 아니한다면 뒷날에 반드시 큰 불법(不法)에 이를 것이니, 죄를 주지 않으면 법을 폐지하게 될 것이요, 죄를 준다면 은혜를 상하게 될 것이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추종자(騶從者)가 얼마인가? 그 분수에 지나쳤는가? 향연을 받았다니 사실 그러한가? 어디에서 향연을 하였는가?"

하고 두세 번 힐문(詰問)하니, 조원희의위(依違)1413) 하면서 대답하기를,

"추종자의 숫자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민간(民間)에서 모두 말하기를, ‘많이 데리고 갔다.’ 합니다. 또 남의 궤향(饋餉)을 받는 것도 옳지 않으니,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으로 어찌 와서 궤향하는 자가 없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양(首陽)이 가쇄(枷鎖)를 풀어 준 것이 어찌 큰 불법(不法)이겠느냐? 칼을 풀어 준 이튿날 즉시 와서 아뢰기를, ‘무슨 뜻이 있어서 풀어 준 것이 아니고 길에서 칼을 쓴 중을 만나자 불쌍하여 풀어 준 것뿐입니다.’ 하였으니, 어찌 큰 일이라고 하겠는가? 안평복천사(福泉寺)에 가겠다고 나에게 청하였으므로 내가 그것을 허락하였고, 이어서 그 도(道)에 유시(諭示)하여 초료(草料)1414) 와 죽반(粥飯)을 주라 하였다. 수륙재(水陸齋)를 지낼 때에 혹은 백성들에게 다과(茶菓)·음식물(飮食物)과 중에게 시주하는 포백(布帛)을 받은 것이 어찌 큰 불법으로써 어거할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하고 소리 높여 힐책(詰責)하니 조원희가 두려워하며 물러갔다. 경연관(經筵官)은 이미 나가고 동부승지(同副承旨) 노숙동(盧叔仝)이 그대로 머물러 정사(政事)를 아뢰니, 임금이 조용히 말하기를,

"간관(諫官)은 언사(言事)를 맡은 직책이다. 그러나, 마땅히 대체(大體)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말을 가지고 와서 아뢰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상사(喪事)를 당하여 향연을 받은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만약 공의(公議)에서 발언한다면 종신토록 큰 누(累)가 될 것인데, 그 말을 과장(誇張)하는 것이 옳겠는가? 수양은 충직(忠直)하여 다른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항상 중을 접대할 때에는 나에게 청하였고, 내가 허락하면 주었다. 중이 형(刑)을 받는 것을 보자, 불쌍히 여겨 풀어 주었다. 만약 아뢴 뒤에 풀어 주었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이튿날 와서 아뢰었으니 또한 큰 과실은 아니었다. 수양안평은 바야흐로 국상[國恤]에 있어서 슬픔을 펼 곳이 없으므로 불도(佛道)에 의지하는데, 내가 어찌 강제로 금지하겠느냐?"

하였다. 노숙동이 말하기를,

"조원희(趙元禧)의 말은 그 뜻이 규탄하는 데 있었으나 말이 정도에 지나쳤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향연한 일은 신이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조원희가 스스로 짐작하기를, ‘대군의 행차에 감사와 수령이 어찌 가서 보지 않겠는가? 만약 가서 보았다면 혹은 음식을 올렸을 것이요, 혹은 과일을 올렸을 것이니, 한 잔 술도 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하고, 이렇게 억측(臆測)하여 지나친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어찌 진실로 향연이 있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의 말은 경박(輕薄)함이 심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44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註 1412]
    추종(騶從) : 따라다니던 하속(下屬).
  • [註 1413]
    의위(依違) : 가부를 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양.
  • [註 1414]
    초료(草料) : 마소의 꼴.

○御經筵。 講畢, 右獻納趙元禧進曰: ‘宗室不法, 不可不制也。 日者首陽大君, 擅解憲司發還元籍僧枷, 今安平大君, 多率騶從, 往忠淸道 保恩縣 福泉寺, 多作弊事, 又受宴享。 不制於微, 將無以制其大。 今日不禁, 後必至於大不法, 不罪廢法, 罪之傷恩, 不可不慮。" 上怒曰: "騶從幾何? 過其分歟? 受宴享然乎? 宴於何處乎?" 詰問再三, 元禧依違以對曰: "騶從之數, 未能詳知, 民間皆曰: ‘多率而行。’ 且受人饋餉不可也, 監司、守令, 豈無來饋者乎?" 上曰: "首陽解枷, 豈是大不法乎? 解枷翼日, 卽來啓: ‘非有意解之, 道遇枷僧, 哀而釋之耳。’ 豈是大事? 安平之往福泉也, 請於予, 予許之, 仍諭其道, 給草料、粥飯。 設水陸時, 或受人茶菓、食物, 及施僧布帛, 豈是大不法, 不可制者歟?" 厲聲詰責, 元禧懼而退。 經筵官旣出, 同副承旨盧叔仝, 因留啓事, 上從容謂曰: "諫官, 言事職也。 然當知大體, 不可以無根之言來啓也。 當喪受宴享, 非小事也。 若發於公議, 則終身大累, 虛張其說可乎? 首陽忠直, 無他者也。 常以接待僧人, 請於予, 予旣許之。 見僧罹刑, 恤而釋之。 若啓之而後釋之, 則善矣, 然翼日來啓, 亦非大過也。 首陽安平, 方在國恤, 敍哀無所, 依於佛道, 予豈强禁?" 叔仝曰: "元禧之言, 意在彈糾, 不自覺言之過中也。 宴享之事, 臣所未聞。 意者, 元禧自料, 大君之行, 監司、守令, 豈不往見乎? 若往見, 則或進飯, 或設果, 進一酌必矣。 以是臆料, 而過言之耳。 豈眞有宴享乎?" 上曰: "此人之言, 輕薄甚矣。"


  • 【태백산사고본】 5책 1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44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