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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9권, 문종 1년 9월 21일 병진 2번째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사간원 우정언 윤서가 박이창의 고신을 추탈하고, 은수를 더하지 말기를 청하다

사간원(司諫院) 우정언(右正言) 윤서(尹恕)가 아뢰기를,

"성절사(聖節使)1321) 박이창(朴以昌)이 길에서 자문(自刎)하였으니, 아무 지각도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1322) 같다면 죄의 경중(輕重)을 몰라서 그렇게 하였으니 진실로 족히 논할 것이 못되나, 이제 박이창으로 말씀하면 한나라의 대신(大臣)으로서 그 일의 시비(是非)와 죄의 경중(輕重)과 국법의 대체(大體)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복명(復命)한 뒤에 죄가 있으면 그 문책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요, 범한 바가 없으면 변명해 벗어나는 것이 마땅한데 무단히 자문하고 말았으니, 패만(悖慢)1323) 과 원망의 뜻이 없지 않으니, 이는 유달리 인신(人臣)으로서의 직분을 잃은 것입니다. 청컨대 고신(告身)을 추탈(追奪)하고, 은수(恩數)를 더하지 마소서. 또 근일에 서용(敍用)을 명하신 김세민(金世敏)·조순생(趙順生)·정발(鄭發)로 말하면, 김세민은 임의로 대비(大批)1324) 를 삭제하고 함부로 관작(官爵)을 제수하여 남의 말[馬]과 필단(匹段)을 뇌물로 받은 바 있어 추문(推問)하였을 때 비록 그 아들이 교역(交易)한 것이라고 발명하였으나, 한 집안의 일을 본래 몰랐을 이치가 없으니, 정사를 어지럽히고 사욕을 자행(恣行)함이 이에 심할 수가 없어서, 그 죄가 죽음에 이른 것을 다행히 성상의 은혜를 입어 성명(性命)1325) 의 보전을 얻었고, 다만 부처(付處)만 하도록 하였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 소환되었고 또 직첩(職牒)을 다시 받은 것만도 오히려 다행하며, 조순생은 다시 참의(參議)로서 역시 그 일에 간예(干預)하였다가 파출(罷黜)된 것이며, 정발로 말씀하면 대신(大臣)으로서 국상(國喪)의 기년(期年)1326) 안에 음악을 동원하여 연회를 배설하고 술을 마셨으니, 이 어찌 인신(人臣)으로서 할 일입니까? 위의 세 사람은 모두 서용하지 않는 것이 가합니다. 청컨대 이 하명(下命)을 거두소서. 또 구임(久任)하는 법을 이미 세웠으니 이를 경솔히 고쳐서는 안됩니다. 선공감 주부(繕工監注簿) 이영상(李永祥)이 구임하게 하려던 사람으로서 다시 사온서 주부(司醞署注簿)로 천전(遷轉)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장차 대신(大臣)에게 간청하여 구임을 면하려는 폐단이 있을 것이니, 이는 반드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박이창(朴以昌)의 일은 너희들의 말이 옳다. 그러나 박이창이 어찌 다른 생각이 있었겠느냐? 다만 오명(汚名)을 얻은 것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그 범한 바가 본래 중한 일은 아니었는데 다만 법을 세운 처음에 범한 까닭에 사람을 보내어 잡아오게 하였던 것인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내 실상 추회(追悔)1327) 하고 있다. 왜 굳이 고신(告身)을 빼앗고 은수(恩數)를 감하겠느냐? 김세민(金世敏)의 일은 내 비록 다 알지 못하나 그당시 탄핵하여 아뢴 것을 나도 간혹 참여해 들었는데, 선왕(先王)의 말씀이, ‘김세민의 죄는 다른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는 죄의 중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판서(判書)로서 혼미하여 살피지 못하고 어리둥절하여 깨닫지 못한 것이다. 조순생(趙順生)은 비 록 당상관(堂上官)이라고 하지만, 참의(參議)로서 그 정사(政事)에 어찌 능히 손을 댔겠느냐? 〈이 사람은〉 실상 죄가 없는 것이다. 그 정발(鄭發)로 말하면 비록 음악을 동원시켰다고 하지만 그당시 이를 적발 추문(推問)하여 죄를 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찌 급급(汲汲)히 다시 쓰겠느냐? 혹 제조(提調)나 절도사(節度使)의 궐원(闕員)1328) 이 있고 그 적임이 없을 경우에나 제수할 것이다. 이영상(李永祥)의 일은 정조(政曹)에서 계청한 것이 아니다. 김우묘(金雨畝)가 부지런하고 근신하여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어서 내가 선공 감(繕工監)에 쓰려고 특별히 이영상을 다른 관사(官司)에 제수한 것이다."

하였다. 윤서(尹恕)가 다시 아뢰기를,

"박이창(朴以昌)이 한 나라의 대신(大臣)으로서 사명을 받들고 중국(中國)에 갔다가 돌아와서 복명(復命)하지 않고 자살까지 하였으니, 여기에는 패만(悖慢)하고 원망하는 뜻이 있는 것이니 이는 곧 불충(不忠)입니다. 이 불충한 사람을 고신(告身)도 빼앗지 않고 은수(恩數)도 감하지 않고서 그대로 대신의 대열에 둔다면, 국가의 대체(大體)가 어찌되겠습니까? 박이창의 죽음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 들어갈 때 크게 범한 바 있어 그런 것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 역시 신 등이 다 같이 의심하는 바입니다. 이 행차(行次)에 수종하였던 모든 사람도 용서해 풀어주지 말고 끝까지 추문(推問)하여 그 정실을 얻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세민(金世敏)은 비록 혼미(昏迷)한 소치라고 하나, 그 직위가 판서(判書)에 이르렀는데 그 대비(大批)를 독단해 삭제한 죄를 어찌 모르고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그 범한 바가 지극히 중한지라 다시 서용(敍用)하지 않는 것이 온당합니다. 선공(繕工)에 대한 일은 비록 김우묘(金雨畝)가 아니라도 누구인들 구임(久任)하지 못하겠습니까? 구임하는 법을 경솔히 고칠 수 없으니, 청컨대 모름지기 이를 고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박이창(朴以昌)의 일은 내가 뉘우쳐 마지않고 있는데, 어찌 이에서 다시 죄를 가하겠느냐? 또 수종한 사람들을 추국(推鞫)하였던 바, 불과 1백여 필의 포자(布子)1329) 를 함부로 무역했을 뿐이다. 추국하여 무엇하겠느냐? 김세민(金世敏)의 죄는 혼미(昏迷)하여 살피지 못했을 뿐이고 별로 죄를 범한 바 없으며, 이영상(李永祥)의 일은 내가 특지(特旨)1330) 로써 한 것이니, 어찌 법에 잘못될 것이 있겠느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38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註 1321]
    성절사(聖節使) : 중국 황제의 생일에 보내는 우리 나라 사신.
  • [註 1322]
    필부필부(匹夫匹婦) : 평범한 남녀.
  • [註 1323]
    패만(悖慢) : 사람됨이 거만함.
  • [註 1324]
    대비(大批) : 도목 정사(都目政事) 때 임금이 내린 비답(批答), 또는 그 임명.
  • [註 1325]
    성명(性命) : 사람의 천성과 천명.
  • [註 1326]
    기년(期年) : 한해가 되는 돐.
  • [註 1327]
    추회(追悔) : 추후에 생각하여 후회함.
  • [註 1328]
    궐원(闕員) : 결원.
  • [註 1329]
    포자(布子) : 피륙.
  • [註 1330]
    특지(特旨) : 임금이 특별히 내리는 명령, 또는 3망(三望)을 거치지 않고 특별히 행하던 관리 임명.

○司諫院右正言尹恕啓: "聖節使朴以昌, 自刎於道, 若匹夫匹婦, 無知之人, 則未知罪之輕重而爲之, 固不足論也, 今以昌以大臣, 事之是非, 罪之輕重, 國法大體, 夫豈不知? 復命之後, 有罪則甘受其責, 無所犯則發明, 固其宜矣, 無端自刎, 不無悖慢怨懟之意, 殊失人臣之職。 請追奪告身, 不加恩數。 且近命敍用金世敏趙順生鄭發, 世敏則擅削大批, 濫授官爵, 受人賂馬及匹段, 推問之時, 雖以其子交易事發明, 然一家之事, 固無不知之理, 亂政肆欲, 莫此爲甚, 罪至於死章, 蒙上恩得全性命, 只令付處, 未幾召還, 且受職牒, 猶云幸矣, 順生以參議, 亦預其事而罷黜, 鄭發則以大臣, 國喪期年內, 動樂宴飮, 豈人臣所得爲之事? 上項三人, 皆不敍用可也。 請收是命。 久任之法已立,不可輕改。 繕工注簿李永祥, 以久任遷司醞注簿。 如此則將有干請大臣, 要免久任之弊, 必須改正。" 上曰: "以昌事, 若等之言是矣。 然以昌豈有他意? 只以慙得汚名耳。 所犯本非重事, 但法初所犯, 故送人拿來, 今乃事至於此, 予實追悔。 何敢奪告身, 減恩數乎? 世敏事, 予雖未悉, 然其時劾奏, 予或預聞, 先王曰: ‘世敏之罪, 與他人有間。" 非以謂重也。 但以判書昏迷不察, 荒然無覺耳。 順生雖曰堂上, 然以參議, 其於政事, 安能下手? 實無罪也。 若則雖云動樂, 其時未得現推定罪。 然汲汲用之? 或有提調、節制使之闕, 而無其人則除授耳。 永祥事, 非政曹所啓。 金雨畝, 勤謹可任事者, 予欲於繕工使之, 故特以永祥除他司耳。" 更啓曰: "以昌以大臣, 奉使上國, 不復命以至自刎, 則有悖慢怨懟之意, 是不忠也。 以不忠之人, 不奪告身, 不減恩數, 而列於大臣, 則於大體何? 以昌之死, 必有以也。 安知入朝之時, 大有所犯而然歟? 此亦臣等所共疑也。 此行隨從各人, 宜勿宥之, 窮推得情何如? 世敏雖曰昏迷所致, 然位至判書, 其擅削大批之罪, 豈不知而然歟? 所犯至重, 不復敍用爲便。 繕工事, 雖非雨畝, 孰不能久任? 久任之法, 不可輕改, 請須改之。" 上曰: "以昌事, 予乃悔之無已, 又何敢從而加罪乎? 且隨從人推鞫之, 不過以百餘匹布子, 濫行貿易而已。 何必推鞫? 世敏之罪, 昏迷不察而已, 別無所犯, 永祥事, 予以特旨爲之, 何壞於法?"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38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