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 집의 박팽년이 경기 지방에 베풀 수륙재를 정지하도록 청하다
정사(政事)를 보았다.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박팽년(朴彭年)이 아뢰기를,
"신 등이 가만히 들으니, 경기(京畿) 지방 민간에 악질(惡疾)이 있어 명하여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기도한다 합니다. 도대체 수륙재라는 한 가지 일로 어찌 능히 그 질병을 구료하겠습니까? 청컨대 이를 정지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내몸을 위하여 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간에 질병이 있어 인심이 흉흉(洶洶)하고 답답해 하기 때문에 우선 수륙재를 베풀어서 그 마음을 위안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박팽년(朴彭年)이 아뢰기를,
"황해도(黃海道)에서도 일찍이 수륙재를 베풀었으나 지금까지 그 반응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기근(飢饉)이 든 나머지는 백물(百物)이 말라 없어지는 법인데, 황해도는 누차 기근을 겪어 피곤한 끝에 질병을 이루었을 뿐입니다. 다시 무슨 신에 의한 빌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경기(京畿)로 말씀하여도 또한 그러한 것이니 수륙재는 행할 수 없습니다. 신이 일찍이 고려사(高麗史)에 보니 ‘진실로 병사(兵事)1281) 가 있으면 《융만경(戎蠻經)》을 강(講)한다.’ 하였으므로, 신은 은근히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오늘이 질병을 위하여 수륙재를 행한다면 신은 이것이 후세에 웃음거리를 주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똑같은 사람인데 승복(僧服)을 입고 행하면 불사(佛事)라 이르고, 유복(儒服)을 입고 행하면 제사(祭祀)라 이르는데, 여제(厲祭)나 수륙재(水陸齋)가 그 신(神)을 섬기는 것은 일반이다. 비록 여제라도 어찌 그 신의 소재를 알고서 하며, 또 귀신(鬼神)은 만물과 연결되어 빠짐이 없어 한 귀신만 섬기면 백신(百神)을 두루 제사할 필요가 없이 다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거행하지 않은 신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 역시 모를 것이, 어느 신이 어려운 것으로서 진실로 지성껏 섬기면 다 감통(感通)하는 이치가 어찌 여제나 수륙재에만 있겠는가? 만약 수륙재의 한 행사가 이단(異端)을 더욱 일으키는 것이 되어 장차 큰 해가 있다면 할 필요가 없지만, 이는 다만 백성들의 정원(情願)에 좇아 우선 그 마음의 위안을 주려는 것이다. 대저 병이란 마음으로 말미암아 비롯하는 것이어서 마음에 편안함을 얻으면 병도 또한 간혹 그치게 된다."
하고, 박팽년이 굳이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임금이 다시 말하기를,
"외방 각 고을의 둔전(屯田)이 본시 정액(定額)이 있는데, 수령이 혹 많이 점유하였다가 이내 그가 아는 권세가(權勢家)에 주기도 하고, 권세를 쥔 자는 또 아는 사람을 수령으로 보내서 인하여 둔전을 빼앗아 점유하는 자도 간혹 있음은 매우 온당치 않은 일이다. 그 둔전의 정액을 고찰(考察)하는 법을 호조(戶曹)로 하여금 거듭 밝힐 것이며, 또 뽕나무 열매와 대추는 구황(救荒)에 긴절한 것으로서, 듣건대, 중국에서도 역시 많이 재배한다 하며, 본국에서도 뽕나무의 재종(栽種)1282) 이 영갑(令甲)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실적이 없으니 다시 더하여 마감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36면
- 【분류】보건(保健)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농업-전제(田制) / 농업-양잠(養蠶)
○癸丑/視事。 司憲執義朴彭年啓: "臣等竊聞, 京畿民間有惡疾, 命設水陸齋, 以禳之。 夫水陸一事, 豈能救其疾乎? 請停之。" 上曰: "此非爲己求福計也。 民間有疾, 人心洶懼鬱鬱, 姑設水陸, 以安其心耳。" 彭年啓: "黃海道曾設水陸, 今無其應。 自古饑饉之餘, 百物凋耗, 黃海道屢經饑饉, 困罷成疾而已。 更有何神爲之崇者乎? 今京畿亦然, 水陸不可行也。 臣嘗觀《高麗史》, 苟有兵事, 講《戎蠻經》者, 臣竊愧焉。 今日爲此疾, 行水陸, 則臣恐貽後世之笑矣。" 上曰: "等是人也, 服僧服而爲之, 則謂之佛事, 服儒服而爲之, 則謂之祭祀, 厲祭、水陸, 其所以事神則一也。 雖厲祭,豈知其神之所在而爲之, 且鬼神體物而不遺, 事一鬼神, 則不必遍祀百神, 而莫不皆通。 然古人云, 靡神不擧, 此亦未知, 何神可感, 而求之無方也? 況鬼神之理難知, 苟至誠以事之, 則不無感通之理, 在於厲祭、水陸之間乎? 若以此水陸一事, 爲異端浸興, 而將有大害, 則不必爲也, 此但聽從民願, 姑令慰其心耳。 大抵病由心作, 心得其安, 則病亦或息矣。" 彭年固請, 不允。 上曰: "外方各官屯田, 自有定額, 守令或多占, 仍給所知權勢之家, 權勢者又遣所知之人爲守令, 因而奪占屯田者, 容或有之, 甚爲不便。 其屯田定額考察之法, 令戶曹申明, 又桑棗, 切於救荒, 聞中朝亦多栽種, 本國桑木栽種, 著在令甲。 然無實績, 更加磨勘。"
-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436면
- 【분류】보건(保健)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농업-전제(田制) / 농업-양잠(養蠶)